[이병도의 時代架橋] 6·25 69주년, 정부 자세 이대로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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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의 時代架橋] 6·25 69주년, 정부 자세 이대로 안 된다.
  • 이병도 주필
  • 승인 2019.06.2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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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지킨 전쟁”과 거리 먼 文정부 안보
역사왜곡 혼선 노출 - 안보불안 국민 우려 증폭
김정은 "6·25는 북침" 공개강변해도 무대응 일관
화해기조 정무 판단 개입, 부끄러운 안보태세
北어선 '귀순' 경계실패·거짓말…평화무드 취한 靑·軍 기강해이
美는 참전용사 추모열기 , 韓은 순직장병 예우 소홀
민간인 희생자 보상·위로 착수 시급 큰 과제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6·25 전란 발발 69주년을 맞아 아직도 곳곳이 상처와 후유증, 헛점으로 얼룩지고, 운영에 새로운 문제점까지 야기하고 있는 나라 실태를 총체적으로 진단치 않을 수 없다.

북한 정권이 최근 일부 수정주의 역사학자들의 '북침설'을 다시 공개 강변하고 섰지만, 6·25는 일요일인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 김일성이 한반도 적화통일을 위해 기습 남침해 일어난 역사적 사실임이 분명하다. 이는 이미 옛 소련 등의 비밀문건을 통해서도 국제적으로 공인(公認)된 지 오래다.

아직도 휴전선에서는 총칼로 무장한 병사들의 대치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고, 북핵 등으로 전쟁의 위협이 가신 것도 아니다. 상처가 아물지 못해 이산의 아픔도 여전하다. 

6·25참전 순국 소년병 위령제가 열렸지만 69년이나 흘러도 관련 인사들은 아직까지 국가로부터 어떠한 사과나 보상도 받지 못했다. 참으로 심각하다. 

이런 실정임에도, 현재 남.북한 국가 지도자들의 6·25에 대한 인식과 행보는 오히려 많은 역사적 문제점과 혼선을 드러내고 있으며, 최근 발생한 ‘북한 어선 삼척항 입항 사태’ 등 일련의 사건 추이는 순국 영령들에 부끄러운 안보태세의 '구멍'을 보여준다. 

북한 지도자 김정은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난 자리에서 6·25전쟁을 한국과 유엔군이 침략한 ‘북침(北侵)’이라고 대놓고 공개 주장을 해도 정부의 대응도 제대로 없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고, ‘귀순 北 어선’ 의혹을 계기로 국민들 사이에는 안보불안이 증폭되고 있다. 

북한 어선이 동해바다와 북방한계선을 넘어 남한 해안부두까지 유유자적 들어온 상황은 안보 시스템에 큰 허점이 있다는 강력한 신호임이 분명하다. 이번 사건은 경계작전의 실패를 넘어 군과 정부의 안이한 대처는 물론 국방태세에 대한 의구심이 커질 수 밖에 없다. 

실제, 군의 실질적 안보태세가 제대로 갖춰있는지에 대한 그 의구심은 최근 SNS 등을 통해 급격히 확산되고 있는 모습이다. 

현재 북한과의 관계 개선이 이뤄지는 분위기라고 해서 군이 정치에 좌우돼서는 곤란하다. 더구나 그들의 진의까지 파악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행여 남북 대화와 대북 친화적 국방정책 탓에 ‘이제 적(敵)은 없다’는 환상과 나약함을 군에 심어주는 것은 아닌지 국민은 걱정하고 있다.

그렇치 않아도 전후 세대 인식 속의 6·25는 이미 ‘잊혀진 전쟁’이 되어 가는 흐름이다. 2015년 한국갤럽이 전국의 성인남녀 1000명에게 6·25가 언제 일어났는지 물었더니 ‘1950년’이라고 답한 이가 64%밖에 되지 않았다. 특히 20대의 47%는 6·25전쟁 발발 시점이 1950년임도 몰랐다. 6·25전쟁은 종전(終戰)한 것이 아니라 엄연히 정전(停戰) 중인데도 그렇게 서서히 잊혀져 가고 있다. 

문제는 현 시점에서 문재인 정권의 안보 능력과 자세에 기본적 이상이 있는 것 아니냐는 국민적 불신이 높다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군 및 유엔군 참전유공자 초청 오찬에서 묵념하고 있다.ⓒ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군 및 유엔군 참전유공자 초청 오찬에서 묵념하고 있다.ⓒ뉴시스

국가관·역사관 혼란

그런 면에서 최근 문 대통령의 행보는 주목될 수 밖에 없다. 

문 대통령은 6·25전쟁 69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 24일 참전 유공자와 유가족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6·25는 북한의 침략을 이겨냄으로써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켜냈다”고 말했다. 북한의 남침을 적시하고, 남침 극복에서 대한민국 정체성의 연원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극히 당연한 역사 인식이 새삼 관심을 끈 것은, 그동안 문 대통령의 국가관·안보관이 매우 혼란스럽게 비쳤기 때문이다. 

그동안 문 대통령은 6·25전쟁 책임이 북한에 있음을 분명히 한 적이 없다. 여러 차례 연설에서 '6·25전쟁' 대신에 '한국전쟁'이란 단어를 고집해 왔다.

가장 최근의 예가 "반만년 역사에서 남북은 그 어떤 나라도 침략한 적이 없다.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눈 역사를 가졌을 뿐"이라고 한 지난 14일 스웨덴 의회 연설이다. 문 대통령은 “한국전쟁으로 남북뿐만 아니라 참전국의 장병까지 수많은 목숨을 잃었다”는 말로 전쟁의 책임을 언급하길 꺼린다는 인상을 줬다.

이를 두고 국내에서 북한의 전쟁 책임을 희석하고, 6·25전쟁을 '쌍방 과실'로 몰아갔다는 비판이 나왔는데 그럴 만했다.

지난 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는 한발 더 나아갔다. 문 대통령은 추념사에서 6·25 남침 주역으로서 김일성 훈장까지 받은 김원봉을 추켜세웠다.

지난 2차례의 추념사와 마찬가지로 '북한'과 '6·25'는 아예 언급도 하지 않은 채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해 고위직을 지냈으며 남침 전쟁 수행 공로로 최고 훈장까지 받은 김원봉을 '국군 창설의 뿌리'로 지칭했다. 6·25 참전 용사와 전사자, 그들의 유가족에 대한 모독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역사의 왜곡이자 가치 전도(顚倒)였다. 차마 대한민국 대통령의 국가관·역사관이라고 믿기 힘들다. 

김원봉이 항일무장투쟁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1948년 4월 월북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국가검열상·노동상 등 고위직을 역임했다. 1958년 숙청됐다고 하지만 북한 내부 권력 투쟁의 결과일 뿐, 대한민국에 기여한 바는 전혀 없다. 김원봉을 기리는 것은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파괴하려던 ‘북한에 대한 애국’을 기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실로 반(反)대한민국 행태다. 현 정부에서 문 대통령 뿐 아니다. 국가보훈처 산하 공법단체인 광복회 회장까지 그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김 회장은 취임한 뒤로 잇달아 김원봉을 칭송한 반면, 창군(創軍) 원로로 ‘6·25전쟁 영웅’인 백선엽 예비역 대장에 대해선 폄훼했다. 백 장군이 한때 몸담았던 일제 간도특설대가 ‘독립군 말살 부대’였다며, 백 장군을 예방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에게 “몰역사적 행위에 대해 국민 앞에 사과하라”고도 요구했다. 백 장군은 “당시 중국공산당 팔로군과 싸웠고, 독립군은 본 적도 없다”고 밝힌 바 있지만, 그 증언마저 그의 국가 수호 전공(戰功)과 함께 없던 일로 치는 셈이다.  

'진실' 유린 확실한 대응을

전쟁의 비극과 평화의 가치를 다시 깊이 생각해야 한다. 모두들 전쟁없는 한반도를 말하지만 평화도 안보태세가 바르고 힘이 있어야 지킬 수 있다.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로마 군사전략가 베제티우스의 명언을 생각해볼 때다. 6·25전쟁의 영웅 맥아더 장군도 “작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있지만 경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최근 공개 발언은 남한 정부의 자세에 큰 경고를 던진다.

김 위원장은 지난주 중국 국가주석으로서는 14년 만에 방북한 시진핑 주석과 함께 평양의 조중우의(朝中友誼)탑을 참배한 뒤 “조선(북한)이 침략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중국 인민지원군이 치른 용감한 희생을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했다. 6·25를 한국과 유엔군이 침략한 ‘북침(北侵)’전쟁으로 강변했다.

조중우의탑은 6·25 당시 북한을 지원해 한국을 침공한 중공군을 기념해 1959년 북한이 세운 상징물이다. 북한과 중국은 지금 한반도 문제를 둘러싸고 다시 우의를 다지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은 그동안 6·25를, 북한을 도와 미국에 대항한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이라 부르며 북한이 침략당한 것처럼 호도해왔다. 

일부이긴 하지만, 6·25가 남한이 북한의 침략을 유도해 일어난 것이라는 수정주의 역사학자들의 ‘북침설’ ‘남침 유도설’ 주장은 이미 소련 해체로 북한의 의도적 침략을 증명하는 소련 기밀문서가 공개된 후 힘을 잃었다.

김정은이 6·25를 북한이 ‘침략받은 전쟁’이라고 공공연히 언급한 것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망발이다.  

남북한 화해가 아무리 중요해도 북한의 ‘6·25 북침론’에 대해서는 엄중히 경고해야 마땅하다. 터무니없는 북침 주장을 방치해선 자유로운 대한민국을 지킬 수 없다. 조국을 지키다 산화한 호국영령들이 지켜보고 있다. 정부는 '진실'을 유린하고 있는데 대한 확실한 대응조치와 입장을 밝혀야만 한다.

청와대 정점 ‘조직적 모의’ 의혹

더욱 중요한 것은 실질적 안보 능력과 태세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안보의식은 너무 허술하다. 논란이 끊이지 않는 북한 어선의 삼척항 입항 사태가 대표적 사례다. 

‘귀순 北 어선’ 의혹 사건은 ‘57시간 레이더 포착 실패’ 등 기술적 부분도 문제이지만, 더 심각한 점은 귀순 사건을 접한 이후 군과 경찰, 통일부까지 거짓말과 말바꾸기로 정황을 희석시키려 했다.

‘귀순 北 어선’ 의혹 사건은 문재인 정권의 진실성에 근본적 의심을 갖게 한다. 

은폐·왜곡을 위한 ‘조직적 모의’ 의혹이 커지는 가운데 청와대가 정점에 있을 것이라는 정황도 속속 드러났기 때문이다. 

청와대 행정관이 국방부 브리핑에 몰래 참석한 사실이 밝혀져, 국방부 출입기자들이 항의 성명을 발표하는 일까지 있었다. 북 어민 4명 중 2명의 신속하고 조용한 귀환도 군 독단으로 했다고 보기 힘들다. 통일부의 ‘어선 폐기’ 언급도 수상쩍다. 청와대와의 조율 없이 이런 일들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상황이 이러니 ‘군은 청와대 눈치 보고, 청와대는 김정은 눈치 본다’는 말까지 설득력 있게 나돈다. 이번 발언을 계기로 정부는 안보의 언행 일치를 바로 잡도록 해야만 한다.

안보는 정확한 상황 판단과 그에 따른 원칙적인 대응을 해야지 정무적인 판단이 개입할 이유가 없다. 5월 국방부는 북한의 도발을 두고 ‘미사일’이 아닌 ‘발사체’라고 하더니 아직까지 그 분석 결과를 내놓지 않고 있다. 남북관계 자체가 목적이 되다 보니 벌어지는 비정상적인 일들이다. 결코 어물쩍 넘어갈 일이 아니다. 철저히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물어 재발을 막아야 한다.

느슨한 안보관 국방태세 재점검을

구체적으로, 국민들이 가장 불안해하는 대목은 ‘귀순 北 어선’이 지난 9일 함경북도에서 출항하여 지난 12일 오후 9시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무려 57시간이 넘는 동안 동해안을 떠다니고 있었는데, 군과 해경은 어선의 동태를 전혀 식별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중대한 경계의 실패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군이 이번 사건에 대한 진실을 은폐하고 있지 않는가에 대한 의구심이다. 국방부는 어선이 발견된 장소에 대하여 ‘삼척항구 인근’이라고 거짓말로 발표했다. 또한 해경이 이틀 전에 상세하게 보고한 사실도 감췄다. 특히 20일 국방부 장관은 어선 사건과 관련된 대국민 사과문만 읽고 더 이상 기자들의 질문도 받지 않을 정도로 사건 진실을 국민들에게 알리는데 미흡한 태도를 보였다. 

청와대의 태도 역시 국민들에게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국방부의 브리핑 현장에 청와대 행정관이 있었음에도 국방부의 잘못된 발표를 방관하였는가 하면, 이 사건을 보도한 언론에 대하여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남북관계 경색 운운하면서 언론을 탓하는 태도 등은 이해하기 어렵다. 

청와대 수석은 "만일 (북 주민) 4명이 다 귀순 의사를 갖고 넘어왔다면 그것이 보도됨으로써 남북 관계가 굉장히 경색됐을 것"이라고 했다. 사람답게 살겠다고 사선(死線)을 넘은 헌법상 우리 국민을 '남북 쇼'를 방해하는 골칫거리인 양 취급한 것이다. 이러니 내려온 4명 중 2명을 두어 시간 조사하고 서둘러 북으로 돌려보냈을 것이다.

청와대가 남북관계를 지나치게 의식, 사건을 축소하려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의혹이 제기될 수 밖에 없다. 

이번 ‘귀순 北 어선’에 관련된 각종 의혹은 단순한 군의 해상경계 작전 실패 정도로 끝나서는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우리 안보와 대북 경계 체계가 이름뿐인 '허울'이며 말단까지 허물어지고 있다는 징후이기에 그렇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의 말은 거의 ‘유체이탈’ 수준이다. 그는 전군 주요 지휘관회의에서 “엄중하게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누가 누구의 책임을 묻는다는 것인가. 평소 군 기강을 세우지는 않다가 경계가 뚫리자 서둘러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이다. 군은 위기감을 갖고 안보태세를 철저히 재정비해야 한다. 평화는 중요하지만 안보의 뒷받침이 최우선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부는 국민의 안보 불안을 해소하려면 이 사건에 대한 진실을 성역없이 조사, 발표함은 물론 관련자에 대한 엄중한 문책이 반드시 있어야 된다. 

야당에서 정 국방장관의 경질을 요구하고, 문재인정권이 북한과 맺은 남북군사합의 폐기를 요구하는 것은 이 상황에서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번 경계의 실패가 대화와 국방태세를 구분하지 못한 현 정권의 느슨한 안보관에 파생돼 있는 것이라면 그건 굉장히 불길한 전조다.  

과연 우리 군은 평화를 지킬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인지, 한반도 평화 무드에 휩쓸려 경계근무는 물론이고 각종 훈련조차 제대로 실시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점검해야만 한다.

한 사람 억울함도 없게 해야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부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6·25 전쟁상처의 치유와 관련 정책의 재정립 및 시행에 나서야 할 것이다. 

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창원유족회는 지난 8일 제69주기 12차 창원지역 합동추모제를 봉행한 바 있다. 이는 6·25 때 보도연맹원 등 예비검속된 민간인들이 국가에 의해 억울한 죽음을 당한 지 그렇게 오래되었다는 얘기고, 70년이 다 된 오늘날까지 그들의 억울한 죽음이 제대로 달래지지 않고 그 진상마저 밝혀지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정부가 나서서 지난 역사에서의 억울함을 풀어야 할 때이다. 

6·25전쟁 과정에서 억울하게 명을 달리한 국민은 적어도 수십만에 달할 것이다. 후퇴과정에서 총살 또는 수장 등 갖가지 방법으로 처형된 이들의 숫자는 최대 20만 명을 넘는다는 연구자료도 있으며, 전쟁과정에서도 부역 등의 이유로 희생당한 이들도 많다. 

전쟁의 상처를 극복하는 것은 국민이 잘살게 하는 것만이 아니다. 전쟁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도 포함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그것을 하지 않았다. 산업화와 그 과정에서의 독재정권이 이유일 수 있으나, 그 후에도 아무런 국가적 치유가 없는 것은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6·25전쟁은 분명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꾸짖으려면 대한민국 국민을 제대로 지켜내지도 못했고 오히려 목숨을 앗아간 데 대한 반성과 처방이 먼저이다. 국가가 기록을 확보하고, 멸실되었다면 상세한 재조사를 통해  한 사람의 억울함도 없게 해야 비로소 이데올로기를 극복하고 제대로 된 국가로 자리매김될 수 있다. 지금 당장 정부가 나서야 한다. 

미국과 한국, 추모자세 대비

마음자세는 모든 일의 근본이다. 6·25에 대한 자세는 미국과 한국이 대비된다. 

미국의 한 6·25전쟁 참전용사 장례식에 유족 대신 많은 시민들이 모여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의 스프링 그로브 묘지 측은 90세 나이로 숨진 6·25 참전용사 헤즈키아 퍼킨스의 장례식 전날인 지난 24일 페이스북에 안내문을 올렸다. 고인의 딸이 건강상 이유로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하게 됐으니 지역 주민들이 젊은 시절 한국을 위해 싸운 미국 군인의 ‘상주’ 역할을 해 달라고 당부하는 내용이었다. 이를 보고 고인과 일면식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든 것이다. 

장례식에선 켄터키주 육군부대 ‘포트녹스’ 소속 군인들이 성조기를 접어 전달하는 국기 의식을 진행했다. 오토바이를 선두로 한 수백 대의 추모 차량 행렬과 제복을 차려입은 퇴역군인들이 장례식장을 가득 메웠다. 수백 마일을 운전해 달려온 이들도 있었다. 묘지 측은 성명을 통해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지역사회가 너무나 자랑스럽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번 일은 나라를 위해 싸운 군인에 대한 예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미국의 저력과 미국인의 자긍심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깨닫게 한다. 

우리의 모습은 대조적이다. 순직 장병을 추모하지는 못할망정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나라를 위해 소중한 목숨을 바친 장병들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 이들을 기억하고 가슴에 새기는 일은 국가의 의무이자 국민의 본분이다. 미국은 지금도 6·25 전사자 유해를 찾기 위해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우리는 나라를 위해 헌신한 이들에게 너무 소홀하지 않았는지 되돌아 보고 깊게 반성해야만 한다.

아픈 역사 희생 정당한 예우를

그런 점에서 6·25참전 소년병 보상·예우 특별법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제22회 6·25참전 순국 소년병 위령제가 지난 21일 대구 낙동강 승전기념관에서 생존 소년병과 유가족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참석자들은 한창 공부할 어린 나이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소년병들의 희생정신과 넋을 기렸다. 

하지만 생존 소년병들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세월이 70년가까이나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국가로부터 어떠한 사과나 보상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6·25참전 소년병은 만 18세 미만이라 병역의무가 없는데도 정규군에 징집돼 전쟁을 치른 이들을 일컫는다. 이들 중에는 영문도 모르고 끌려간 이가 상당수이고 제대로 된 훈련도 받지 못한 채 치열한 전투 현장에 투입됐다. 국방부와 소년·소녀병전우회는 이 같은 소년병이 여군 400명을 포함해 2만9천여명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중 확인된 전사자는 2천573명이다. 

소년병들은 책 대신 총을 들고 6·25전장에서 피 흘려 싸웠지만 정규 군인이나 학도병과는 달리 합당한 보상과 예우를 받지 못했다. 물론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제대로 된 추모시설도 없다. 정치권 역시 이들에게 무관심하기는 마찬가지다. 16~19대 국회에서 4차례나 보상 관련 법안이 발의됐으나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됐다. 

6·25참전 소년병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아픈 역사이다. 하지만 이들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이제 아흔을 바라보는 소년병들에게 명예를 회복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늦기 전에 정부는 이들이 명예롭게 눈을 감을 수 있도록 진심어린 사과와 함께 보상 등 정당한 예우 방안을 찾아야 한다. 정치권도 20대 국회가 끝나기 전에 보상 관련 특별법이 통과될 수 있도록 여야를 떠나 함께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안보태세 확립 역사관 거듭나야

6·25전쟁에서 북한의 침략에 맞서 싸운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영웅이다. 군사 정권을 거치면서 박제화됐던 이 사실이 나라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오히려 더 새롭게 인식되고 있다. 

나라를 되찾은 것만큼이나 되찾은 나라를 지킨 노력의 소중함을 기억하는 6·25 69주년이 돼야 한다.

우리 스스로 긴장을 푼다면 가상의 적은 언제라도 발호하기 마련이다.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도 국방력 강화와 철통 같은 경계태세가 필요하다. 

호국 영령이 지키려는 가치는 무엇이었으며, 만들려는 나라는 어떤 나라였으며, 그리고 목숨 걸고 어떤 적에 맞섰던 것인지를 선명하게 규정하고, 그 뜻을 이어가는 것이 ‘국가 보위’의 본질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에 따른 비무장지대(DMZ) 방문과 대북 메시지는 중요한 전기가 될 수 있다. 물론 물밑에서 전개된 외교적 노력을 잘 포장된 메시지로 공개하는 이벤트도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실질적 진전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한낱 쇼였음이 드러나는 것은 순식간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정부가 6·25전쟁 69주년을 맞아 거듭나는 실질적인 안보태세의 확립과 진정한 역사관의 변화를 보여주길 바란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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