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나의 아지트, 철원 복계산
[칼럼] 나의 아지트, 철원 복계산
  • 최기영 피알비즈 본부장
  • 승인 2019.06.30 17: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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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영의 山戰酒戰〉 다투지 않아도 되는 山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최기영 피알비즈 본부장)

복계산 정상 표지석 ⓒ 최기영
복계산 정상 표지석 ⓒ 최기영

나에게 철원은 한때 저주의 땅이었다. 대학교 2학년 휴학을 하고 의정부에 있던 보충대로 입대했다. 그리고 철원 백골부대로 배치돼 6주 간 신병 교육을 받기 위해 버스를 타고 난생처음 철원 땅을 밟았다. 부대 상징이었던 하얀색 해골바가지가 여기저기 보였고 신병훈련소에 도착하자마자 더플백을 멘 채 빨간 모자를 쓴 조교 앞으로 죽어라 달려갔었다. 그렇게 군 생활을 시작했던 곳이 바로 철원이다. 

시간이 흘러 이 산 저 산을 찾아다니며 등산을 즐기고 있을 때 우연히 철원 복계산을 알게 됐다. 내 기억에는 한없이 멀고 고립돼 있었던 철원이었는데 막상 가보니 서울에서도 의외로 가깝고 호젓했다. 폭포와 암릉이 있는가 하면 군데군데 멋들어진 노송과 쉼터도 있었고, 아담한 계곡도 있다. 

산을 타는 사람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산행지의 조건을 꼽으라면 대중교통을 이용해 집에서 두어시간 정도면 갈 수 있고, 네 시간 정도 산행한 다음 한잔하고 적당한 피곤함으로 너무 늦지 않게 귀가할 수 있는 코스가 아닐까. 복계산은 그런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산이다. 거기에다가 산 좋고 물 좋은 동네에 있으면서도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인파가 몰리는 주말의 근교 산과는 달리 혼자는 물론, 가족이나 친구들과도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저 멀리 가장 높은 봉우리가 민통선 안에 있는 대성산이다. 연말 크리스마스 트리를 점등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 최기영
저 멀리 가장 높은 봉우리가 민통선 안에 있는 대성산이다. 연말 크리스마스 트리를 점등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 최기영

한북정맥은 백두대간의 추가령에서 한강과 임진강까지 이르는 산줄기다. 한북정맥을 타기 위해 오르는 첫 번째 봉우리가 복주산인데 그곳을 오르기 위해 산행을 시작하는 곳이 바로 복계산이다. 서울과 가까운 수도권에서 민간인이 오를 수 있으면서 비무장지대와 가장 가까운 최북단의 산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가끔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을 때 찾는 아지트 같은 곳이기도 하다. 

지난 주말 철원 복계산을 오르기 위해 철원으로 향했다. 요즘 철원으로 가는 도로는 아주 시원하게 뚫려 있다. 철원에 들어서고 복계산에 도착하기 전에 하얀 해골바가지가 나타나자 나도 모르게 ‘헉’하며 놀랐다. 백골부대 신병훈련소였다. 찐하고 화끈했던 그 시절 기억이 떠오르자 반가웠던(?) 모양이다. 

그렇게 매월대폭포 버스정류장에 도착해 산행을 시작했다. 생육신 중의 한사람인 매월당 김시습은 조선 7대 임금인 세조가 단종을 폐위시키고 왕위를 찬탈하자 이에 비분해 모든 관직을 버리고 이곳 복계산 일대 산마을에서 은거하며 지냈다고 한다. 그후 그가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며 바둑을 뒀다는 암봉은 그의 호를 따서 매월대라고 했고, 그래서 복계산에 있는 시원한 폭포의 이름도 매월대폭포다. 

산행을 시작해 30여분쯤 걸어가면 매월대 폭포를 만난다. 30여m는 족히 넘는 높이에서 시원하게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 최기영
산행을 시작해 30여분쯤 걸어가면 매월대 폭포를 만난다. 30여m는 족히 넘는 높이에서 시원하게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 최기영

서둘러 서울에서 출발해 산행을 일찍 시작한 탓인지 복계산에는 계곡물소리와 산새들의 노랫소리 외에는 인기척이 전혀 없었다. 복계산은 이날도 오롯이 나만의 아지트처럼 한적하고 고요했고 상쾌했다. 매월대 폭포와 노송 쉼터, 그리고 삼각봉을 지나고 능선길을 만나 40여분 정도 걸으면 복계산 정상(1057m)에 닿는다. 정상에서 30-40m를 더 지나면 헬기장이 나오는데 이 방향으로 산길을 잡으면 기나긴 한북정맥을 타기 위한 여정이 시작되는 곳이다. 

복계산 정상에서는 경기도의 명산인 화악산, 명지산, 국망봉 등을 조망할 수 있고, 복주산 방향으로 시원한 한북정맥의 산세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민통선 안에 있는 한북정맥의 최북단 봉우리인 대성산도 맨눈으로 바로 볼 수 있다. 북한산이나 도봉산 등 서울 근교의 산에 오르면 도시의 복잡한 모습을 발아래에 두고 볼 수 있지만, 복계산 정상에서는 어디에도 우리가 사는 도시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오로지 거침없는 산줄기만이 이어지고 있을 뿐이다. 김시습이 왜 어지러운 속세를 피해 이곳에서 은거했는지 그 뜻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한참 동안 산세에 취해 있던 나는 원골계곡 쪽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숲이 우거진 그늘 밑에 자리를 펴고 준비했던 도시락과 막걸리를 꺼내어 허기를 달랬다. 그리고는 자리에 누우며 시원한 산바람을 느끼려 눈을 감았더니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어 버렸다. 

원골 계곡을 지나면 산촌마을이 나온다. 가장 뒤에 보이는 암봉이 김시습이 바위에 바둑판을 그려 바둑을 뒀다는 매월대다 ⓒ 최기영
원골 계곡을 지나면 산촌마을이 나온다. 가장 뒤에 보이는 암봉이 김시습이 바위에 바둑판을 그려 바둑을 뒀다는 매월대다 ⓒ 최기영

잠시 개었다 비 내리고 내리다 다시 개니
하늘의 이치가 이럴진대 세상인심이야 어떠하랴
나를 높이다가는 곧 도리어 나를 헐뜯고
명리를 피하다가는 돌이켜 스스로 공명을 구한다.
꽃 피고 지는 것을 봄인들 어찌하리
구름이 오고 구름이 가도 산은 다투지 않네
세상 사람들에게 말하노니 꼭 새겨두기를
기쁨을 취한다 해도 평생 누릴 곳은 없다네

김시습의 한문 시조 ‘사청사우(乍晴乍雨)’의 한글 버전이다. 조선 최고의 지식인 중의 하나인 김시습은 출세 가도가 보장된 엘리트 학자였지만 수양대군의 왕위찬탈과 사육신의 죽음을 접하고는 3일 간 통곡을 하다가 읽던 책을 모두 불사르고 스스로 머리를 깎고 유랑을 하며 은거 생활을 했다. 세상을 등지고자 했던 그를 보듬은 것은, 결국 산골 깊고 깊은 복계산이었던 것이다. 

잠에서 깨어나 나는 원골 계곡으로 내려와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땀을 닦았다. 말을 거는 사람도 없었고 빨리 가자며 재촉하는 사람도 없었다. 혹시 이번 주 한적하고 여유 있는 산행지를 찾고 있다면 철원의 복계산을 추천한다.

최기영은…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前 우림건설·경동나비엔 홍보팀장

現 피알비즈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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