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웅식의 正論직구] 아이돌 가수와 기업의 상표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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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식의 正論직구] 아이돌 가수와 기업의 상표권 
  • 김웅식 기자
  • 승인 2019.07.04 1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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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웅식 기자]

상표권을 개인이 소유하는 것은 마치 사람 몸에서 얼굴을 분리한 것과 진배없다. 상표권은 실체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담보하는 것으로, 실체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요즘은 개인의 법인 상표권 소유를 제한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인터넷커뮤니티
상표권을 개인이 소유하는 것은 마치 사람 몸에서 얼굴을 분리한 것과 진배없다. 상표권은 실체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담보하는 것으로, 실체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요즘은 개인의 법인 상표권 소유를 제한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인터넷커뮤니티

오는 9월 예정인 원조 아이돌 가수(H.O.T.) 재결합 콘서트 입장권이 벌써 매진됐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만큼 지난날을 추억하고 싶은 H.O.T. 팬이 많은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를 아버지라,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일’이 올해도 벌어질 것 같다.   

지난해 원조 아이돌 그룹 H.O.T.가 17년 만에 콘서트를 열었지만, H.O.T.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못해 아쉬움을 자아냈다. H.O.T. 상표권을 예전 엔터테인먼트 대표 개인이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가 상표권 사용을 양보해 줬으면 하는 팬들의 바람이 강했지만 현실은 냉담했다. 상표권 사용료 타결이 안 됐고, 결국 H.O.T.이지만 H.O.T.라 부르지 못해 공연의 의미는 반감된 듯했다. 김 모 대표는 1990년대 당시 H.O.T.를 발굴해 키워냈고 H.O.T. 상표권을 자신 앞으로 등록했다.  

사실 아이돌 그룹의 얼굴이랄 수 있는 팀 브랜드는 외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소속 가수의 성장에 따라 팀 브랜드도 함께 인기를 얻고 가치를 높여가게 마련이다. 그래서 H.O.T. 상표권의 주인으로 군림하는 듯한 엔터테인먼트 대표의 배타적인 모습은 좋아 보이지 않았다. 팀 브랜드에는 대표의 수고 못지않게 소속 가수의 노력과 땀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상표권의 문제는 비단 아이돌 가수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기업의 상표권을 두고도 논란이 벌어지기도 한다.    

올해 기업공개(IPO) 시장에서 최대어로 꼽혔던 한 중견기업이 결국 상장 예비심사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최고경영진 및 임원 관련 이슈가 잇따라 터지면서 ‘경영 투명성’이 화두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기업 상표권이 문제가 돼 곤혹을 치렀다. 논란의 중심에는 회사 실세였던 본부장이 있었다. 본부장은 회사 설립 2년 전인 2005년부터 회사의 국내 상표권을 개인적으로 보유해 왔다. 그는 회사 창립자인 회장의 사위로 실질적 오너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문제는 회사를 매도·매수 하면서 발생했다. 2015년 회사 지분 90.35%를 인수한 최대주주가 본부장으로부터 180억원에 상표권을 매입하게 된다. 논란의 핵심은 상표권을 이전하면서 그 대가로 거액을 지불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다. 

상표권 가치는 한 개인의 노력으로 생긴 것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 일각에서는 회사가 성장함에 따라 자연스레 상표권의 가치가 높아지는데 소유권을 개인이 갖는 것도 문제지만, 이를 타인에게 넘겨 이익을 얻는 것은 경영상 배임·횡령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한다. 

대림산업은 호텔사업에 진출하면서 2013년 대림그룹의 자체브랜드인 ‘글래드(GLAD)’를 개발한 뒤 에이디플러스 앞으로 상표권 출원과 등록을 했다. 에이디플러스는 이해욱 회장과 이 회장 아들이 55%와 45%의 지분을 가진 회사다. 

공정위 조사 결과 에이디플러스는 2016년 1월부터 2018년 7월까지 오라관광(현 글래드호텔앤리조트)으로부터 약 31억원의 브랜드 수수료를 받았고, 이는 이 회장과 이 회장 아들에게 부당하게 귀속된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위는 이 회장이 ‘GLAD호텔’ 브랜드 사용료와 관련해 부당한 사익을 취했다고 보고, 지난달 이해욱 회장을 검찰에 고발키로 결정했다. 

상표권을 개인이 소유하는 것은 마치 사람 몸에서 얼굴을 분리한 것과 진배없다. 상표권은 실체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담보하는 것으로, 실체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요즘은 개인의 법인 상표권 소유를 제한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검찰은 상표권을 개인 명의로 등록한 프랜차이즈 기업 대표들을 배임 혐의로 기소한 바 있다.

지난해 원조 아이돌 그룹(H.O.T.) 재결합 콘서트는 상표권 협상이 결렬됨에 따라 ‘High-five Of Teenagers’라는 이름으로 진행됐다. H.O.T. 상표권 소유자 김 모 대표는 이 이름마저 문제 삼는 모양새다. ‘H.O.T.를 H.O.T.라 부르지 못하는’ 팬들의 씁쓸한 마음을 헤아려 줬으면 좋겠다. 그게 H.O.T.를 좋아하고 키웠던 국민에 대한 기본 예의일 것이다.

담당업무 : 논설위원으로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2004년 <시사문단> 수필 신인상
좌우명 : 안 되면 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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