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도의 時代架橋] 판문점 이벤트-‘쇼’냐 ‘북핵 해법(解法)’이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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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의 時代架橋] 판문점 이벤트-‘쇼’냐 ‘북핵 해법(解法)’이냐 ?
  • 이병도 주필
  • 승인 2019.07.0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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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없는 낙관론 경계해야
역사적 DMZ 회동, 이제 빈손은 안된다
'트럼프 대선'과 '김정은 핵보유' 거래 우려
갈 길 먼 비핵화, 관건은 北 진정성
실무협상, 北 전향적•구체적 태도가 관건
CVID 관철까진 對北 제재 유지해야
워싱턴 4차 정상회담 준비 성과 이루길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이번 '판문점 이벤트'는 교착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북한 비핵화 협상의 물꼬를 다시 텄다는 점에서 다행스럽다. 그러나 정치적 이벤트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반향은 엇갈린다. 비핵화 협상의 실질적 진전을 담보하지 않는 ‘정치적 쇼’라는 비판과 함께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줄이는 사실상의 ‘불가침 선언’이란 평가가 공존한다.

사실, 미·북 정상의 이번 회담이 ‘보여주기식 쇼’에 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재선을 위한 외교적 성과가 필요한 트럼프와 국제사회의 제재로 인한 내부 불만을 핵 능력을 보존한 채 무마할 필요성이 커진 김정은에게 이번 만남은 손해볼 것이 없는 ‘윈윈’ 게임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한반도 평화정착에 대한 기대는 커지고 있으나, 정작 북핵 해결 방안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미·북 핵 협상은 지난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북한은 우리 방어 체계를 무력화시키는 신형 탄도미사일을 두 차례나 발사했다. 실질적인 한반도 안보 환경은 더 불안해졌다. 북한은 오히려 트럼프 방한 직전엔 핵무력 완성을 자축하는 행사를 갖기도 했다.

'판문점 이벤트'가 있기 전날인 29일 김 위원장 추대 3주년 중앙보고대회에서 ‘핵무력 완성’을 김 위원장의 최대 업적으로 내세웠다. 북·미 대화 분위기가 조성되는 상황에서 기 싸움의 성격이 강했다. 김 위원장이 진정 미래를 향해 나아갈 생각이 있다면, 입으로만 ‘과거 청산’을 외칠 게 아니라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를 취해야 한다.

결국, 이번 판문점 미·북 정상회담의 성공 여부는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실제로 얼마나 기여하느냐로 평가돼야 할 것이다.

지난달 30일 경기도 파주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포옹하고 있다.ⓒ뉴시스
지난달 30일 경기도 파주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포옹하고 있다.ⓒ뉴시스

이제부터 다시 시작

남·북·미 정상이 지난 30일 비무장지대(DMZ)에서 자리를 함께한 것은 ‘역사적 이벤트’임에 분명하다.

미국과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한반도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에서 손을 맞잡은 것은 1953년 정전(停戰)협정 체결 이후 66년 만이기에 그렇다. 전쟁이 멈춘 경계선에서 회동한 것은 그 자체로 역사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 땅을 밟은 첫 미 대통령’이 됐다. 역사적 장면은 전 세계 미디어의 관심을 받으며 실시간으로 지구촌 곳곳으로 전파됐다.

세계는 역사에 기록될 일요일의 초대형 뉴스에 흥분했다. 북미 두 정상은 악수만 나눌 것으로 예상됐지만, 배석자 없는 단독회담을 1시간 가까이 해 사실상 3차 북미 정상회담으로 기록되게 됐다.

그러나 이 이벤트가 ‘역사적 성공’이 될지 ‘역사적 실패’가 될지는 예단하기 힘들다. 북한 핵 폐기를 어떻게 이뤄내느냐에 달렸기 때문이다. 

판문점 회동은 엇갈린 반응과 평가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실무협상의 물꼬를 텄다는 점은 분명하다. 핵심은 이번 만남이 북한의 실질적인 핵폐기로 이어지느냐 여부다. 한반도 비핵화 협상은 이제부터가 다시 시작이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이르기까지는 여전히 많은 난관이 남아 있다. 판문점 회동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구축하기위해 넘어야 할 평화프로세스의 큰 고개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공은 북한에 넘어갔다. 북한이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를 통해 화답하느냐가 관건이다. 

향후 실무협상이 성과를 거둘지 여부는 북한의 태도 변화에 달렸다. 북한이 진정한 비핵화 의지를 갖고 협상에 나선다면 활로가 열릴 것이다.

역사적인 남북미 DMZ 회동까지 이뤄놓고 이제 빈손은 안된다. 또 다시 하노이 노딜이 재연된다면 이번 회동은 그야말로 전 세계에대한 기만이자 사기가 될 것이다.

신뢰와 체제 안전, 일정 부분 해소

화려한 이벤트가 곧바로 문제의 실질적 진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화려한 쇼가 끝난 뒤엔 고단한 실무협상이 기다리고 있다. 이달 중순이면 북미 간 실무협상이 공식적으로 재개될 예정이다. 사실 판문점 회동에서 북미 간 기존 입장 차이가 좁혀진 건 없다. 

6·30 북-미 판문점 정상회동의 사실상 유일한 합의라면 앞으로 2, 3주 안에 비핵화 실무협상을 재개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이끄는 미국팀과 북한의 새로운 협상라인 간에 실무 협상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4개월 동안 교착에 빠져 있던 북·미 협상을 재개하게 된 것이다.

이번 판문점 남북미 회동이 한반도 교착의 돌파구를 여는 실질적 계기가 될지, 아니면 시간을 벌고 상황을 관리하기 위한 현란한 쇼로 판명 날지는 두고 봐야 한다. 그것은 머지않아 재개될 비핵화 실무협상에 임하는 북한의 자세 변화에 달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입장에 변화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동 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올바른 협상”이라고 했다.

미국은 이미 ‘단계적·병행적 해법’을 거듭 강조함으로써 기존 ‘빅딜론’에서 유연성을 보이겠다는 뜻도 밝혔다. 북한도 비핵화의 최종 목표를 세우고 로드맵에 따라 주고받기 협상이 가능한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그간 이를 주저하게 했던 신뢰와 체제 안전 문제는 이번에 일정 부분 해소된 측면이 있다.

판문점 회담을 마친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을 진행하다 보면 제재가 해제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과거와 다소 뉘앙스가 다른 발언을 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북-미가 합의점을 찾을 가능성이 있음을 엿보게 한다.

이때문에 미국이 ‘북핵 완전폐기’가 아닌 ‘핵 동결’로 협상 목표를 하향 조정할 수 있다는 일부 우려도 나오는 것이다. 

회동 상징성과 실무협상 주목

물꼬 트인 북미 비핵화 협상의 관건은 정상들의 의지를 헤아리며 실무팀이 만들어 가야 할 타협안이다. 

미국은 그동안 일괄타결과 선(先) 비핵화 후(後) 제재완화 또는 후 보상을 내세우고 북한은 동시 행동, 단계적 해법을 앞세워 대립했다. 결국 문제는 간극을 좁히는 창의적 절충안이다. 

양측은 여전히 비핵화와 체제안전 보장 교환 등을 규정한 싱가포르 합의 이행 방안과 인식에 차이를 보이고 있다. 북한은 신뢰 구축과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후 평화체제 논의, 그리고 비핵화 순서로 가는 이른바 ‘단계적·동시적 이행방식’을 원한다. 반면 미국은 이 세 가지를 한꺼번에 입체적으로 추진(동시적·병행적 이행)할 것을 고수하고 있다. 결국 실무협의 성패의 관건은 이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런 점에서, 하노이 노딜 충격 이후 미 조야에서도 일괄타결에 대한 회의론이 번진다는 전언은 주목된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특별대표가 판문점 이벤트 전날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을 비공개 접촉하기에 앞서 ‘단계적·병행적 해법’을 언급한 것은 기존 ‘빅딜론’에서 유연성을 보이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회동 후 원론적이지만 제재 완화 가능성을 언급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하노이 노딜’ 이후 넉달 넘게 공식 협상은 열리지 않았지만, 물밑 접촉을 통해 이견을 좁혀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포괄적 협상’ 전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미국에 요구해온 ‘새로운 셈법’이라는 벽을 이번 판문점 만남을 통해 일단 넘어선 측면은 있어 보인다. 앞서 김 위원장은 북-러 정상회담에서 ‘안전 보장이 핵심이며 비핵화에 대한 상응 조처가 필요하다’는 협상 원칙을 밝힌 바 있다. 비핵화에 따른 체제 안전과 상응 조처가 결국 실무협상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음을 짐작하게 한다.

한반도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에서 70년 적대국인 북미 정상이 함께 군사분계선을 넘나든 것은 미국이 북한의 현 체제를 인정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해석될 만하다. 

북한은 그간 미국의 군사적 압박과 이에 따른 체제 불안을 가장 우려해 왔고, 이는 비핵화 협상이나 개혁·개방 움직임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판문점 회동에서 명시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짧은 시간이나마 북한 땅을 밟은 것은 더 이상 무력에 의한 체제 압박과 전복은 없을 것임을 전 세계에 공언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화 동력 외엔 기존 기조 유지

그러나, 실무 협상의 난항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판문점에서 김 위원장과 사실상의 제3차 북미 정상회담을 한 직후 ”속도가 아니라 포괄적인 좋은 합의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FFVD(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에 대한 ‘포괄적 합의’없이는 협상을 타결하지않을 것임을 거듭 확인한 셈이다. 그 이전까지 대북 제재가 계속됨은 물론이다. 

북한은 강경파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협상 배제를 주장하며 새로운 미국 측 협상 라인 구축을 기대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폼페이오 장관과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로 이어지는 기존 협상라인을 유지한다는 방침을 고수했다. 정상 간엔 아무리 좋은 관계일지라도 실질적 협상은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도 여전히 비핵화의 대가로 안전보장 등 군사적 상응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와 동시에 타결을 요구하는 ‘평화협정’(불가침조약)이나 미군 철수 또는 감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의 군사전략을 감안할때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 

'판문점 이벤트'가 꺼져 가던 대화의 동력을 살려낸 것 외에 크게 변한 것은 없어 보인다. 김정은은 여전히 미국에 ‘셈법 수정’을 요구했을 테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제재는 유지될 것”이라며 ‘선(先)비핵화’ 기조를 재확인한 셈이다.

최근 한 국민 여론 조사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우리 국민 77%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북한이 이런 의구심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북한이 원하는 경제제재 해제도 요원한 일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은 향후 북핵 협상의 종착점을 어디로 끌고 가느냐가 핵심이다.

김 위원장으로서는 경제 악화를 계속 방치할 수 없는 형편이고, 트럼프 대통령도 재선 가도가 본격화한 마당에 북한 핵 문제에서 확실한 성과를 내야 한다. 이렇게 보면 다음 실무협상이 속도감 있게 진행될 가능성이 크고, 이르면 8월 중에라도 다음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낙관적인 전망이지만, 구체적인 타협안이 도출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북-미가 교집합을 찾은 상태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워싱턴에서 북-미 정상이 만난다면, 비핵화 협상은 결정적인 고비를 넘어선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은 상황이 유동적이고 언제 복병이 나타날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트럼프 목표 수정 개연성

판문점 회동의 의미를 평가절하하는 측은 대북 협상의 핵심인 비핵화 이슈가 거론되지 않은 점을 꼽는다. 이번 회동에서 대북 외교의 핵심인 '비핵화'라는 단어가 한 번도 나오지 않았음을 지적한 말이다.

미국 언론들은 "북한이 핵무기를 언제, 어떻게 포기할 것인지에 대한 깊은 견해차는 좁혀진 것이 없다"고 했다. 미국의 유력 매체들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새로운 협상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하는 등 우려도 제기된다. 

뉴욕타임스는 '새로운 협상에서 미국이 북핵 동결에 만족할 수도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다뤘고,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행정부가 "'완전하게 비핵화한 한반도'로부터 골대를 옮길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 핵 동결을 전제로 협상에 임할 것이라는 지적인데, 이는 미국이 내세운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 원칙에서 크게 벗어난 시나리오란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번 판문점 이벤트는 각자의 국내 정치를 의식해 급조된 ‘쇼’의 성격이 강함을 부인할 수 없다. 

내년 4월에는 한국 총선, 11월엔 미국 대선이 있다. 이미 두 나라에선 선거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번 판문점 회동은 트럼프 대통령의 경쟁자를 가리는 민주당 대선 예비후보 첫 TV토론 직후 이뤄졌다. 김 위원장 역시 하노이 결렬 이후 북한 주민에게 한·미 대통령이 판문점까지 김 위원장을 만나러 왔다는 식의 선전이 절실한 상황이다.

3명의 정상이 서로 추켜세우는 발언을 한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실질적 변화’는 없었다.

앞으로도 트럼프 행정부가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조그만 열매라도 조기 수확하기 위해 목표를 수정할 개연성은 얼마든지 있다. 핵 폐기를 종착점으로 규정하더라도 중간 단계를 설정해 핵 동결을 수용하는 대신 제재를 완화해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트럼프가 대북 제재를 유명무실하게 만들 가능성이다. 제재는 북한으로 하여금 핵을 포기하도록 유도할 수 있는 유일한 지렛대다. 제재가 김정은 체제의 숨통을 조이고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는 사실은 지난 하노이 회담에서 확인되기도 했다. 김정은은 제재로 자신이 망할 수도 있는 벼랑 끝에서만 핵 포기의 전략적 결단을 내릴 것이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실질적인 비핵화를 견인하지 못하고, 김 위원장에게 정통성만 부여하는 것은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미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미국 기자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실질적으로 바꾸는 건 없고, 오히려 북한 핵 보유를 정당화하는 일이라는 비판이 미국 내부에 있다”고 말한 것도 이런 우려를 반영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우려를 가짜뉴스라고 일축했지만, 비핵화가 전제되지 않으면 판문점 회동은 아무리 의미를 부여해도 이벤트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북핵 회담이라기보다는 트럼프 재선용 이벤트에 김정은이 호응해준 것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전인 2년 전 상황은 매우 위험했었는데 그 사이 많은 진전이 있었다"고 말했다. 자신이 한반도를 안전하게 만들었다는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회동을 재선 도전의 도약대로 활용하려고 한다. "김정은을 워싱턴에 초청했다"고 밝힌 것도 같은 연장선상의 측면이 있다.

김 위원장은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과거를 청산하고 미래로 나아가자”고 강조했다. 맞는 말이다. 북·미는 대결과 반목의 어두운 과거를 청산하고 밝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러려면 북·미 관계 진전의 발목을 잡는 핵 프로그램 폐기부터 서둘러야 할 것이다. 

판문점 회동이 정치적 이벤트를 넘어서는 의미를 가지려면 북한 비핵화에 실질적인 진전이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한·미 간 엇박자 경계해야

한국의 역할도 중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핵 협상에서 한국 측 입장을 대변할 유일한 사람이다. 한국의 입장은 5100만 국민이 김정은의 핵인질, 핵포로로 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북핵 협상의 본질보다는 미·북 이벤트, 남북 이벤트 자체를 중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 정부가 미·북 협상의 감시자 역할을 포기하고 고삐를 놓아 버리면 북핵 협상 구도는 철저히 미·북 양자 간의 이해관계에 따라 흘러가게 된다. 

그런 우려는 벌써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는 판문점 회견에서 북 미사일 발사 실험에 대해 "나는 미사일 발사로 보지 않는다"고 했다. 미국 영토에 날아올 수 없기 때문에 미사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트럼프는 북 미사일이 한국 영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다는 사실엔 관심도 없다.

사실, 그동안 북핵에 대한 한미의 생각은 너무 달랐다. 미국이 완전한 북핵 폐기에 초점을 둔 반면 한국은 남북 대화와 제재완화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잖아도 통상전쟁과 남중국해 문제 등으로 미중 갈등이 심해지면서 북핵 협상이 갈수록 꼬여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때에 우리가 미국과 엇박자를 내면 완전한 북 비핵화는 물 건너가고 만다. 이제라도 한미동맹을 굳건히 해 완전하고 불가역적인 북핵 폐기를 이뤄내야 한다.

북한 비핵화에 대한 한미 간 견해차는 판문점 '깜짝 쇼'에 관심을 쏟느라 내외신 모두 그 심각성을 제대로 전하지 못했다.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 영변 핵시설이 진정성 있게, 완전히 폐기된다면 그것은 되돌릴 수 없는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의 입구"라고 했다. 이에 앞서 문 대통령은 오사카 G20 정상회의에 참가하기 전 7개국 뉴스통신사와 서면 인터뷰에서 "영변 핵시설이 완전히 폐기된다면 북한 비핵화는 되돌릴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든다"고 했다. '입구'라는 말만 추가됐을 뿐 발상은 똑같다. 이어 문 대통령은 "그런 조치들이 진정성 있게 실행되면 그때 국제사회는 제재에 대한 완화를 논의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그것(영변 핵시설 폐기)은 하나의 단계이다. 중요한 단계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며 "아마 올바른 방향으로의 한 걸음이 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영변 핵시설 폐기는 환영하지만 기껏해야 북한 비핵화의 한 과정일 뿐이라는 뜻이다. 문 대통령을 세계 언론 앞에서 공개 반박한 것이다.

영변 핵시설 폐기를 조건으로 한 대북제재 완화는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이 써먹으려 했던 속임수다. 영변 핵시설은 노후화됐고, 영변 이외에 5개의 핵시설을 보유하고 있어 폐기해도 핵 능력 유지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결국 문 대통령은 김정은의 속셈을 그대로 대변한 것이다. '김정은 대변인'이라는 보도가 또 나오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다. 

근거 없는 낙관론에 빠져선 곤란하다. 북한이 대화 테이블로 돌아온 것은 그만큼 국제사회의 북핵제재가 위력을 발휘했다는 방증이다. 그럴수록 한·미 간 비핵화와 제재 해제의 선후관계를 둘러싼 엇박자를 경계해야 한다.

김 위원장 핵 포기 결단 기회

실제, 그동안 두 차례의 북미 정상회담과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에도 북한 비핵화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않았다. 

오히려 내년까지 100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게 될 것으로 전망될 만큼 북한은 핵 능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하루 전인 28일 북한은 세계를 향해 '핵 무력 완성'을 김정은의 최고 업적이라고 공표했다.

이번 회담이 역사적 의미를 가지려면 무엇보다 김 위원장의 결단이 중요하다. 김 위원장은 판문점에서 “오늘 만남이 앞으로 우리 행동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 말을 지켜야 한다. 비핵화 시늉만 내면서 제재 해제를 유도해 핵과 경제 모두를 움켜쥐려 한다면 한·미를 포함한 국제사회는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김 위원장은 북한이 ‘정상국가’가 되고 체제를 보장받으려면 실질적인 비핵화 이외에는 길이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김 위원장이 영변 핵시설 폐기와 제재해제를 맞바꾸는 ‘새로운 셈법’에 집착하는 등 비핵화 의지를 의심케 하는 행동을 계속한다면 북의 고립과 대북제재는 심화될 수밖에 없다.

김 위원장은 몇 년 전부터 경제 건설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한국, 중국, 러시아와 다각도로 접촉해 왔으나 미국과의 협상이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서 경제 개발 방안도 진척시키지 못하고 있다. 

유엔 결의에 따라 이뤄지고 있는 국제 경제제재를 북한이 비핵화 조치 없이 어느 일방과 협상으로 뚫을 수 있을 것이라는 헛된 기대를 가져선 안 된다. 북한은 최근 한국의 중재외교를 비난하면서 협상교착에 따른 조급증과 답답함을 표시하기도 했는데 한미동맹을 흔들 수 있다는 잘못된 기대도 가져선 안 될 일이다.

적극적 대안 갖고 협상 나서야 

북미는 앞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지적처럼 속도보다는 좋은 협상을 하겠다는 자세가 실로 중요하다. 

북미는 지난 2월 정상회담에서 입장차를 극복 못 하고 합의에 실패한 경험을 공유한다. 이는 역으로 보면 상대방이 원하는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는 기회를 가졌음을 의미한다. 미국은 공언대로 유연한 접근으로 협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새 셈법을 요구해 온 북한도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 제시 등 적극적인 대안을 갖고 나서야 한다.

미국은 폼페이오 장관 지휘 아래 비건 특별대표가 실무협상을 책임지는 현 체제를 유지하지만, 북한의 협상 라인은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중심의 통일전선부에서 외무성으로 교체됐음을 공식 확인했다. 

대미 협상의 중심이 외무성으로 넘어온 만큼 북한이 과거보다 유연한 접근에 나설 여지가 생겼다고 볼 수 있다. 군부 출신인 김 부위원장은 미국에 대한 이해도가 상대적으로 낮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협상 결과 예측은 아직 미지수다. 지난 2월 말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은 미국의 협상 실무진을 비난하면서 연말까지 셈법을 바꾸라고 요구해 왔지만, 미국은 ‘빅딜’론을 유지하면서 대북제재와 관련해서도 틈을 주지 않았다. 

김정은의 생각이 그대로인 한 실무협상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북한 실무자들이 핵 시설 신고와 검증에 합의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전무하다. 

향후 북-미 대화는 정상회담 날짜부터 잡아놓고 실무협상에 맡겨놓는 일은 없어야 한다. 김정은도 워싱턴 방문 기회를 잡으려면 자신의 셈법부터 바꾸고 최소한 교섭 권한을 부여한 협상팀을 내보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를 모르지 않는다. 그래서 트럼프는 "빠른 시간 내에 북핵을 없애겠다"는 장담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그 대신 "핵실험도, 미사일 발사도 사라졌다"는 말만 한다. 트럼프가 이번에 "2년 전에는 한반도 상황이 안 좋았는데 내가 대통령이 된 후 많은 진전이 있었다"고 하는 그 '진전'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중단일 것이다.

북핵 폐기까지 협상 추동을

북핵 문제는 지난 30년간 일보전진, 일보후퇴의 양상을 보여 왔다. 하지만 트럼프·김정은 시대에 들어 톱다운으로 조정을 시도해 가면서, 이번 판문점 회동을 포함해 세 차례나 회담하는 수준까지 이른 것은 사실이다.

이제 북미는 핵·미사일의 모라토리엄 단계를 뛰어넘어 비핵화 도약을 해야 한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기는 물론, 국제사회가 납득할 만한 플러스알파를 제시해야 할 것이며, 미국도 평양과 워싱턴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고, 대북 제재의 일부를 완화하는 등의 조치 등을 내놓아야 한다. 

깜짝 이벤트를 넘어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를 추동해야 한다. 북미 두 정상의 용기 있는 결단이 실로 요구된다.

북한 영변 핵시설 이외의 모든 추가 핵시설 및 장거리 미사일 폐기와 이에 상응한 미국의 제재 완화와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 카드를 주고받는 협상이 결실을 보길 기대한다.

북 비핵화 협상에서 궁극적 목적은 FFVD가 분명하다. 어떤 경우든 본말이 전도돼선 안 된다. 단계적 비핵화 행동과 경제제재 해제를 맞바꾸길 원하는 북한의 주장에 말려들어서는 안 된다. 북한의 이런 주장은 지난 27년 이상 지속된 일관된 전략이었다.

미국은 현재 완전한 북핵 폐기(CVID) 원칙을 견지하면서도 ‘동시적·병행적’ 추진을 언급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대북 제재 뒷문 열어주기에 골몰하는 형국이다. 한국이 중심을 잡고 북핵 폐기가 이뤄지기까지는 절대로 제재가 약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반대로 남북대화를 통해 제재에 구멍을 내는 식으로 움직이면 이번 이벤트도 결국에는 참담한 실패로 끝나고 말것이다.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고 북미 협상의 순항과 더불어 남북 대화와 교류의 물꼬도 터 평화체제로 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내야 한다.

북한의 비핵화가 이뤄지고 한반도에 평화가 깃들면, 후세의 사가들은 이번 만남을 의미 있는 역사적 사건으로 기억할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정치적 쇼에 불과했다는 준엄한 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게 틀림없다.

북미 실무협상팀은 담대한 비핵화 해법을 마련하고 또 한 번의 역사적 북미 정상회담을 견인하길 바란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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