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공화국의 역설 後] 당사자성의 정치학과 지방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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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공화국의 역설 後] 당사자성의 정치학과 지방분권
  • 한설희 기자
  • 승인 2019.07.14 17: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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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공화국의 그늘’을 취재하며…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한설희 기자]

당사자인 지역 주민들이 목소리를 내서 직접 정책을 만들고, 중앙 시스템에서 사실상 배제돼왔던 사람들의 참여를 확충해 의사결정 시스템을 개편해내는 것이 지방분권의 핵심이다. 사진은 지방분권 헌법에 대해 토론하는 박원순 서울시장. ⓒ뉴시스
당사자인 지역 주민들이 목소리를 내서 직접 정책을 만들고, 중앙 시스템에서 사실상 배제돼왔던 사람들의 참여를 확충해 의사결정 시스템을 개편해내는 것이 지방분권의 핵심이다. 사진은 지방분권 헌법에 대해 토론하는 박원순 서울시장. ⓒ뉴시스

오래전 일입니다. ‘중졸(중학교 졸업)’ 학력을 가진 친구와 만나 각자의 아르바이트 경험담을 풀어놓던 날이었습니다. 

“야, 나 대학 가려고. 알바 사장이 나를 자꾸 무시해.” 
“왜? 뭐라고 무시하는데?” 
“몰라, 대놓고 말하는 건 아닌데…. 그냥 무슨 사담을 나눌 때마다 ‘너는 한 번에 이해 못하겠지’라는 생각을 기본으로 깔고 말하는 것 같아. 그런 게 있어. 넌 모르겠지. 대학생이니까.”

얼마 후 저는 다른 아르바이트를 구하게 됐습니다. 당시 고용주의 표현을 빌리자면 ‘동네 장사’를 하는 작은 음식점이었기에 구직 절차와 준비해야할 서류가 매우 간단했습니다. 저는 서류에 거짓 학력을 적어놓았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대학 재학 중이라는 사실을 기재하지 않은 것이니, 위조는 아니겠지요.

큰 의미 없이 한 행동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돌이켜보니 친구의 말이 정말 사실인지 궁금했던 것 같습니다. 감히 오만하게 ‘피해망상이야. 내가 증명해줘야지’라고 생각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대학생 신분이라는, 너무나도 알량한 기득권의 소유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저는 친구의 말을 뼛속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먼지처럼 눈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감은 분명한 차별을 받는 당사자 입장이 돼보고서야 말이지요. 

이 오래된 이야기를 굳이 기억에서 꺼내온 이유는 간단합니다. 취재 내내 들었던 소리 때문입니다.

지역주의와 서울공화국의 연관성을 취재하면서, 감사하게도 다양한 학계 전문가 및 지역 관계자들을 접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저의 질문이 예상외로 길어질 때마다, 그들은 모두 한 가지 문장으로 귀결됐습니다. 

“실례지만 서울 출신이시죠? 그러니까 모르죠.”

당사자성 약탈한 서울공화국… 당사자성의 정치, 지방분권

요즘 들어 언론에서 많이 사용하는 단어 중 하나가 ‘당사자성’인 것 같습니다. 특정 사안의 당사자로서의 정체성을 높이 평가한다는 뜻인데요. 좀 더 풀어서 설명하자면, 주로 사회적 소수자의 신분으로 동질적인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만이 그 사안을 제대로 논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보통 페미니즘이나 청소년, 청년 인권 운동을 설명할 때 등장하곤 합니다.

모든 시스템이 서울로 집중되는 서울공화국 현상이 지방 주민들의 무력감 혹은 분노감을 가져왔고, 이런 부정적 감정이 일부 지역주의 투표 행태로 나타나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해온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명백한 사실입니다.

문제는 ‘지역주의 투표’라는 단면적인 현상만 본 서울 사람들, 주로 청년층이 특정 지역을 언급하며 “XX 사람은 답이 없다”, “XX 지역 노인들이 문제다”식의 냉소와 비난을 일삼는다는 겁니다.

이런 혐오가 일반화되고, 지방의 젊은 사람들은 부끄러워하거나 혀를 차며 떠나고, 남은 사람들은 다시 힘을 모아 ‘본 때를 보여주자’며 ‘XX의 아들’을 자처하는 사람에게 표를 몰아주고…·. 서글픈 악순환의 반복입니다. 

이 형벌과도 같은 사슬을 끊어버리겠다고 등장한 것이 바로 지방분권입니다. 

당사자인 지역 주민들이 목소리를 내서 직접 정책을 만들고, 중앙 시스템에서 사실상 배제돼왔던 사람들의 참여를 확충해 의사결정 시스템을 개편해내는 것. 당사자의 참여로 현실정책의 실효성을 강화하고 새로운 자율 시대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모든 전문가들이 말하는 지방분권의 핵심이었습니다.

커버스토리에 미처 담진 못했지만, 신용인 제주대 로스쿨 교수는 지방분권과 관련해 이렇게 열변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지역주의나 토호 세력 운운하며 지방분권을 우려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지방 사람들이 준비가 덜 돼서, 그들에게 온전한 민주주의를 맡기기 어렵다는 것 아닙니까. 사실 권력을 나눠 줄 마음이 없으니까 그렇게 보이는 것, 아니 그렇게 보고 싶은 것 아닌가요? 애초에 무언가를 제대로 맡겨 보기나 했나요?”

물론 지방분권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요술 방망이’라고 맹신하긴 어렵습니다. 어쩌면 일각의 우려대로 지역 이기주의와 지역 간 불균형만 키우는 ‘게토(ghetto)화’를 경험할 지도 모릅니다.

다만 현 서울공화국의 문제를 팔짱 낀 자세로 지켜보며 지방을 향해 냉소만 날리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임을, 우리 모두 자각할 필요는 있지 않을까요. 지역주의를 ‘낡은 정치’로 규정하는 것도 좋지만, 그 이면에 도사리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도, 무거운 책임을 나눠 질 필요도 있는 듯합니다.

마지막으로, 독일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말을 인용하고 싶습니다. 

“무관심과 냉소는 지성의 표시가 아니라 이해력 결핍의 명백한 징후이다.”

어쨌든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한 배를 함께 탄 운명 공동체니까요. 

담당업무 : 통신 및 전기전자 담당합니다.
좌우명 : 사랑에 의해 고무되고 지식에 의해 인도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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