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필담] 종로는 정말 상징성 있는 선거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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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필담] 종로는 정말 상징성 있는 선거구인가?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9.07.14 12: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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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수준 높아 전 국민 관심 받던 지역…1990년대 이후 상징성 축소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흔히들 서울 종로를 ‘정치 1번지’라고 부른다. ⓒ시사오늘
흔히들 서울 종로를 ‘정치 1번지’라고 부른다. ⓒ시사오늘

흔히들 서울 종로를 ‘정치 1번지’라고 부른다. 정치적으로 상징성이 큰 지역구라는 의미다. 그리고 그 근거로는 종로가 세 명의 전직 대통령(윤보선·이명박·노무현)을 배출했으며, 이곳에서의 승패가 전국 선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거론한다. 매 선거 때마다 반복적으로 강조되면서 일종의 진리로 각인된 명제다.

하지만 ‘정치 1번지 종로’설(說)에 대해 생각해 볼 부분이 있다. 과거 종로가 정치적 상징성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이 지역이 높은 교육 수준을 자랑하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서울대’ 하면 ‘관악’이 자연스럽게 연상되지만, 사실 1975년까지만 해도 서울대는 지금의 마로니에 공원 자리에 위치해 있었다. 그밖에도 종로에는 성균관대 등 여러 대학이 몰려 있어, ‘교육의 메카’로 간주됐다.

그런데 1980년대만 해도 대학진학률이 높지 않았던 우리나라에는 대학생들을 사회적 엘리트이자 오피니언 리더(opinion leader)로 대접하는 풍토가 있었으므로, 자연히 종로의 선택에 전 국민의 관심이 쏠리게 됐던 것이다. 정치 1번지 종로는 청와대와 정부종합청사가 위치해 있다는 ‘지리적 특성’에, 서울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의 존재로 높은 교육 수준을 자랑한다는 ‘인구사회학적 특성’이 결합한 결과였던 셈이다.

그러나 서울대가 관악으로 이전하고, 1990년대 이후 전체적인 국민의 교육 수준이 크게 높아지면서 종로의 ‘바로미터(barometer)’적 성격은 퇴색된다. 오히려 지가(地價) 상승에 따른 공동화(空洞化) 현상으로 종로 선거 결과는 ‘토박이들의 표심’에 직접적 영향을 받게 됐고, 박진 전 의원과 같은 ‘지역 밀착형’ 정치인이 좋은 성적을 거두는 곳으로 탈바꿈한다. 사실상 1990년대 이후 종로는 전국 선거에 영향을 미친다는 정치 1번지로서의 상징성을 상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을 세 명이나 배출한 곳’이라는 명성도 허명(虛名)에 가깝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종로에 출마, 금배지를 달았지만 선거법 위반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퇴했다. 이 전 대통령이 유력 대통령 후보 자리에 오른 것은 2002년 제3회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이후의 일로, 종로에서의 당선과는 직접적 연관성이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노 전 대통령은 이 전 대통령 사퇴로 발생한 1998년 재보궐선거를 통해 종로구 국회의원이 됐지만, 그가 대선 후보급으로 격상된 것은 ‘지역주의를 타파하겠다’며 종로를 버리고 부산으로 내려가면서부터다. 종로가 대통령을 배출했다기보다, 대통령에 당선된 인물들이 종로를 거쳐 갔다고 표현하는 것이 좀 더 진실에 가깝다. 어느덧 실체는 사라지고, 레토릭(rhetoric)만 남은 것이 ‘정치 1번지 종로’설이라는 이야기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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