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두언이 남긴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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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언이 남긴 메시지
  • 김병묵 기자
  • 승인 2019.07.17 12: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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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진영논리에서 자유로웠던 합리적 보수주의자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병묵 기자]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故 정두언 전 국회의원이 16일 세상을 떠났다. '우울증으로 숨진 3선 정치인'이라고 쓰고 넘어가기엔 정두언이 말해온 이야기들 중 귀 기울일 만한 것이 너무도 많다. 사진은 2018년 본지와 인터뷰하는 정 전 의원.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집에서 정장을 차려입고 있는 것도 우스워서…하하."

지난 해 여름이었다. 16일 세상을 떠난 정두언 전 의원의 마포 자택을 찾아갔을 때다. 그는 하얀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인터뷰를 위해 찾아온 기자들을 그야말로 편한 복장으로 맞았다. 상당수의 보수 정치인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가치 중 하나인 딱딱한 격식과 소위 '품위'를 그에게선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그는, 인터뷰에서 진영을 개의치 않는 자유로운 언어와 폭넓은 시야를 보여줬다. 정치인부터 가수, 상담사까지, 다재다능하면서도 파란만장한 그의 삶의 원천을 엿본 기분이 들었었다.

하지만 색이 뚜렷할 수록 오래가는 정치권에서, 고인과 같은 다채로움은 때론 독이 되기도 하나 보다. 꼭 그래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어느날 정계의 중심에서 밀려났고, 제20대 총선에서 낙선하며 돌아오지 못했다. 방송을 통해 여전히 날카로운 비판을 보여주면서 평론가로서 더 유명해졌지만 정확히 '정두언의 정치'는 희미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을 통해 그의 가치는 재조명됐다. 애도를 표한 인물들의 면면이 정 전 의원이 차지하고 있던 위치를 알려주고 있다.

자유한국당 내에서 그와 가장 가까웠다는 김용태 의원은 급하게 현장을 찾아 비통해했다.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은 "멘토"라며 슬퍼했다. 보수의 대척점에 서 있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한국의 자칭 ‘보수’가 이 분 정도만 되어도 정치발전이 있겠다"고 애도해 이목을 끌었다. 이들 셋이 가리키는 정두언의 위치는 정가에서 멸종직전이라고 알려진 '중도보수'다. '풍운아''MB맨' 등으로 불리던 정 전 의원은 어느새 합리적 보수주의자의 상징 중 하나가 됐었다. 극과극, 강대강 대치가 이어지는 현 정국이 필요로 하는 인물인 셈이다.

그런 그가 우울증을 이기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한다. 비록 '지라시'긴 하지만 금전적 문제, 정치적 복귀의 난항 등도 거론된다. 정 전 의원과 같은 인물이 설 위치가 좁다는 것이 현재 한국 보수의 현주소다. 그나마도 정 전 의원이 떠나면서 합리적 보수주의자는 한 사람 줄어든 셈이다.

안타까운 비보지만 이를 계기로, 한국의 '자칭 보수'는 지금 달리고 있는 방향을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단순히 '우울증으로 숨진 3선 정치인'이라고 쓰고 넘어가기엔 정두언이 말해온 이야기들 중 귀 기울일 만한 것이 너무도 많다. 이는 보수의 생존과 한국 정치판의 성숙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한국 정치의 지나친 양극화를 우려하고, 이에 진저리치는 것은 비단 기자만이 아니라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담당업무 : 게임·공기업 / 국회 정무위원회
좌우명 : 행동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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