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월악산 영봉에서
[칼럼] 월악산 영봉에서
  • 최기영 피알비즈 본부장
  • 승인 2019.07.22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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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영의 山戰酒戰〉 천천히 산을 오르면 보이는 것들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최기영 피알비즈 본부장)

월악산 하봉과 충주호의 모습 ⓒ 최기영
월악산 하봉과 충주호의 모습 ⓒ 최기영

산을 좀 타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월악산은 제법 험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이름에 '악'(岳)'자가 들어 있는 산은 크고 험하며, '망'(望)자가 있는 산은 조망이 좋다. 그런데 월악산은 크고 험하기도 하지만 산을 오르면서 보는 조망 역시 어느 산과 견줘도 절대 뒤지지 않는다.

월악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는 '영봉'이다. 영봉을 오르는 여러 길 중에서 나는 수산리 마을에서 출발해 보덕암을 지나 하봉과 중봉을 거쳐 영봉으로 오르는 길을 가장 좋아한다. 특히 오르는 내내 월악산의 그림자를 담고 있는 충주호를 한눈에 볼 수 있어 조망도 시원하다. 그러나 암릉 구간이 만만치 않아 영봉을 오르는 길 중에서 가장 힘이 든다. 

수산리 마을에서 좁은 아스팔트 길을 따라 보덕암까지 가면 보덕암 주차장에 마지막 화장실이 있다. 거기에서 산행 준비를 하고 마음을 다잡고 올라야 한다. 보덕암을 지나면 산길은 몹시 가파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참을 오르다가 턱밑까지 차오르는 숨을 고르기 위해 아래를 내려다보면 충주호가 시원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보덕암의 모습. 수산리에서 보덕암까지는 좁다란 아스팔트 길을 걸어서 편하게 올 수 있지만 보덕암을 지나자마자 산길을 가파르다 ⓒ 최기영
보덕암의 모습. 수산리에서 보덕암까지는 좁다란 아스팔트 길을 걸어서 편하게 올 수 있지만 보덕암을 지나자마자 산길은 가파르다 ⓒ 최기영

충주호가 보이기 시작하면 산행은 더욱 고되다. 영봉으로 가는 길목에 일주문처럼 하봉과 중봉이 서 있는데 각각의 봉우리를 오르기 위해서는 한참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기를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드디어 영봉에 다다르면 그리도 힘들게 오르고 내려왔던 중봉과 하봉과 함께 어우러진 충주호가 한눈에 들어온다. 더운 여름날 영봉 정상에는 그늘 하나 없지만 바람이 하도 시원하게 불어와 전혀 그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영봉에 서면 속리산, 대야산, 조령산, 주흘산 등이 손에 잡힐 듯 이어져 있는 산세가 정말 좋다. 

달이 뜨면 이곳 영봉에 걸린다고 해서 월악산이라는 이름이 유래됐다. 우리 한반도의 산중에서 정상을 영봉이라 부르는 곳은 백두산 장군봉과 월악산 두 곳뿐이다. 예부터 영봉을 얼마나 성스럽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영봉에서 보이는 전경은 충주호와 남산, 계명산 등이 어우러져 웅장하고 맑은 날에는 치악산과 소백산까지도 조망할 수 있다. 

영봉에 이르기 전. 하봉과 중봉이 저렇게 나란히 영봉을 지키는 일주문처럼 서 있다 ⓒ 최기영
영봉에 이르기 전. 하봉과 중봉이 저렇게 나란히 영봉을 지키는 일주문처럼 서 있다 ⓒ 최기영

월악산은 고려의 수도가 될뻔했던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 태조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고 수도를 정하고자 송악산의 개성과 월악산 일대의 중원을 놓고 고민했다. 결국, 왕건은 수도를 개성으로 정하면서 월악산의 꿈은 그렇게 와르르 무너졌다. 그래서 고려 시대 사람들은 월악산을 '와락산'이라고 했다고 한다. 왕건이 그때 이곳을 수도로 정했다면 훌륭한 재상들이 임금을 잘 보필하고 어지러웠던 무신들의 난도 없었을지 모른다. 

북한 개성에는 송악산이 있다. 488m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산 전체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바위산이다. 고려왕조의 궁궐인 만월대는 지금의 개성 시가지 서북쪽 끄트머리에 있다. 송악산을 기준으로 한다면 산 남쪽 기슭이다. 당시에는 궁궐이 도시 중심에 있지 않고 전란이 일어나면 왕족들을 보호하기 위해 험한 산세가 둘러싸고 있는 요새에 자리했던 것 같다. 

월악산 영봉 표지석에서 ⓒ 최기영
월악산 영봉 표지석에서 ⓒ 최기영

아무튼, 개성의 송악산과 제천과 충주 일원에 걸쳐있는 월악산이 새로운 왕조의 수도 지로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지금에 와서 하는 이야기이겠지만 송악산 주봉에서 동남·서남으로 좌우의 날개처럼 뻗어내린 산줄기가 청룡과 백호의 몫을 하는데 백호는 그 세력이 강하고 청룡은 약해 나라에는 명상(名相)이 드물고, 무신들이 자주 싸움을 일으킨 것이라고 풍수지리에서는 해석한다. 

월악산은 마의태자로 잘 알려진 신라의 김일과 그의 누이 덕주공주가 망국의 한을 품고 은거한 산으로 유명하다. 신라가 망한 후 월악산에 머물던 마의태자는 미륵사의 불상이 됐고, 덕주공주는 덕주사의 마애불이 됐다. 다른 전설에서는 마의태자의 은거지가 금강산이라고도 하지만 월악산 곳곳에는 이들 남매에 얽힌 전설들이 참 많다. 태조가 이곳을 도읍으로 정하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이들 남매 때문이 아니었을까? 산을 다니다 보면 어느 산이나 애절한 사연이 없는 곳이 없다. 월악산은 경북의 문경과 바로 인접해 있고, 신라의 수도 경주와도 그리 멀지 않기 때문에 마의태자와 덕주공주가 이곳에서 망국의 한을 달랬다는 이야기는 그리 허황돼 보이지는 않는다. 

산을 타기 시작할 무렵 서울 근교에 있는 산을 홀로 쉬엄쉬엄 다니다가 산악회에 가입했었다. 가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인데 이곳 월악산행 공지가 있었다. 서울을 벗어나 있는 산을 한번 타보자는 생각에 참여 신청을 했었다. 그때도 초여름이었던 것 같다. 한 30여 명이 함께 산행했는데 초입부터 숨이 막혀 일행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때는 그 아름다운 충주호가 어떻게 생겼는지 살펴볼 여유도 없었다. 산길이 어찌나 가파르고 걸어도 걸어도 끝이 안 보였던 아득한 느낌! 산우 몇 명이 일행을 놓친 나를 챙기며 함께 산길을 내려왔다. 그 뒤 '멀쩡하게 생겨서 산을 왜 그렇게도 못타냐'는 놀림을 받으며 한참을 산을 타야 했다. 

월악산을 오르다 뒤를 돌아보며 충주호가 한눈에 들어온다 ⓒ 최기영
월악산을 오르다 뒤를 돌아보며 충주호가 한눈에 들어온다 ⓒ 최기영

산을 타며 깨달은 것 중의 하나가 숨이 차고 지칠 때는 뒤를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다시 오를 수가 있다. 그게 요령이고 세상을 사는 지혜인데 나는 그때 무작정 빨리 정상에 도착해야겠다는 생각만 했었던 것 같다. 내가 여유를 가지고 오를 때 산도 마음을 열고 내게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나는 이날 그렇게 천천히 월악산을 오르며 그때 맛보지 못했던 보덕암의 약수와 충주호의 아름다움 그리고 월악산 영봉의 기를 이제야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최기영은…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前 우림건설·경동나비엔 홍보팀장

現 피알비즈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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