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필담] ‘총선용 반일감정 조장’ 프레임, 성공할까?
스크롤 이동 상태바
[주간필담] ‘총선용 반일감정 조장’ 프레임, 성공할까?
  • 한설희 기자
  • 승인 2019.07.23 21: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선거용 반일감정은 옛날 프레임… 무작정 주장하다 도리어 역풍 위험
정부 반일 노선은 ‘총선전략’ 아닌 외교무능 감출 ‘출구전략’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한설희 기자]

한국당이 주장하는 ‘총선용 반일감정 조장’은 레토릭에 불과하며, 도리어 이번 주장이 국민들의 반감을 자극해 한국당이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시사오늘 김유종
한국당이 주장하는 ‘총선용 반일감정 조장’은 레토릭에 불과하며, 도리어 이번 주장이 국민들의 반감을 자극해 한국당이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시사오늘 김유종

증오하면서도 동경한다. 배척하면서도 모방하고, 또 불신(不信)하면서도 의존한다.

애증(愛憎)관계의 연인 얘기가 아니다. 일본을 향한 한국인들의 양가적인 감정이 그렇다. 

과거 일본이 자행했던 핍박의 역사를 떠올리면, 대한민국 사람 누구나 가슴 한 구석이 분노로 뜨거워진다. 1995년 ‘일본담배 퇴출운동’을 시작으로 2001년과 2005년, 2008년, 2011년 등 일본제품 불매운동은 하루 이틀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동시에 한국인은 누구보다도 일본과 그들의 문화를 동경해왔다. 한국이 본받아야 할 선진국으로서의 예시는 늘 일본이었고, 일제(日製)의 적극적 소비자도 한국이었다. 실제 한국은 일본의 해외 수출 시장 중 무려 세 번째 규모를 자랑한다. 일본 방문 외국인의 10%가 한국인 관광객이며, 그들이 소비한 금액만 따져도 지난해 한화 6조 원 이상이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의 일제 강점기 시절을 겪은 세대는 그렇지 않은 세대에 비하면 극소수에 불과하다. 따라서 ‘덮어놓고 반일’, ‘친일하면 매국노’ 식의 논리는 시간이 갈수록 현저히 줄어들었다. 다만 여러 감정들은 불순물처럼 완전히 걸러지지 못하고,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계속해서 세습됐다. 

뒤를 돌아보면 밉다가도, 앞을 바라보면 껴안아야 하는 나라. 대한민국 국민들의 일본을 향한 감정은 여전히 역사적 경험만으로는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미지의 영역이다. 

 

‘선거용 반일감정’은 옛날 프레임… 국민들은 쉽게 속지 않는다

최근 일본의 보복성 무역 수출 규제로 대한민국 전체가 들썩이고 있다. ‘일본 제품을 사지 않겠다’, ‘일본 여행을 가지 않겠다’는 불매운동이 습관처럼 재개됐고, 국내에서 판매 중인 일본 제품을 나열한 ‘노노재팬’ 사이트 접속자는 폭주하는 상황이다.

발맞춰 정부와 여당의 일본 비판 수위가 높아지자, 야당은 “정부가 총선용 반일감정을 조장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자유한국당 민경욱 대변인은 지난 21일 논평을 통해 “국민정서를 이분법적 사고(친일 대 반일)로 나눈 것도 모자라 반일감정까지 선동하는 의도가 뻔하다”며 “총선용 반일 감정 조장은 국민들이 심판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 주장대로, 정부와 여당은 정말 내년 선거를 의식해 전략적으로 ‘일본 때리기’를 시작한 것일까.

이에 대해 강상호 한국정치발전연구소 대표는 지난 17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한국당의 주장은 옛날식 프레임으로 지금과는 맞지 않다”고 단언했다.

“친일·반일 프레임 가지고는 총선에 영향에 미치지 않는다고 봅니다. 그 양분 구도를 가지고서 정치적 목적을 얻겠다는 의도가 조금이라도 보이는 순간, 국민들은 바로 분노하며 돌아설 겁니다.”

강 대표는 한국당이 주장하는 ‘총선용 반일감정 조장’이 프레임에 불과하며, 도리어 한국당이 국민들의 반감을 자극해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당의 그런 주장이야말로 수준을 보여주는, 상당히 아마추어적인 대응이에요. 외교적 해결책을 만들어서 정부에 촉구해야지, 무조건 진영 논리에 따라 정부 외교를 ‘총선용’이라고 폄하해서 말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아직도 모든 것을 진영 논리로 보는 ‘옛날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 (프레임을 만든) 한국당이 도리어 총선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할 겁니다. 국민들은 그런 프레임 논쟁에 식상하고, 더 이상 속지도 않습니다.”

 

불투명한 반일 감정, 굳이 '총선용 도박' 시도할 필요가 없다

앞서 말했듯, 일본을 향한 국민들의 감정은 다층적이다. 반일 역시 고정된 실체가 아니고, 국제 상황에 따라 변화해 가는 동태(動態)다. 이러한 감정을 반일과 친일의 이분법으로 딱 잘라 나누어 정의하기 어렵다. 

이런 미지의 영역을 두고, 정부와 여당이 과연 도박을 걸려고 할까?

강 대표의 분석대로, 국민에게 ‘반일 조장’ 의도를 들키는 순간 문재인 대통령의 호감도를 중심으로 쌓아온 지지율은 무너진다. ‘가만히만 있으면 여당이 이긴다’는 말까지 나오는 내년 선거에서, 아무리 뜯어봐도 정부가 굳이 그런 모험을 시도할 필요는 없을 듯싶다. 

민주당 김현 전 의원도 23일 <시사오늘>과의 만남에서 "이번 문제를 총선전략으로 끌어들이려는 정부가 어딨냐"며 "총선용 반일감정 조장이라는 건 정치 하수들이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전했다.

이번 무역 갈등은 문재인 정부의 외교적 역량을 평가하는 중간고사나 마찬가지다. 

한·미·일 공조가 공고해지면 북핵으로 인한 안보적 위협도 일부 해소되고, 경제적 협력도 확대된다. 일본과의 무역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으면, 감정이 아닌 실리를 기반으로 한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도 형성될 수 있다. 

요컨대 정부가 외교적 타협 능력을 발휘해 답안지를 정석으로 제출하면, 보수 지지층이 줄곧 비판했던 ‘무능’ 딱지를 뗄 수 있게 된다. ‘경제 성장’은 ‘반일 감정’보다 실체가 훨씬 뚜렷한 효과적인 선거 전략이다. 얼마든지 총선을 위한 기회로 만들 수 있는 위기다.

일본을 향한 국민들의 감정은 다층적이다. 반일 역시 고정된 실체가 아니고, 국제 상황에 따라 변화해 가는 동태(動態)다. ‘가만히만 있으면 여당이 이긴다’는 말까지 나오는 총선에서, 정부가 여기에 도박을 걸 필요는 없다. ⓒ뉴시스
일본을 향한 국민들의 감정은 다층적이다. 반일 역시 고정된 실체가 아니고, 국제 상황에 따라 변화해 가는 동태(動態)다. ‘가만히만 있으면 여당이 이긴다’는 말까지 나오는 총선에서, 정부가 여기에 도박을 걸 필요는 없다. ⓒ뉴시스

정부여당의 반일 조장은 ‘총선전략’이 아닌 ‘출구전략’

현재 전문가들은 일본의 이번 규제가 정부의 낙관처럼 단순한 일회성 보복이 아니라고 분석하고 있다. 

성노예 및 강제 징용 노동자들의 배상과 관련된 문제를 종결하고, 최근 급성장을 이룬 한국 수출 경제에 제동을 걸고, 외부의 적을 통해 내부 일체감을 다지는 등 다양한 관점을 고려해 오랫동안 준비해 온 일이라는 것이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지난 22일 ‘한일 관계 악화, 해법은 무엇인가?’ 토론회에서 “일본은 오래전부터 우리의 주력업종과 대표기업들의 급소를 파악하고 수출규제 품목을 선택했다”며 “반면에 우리는 아직 어떤 품목이 규제대상이 될지 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앞선 강 대표 역시 통화에서 “최근 미국의 반응을 보아 일본이 이러한 조치를 취하는 것엔 미국의 암묵적 동의를 구했을 것”이라며 “이는 상당히 복합적이고 장기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 절대 가볍게 감성적으로 대응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일본의 무역 규제는 오랜 기간을 두고 준비된 ‘국가 프로젝트’나 마찬가지였고, 문재인 정부는 이를 감지하고 대비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은 나날이 비판 수위만 높여가고 있다. 이들이 스스로 한국당의 레토릭 ‘총선용 반일’ 논란을 자처하고 있는 셈이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SNS에서 시기 부적절하게 ‘반일 독립 운동’에 심취한 모습을 보였고, 여당은 “일본의 조치는 경제 테러고 아베는 경제 전범”이라고 비난하며, 야당 원내대표를 향해 ‘신(新)친일’이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여기에는 외교 실패를 ‘친일 대 반일’이라는 새로운 의제로 덮으려는, 그런 전략이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해 본다. 

군사 용어로 ‘출구전략’이란 말이 있다. 전쟁 중 적군에게 당해 철군 상황에 직면하여 인명 및 장비 피해를 최소화한 채 퇴출하는, 일종의 도피전략을 의미한다.

결국 정부와 여당의 ‘일본 때리기’는 야당 주장대로 총선 전략이라기보다, 당장 눈앞의 비판에서 도망치려는 출구 전략에 가까운 듯하다.

담당업무 : 통신 및 전기전자 담당합니다.
좌우명 : 사랑에 의해 고무되고 지식에 의해 인도되는 삶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