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語文 단상] 내가 기다리는 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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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語文 단상] 내가 기다리는 상호
  • 김웅식 기자
  • 승인 2019.07.26 10: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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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웅식 기자]

외래어 범람 시대에 우리 말글의 아름다움을 살린 상호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우리의 문학유산에서 상호를 창작해 낼 수 있다면 그것도 값진 작업이 될 것이다. ⓒ김웅식 기자
외래어 범람 시대에 우리 말글의 아름다움을 살린 상호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우리의 문학유산에서 상호를 창작해 낼 수 있다면 그것도 값진 작업이 될 것이다. ⓒ김웅식 기자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한 바퀴 도는데, 저만치 ‘기분 꽃 같네’라는 간판이 보입니다. 상호로 보아 꽃과 관련 있는 곳임을 알 수 있는데, 자세히 보니 꽃가게입니다.  

거리에 나가보면 뭇사람의 감탄을 자아내는 상호가 한둘 아닙니다. 톡톡 튀는 이색 상호로 고객을 유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친구가 있어 좋은 곳’ ‘부어라 마셔라’(술집) / ‘자기야 이집소스 끝내줘’ ‘곧 흥할분식집’(분식집) / ‘웃으면 돼지’ ‘소꼴 베러 가는 날’(음식점) / ‘기운 센 천하장사’(장어집) /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안경소매점) / ‘자지마독서실’(독서실) / ‘이노무 스키’(스키장비점) / ‘버르장머리’ ‘미&끼’(미용실) / ‘쇳대’(철물점)

가게 간판에는 손님이 줄기차게 찾아들어 날로 번창하고 많은 수익이 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간판 하나 하나는 나름대로 소중한 의미를 갖습니다. 어떻게 해야 고객의 눈과 발길을 붙잡을 수 있을까? 이런 고민에서 말글의 활용과 변신은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눈에 띄는 이색 상호를 이루는 방법은 일정하지 않습니다. 순우리말로 된 것이 있는가 하면 한자와 속담을 활용하거나 우리말과 비슷한 영어발음을 응용한 것도 있습니다. 이들 상호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특성은 말글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신선함입니다.

좋은 상호는 완결된 한 편의 시로도 읽힐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음식점 ‘취하는 건 바다’는 이생진 시인의 시 ‘술에 취한 바다’를 상호로 활용한 경우입니다. 주인에게 예술적 향취가 없었더라면 탄생하지 못했을 상호라 할 수 있습니다. 

외래어 범람 시대에 우리 말글의 아름다움을 살린 상호도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소꼴 베러 가는 날’에서 밥 먹고, ‘취하는 건 바다’에서 한잔한다면 기분이 새롭지 않을까요? 

우리의 문학유산에서 상호를 창작해 낼 수 있다면 그것도 값진 작업이 될 것입니다. 시조의 한 구절, 판소리 한 소절이 상호로 등장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장아장 뛰놀자’(어린이집), ‘어허둥둥 노래사랑’(노래연습장), ‘떨끄덩 떵떵 잘 찧는다’(방앗간), ‘시르렁 실근 톱질이야’(목공소) 같은 우리말 상호를 거리에서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담당업무 : 논설위원으로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2004년 <시사문단> 수필 신인상
좌우명 : 안 되면 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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