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통합 시즌3] 통합 가능할까…‘대의냐, 실리냐’
[진보통합 시즌3] 통합 가능할까…‘대의냐, 실리냐’
  • 윤진석·조서영 기자
  • 승인 2019.07.26 21:2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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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당과 정의당, 아이덴티티와 현실감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린 것은, ‘무엇’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진석·조서영 기자)

2012년 1월 3당 진보통합이 이뤄졌지만 얼마 못가 분당됐다. 민주노동당 때 이어 두 번째 분당이었다.ⓒ시사오늘(그래픽=이근)
ⓒ시사오늘(그래픽=이근)

 

통합 완수의 허상

여기 한 장의 사진이 있다. 2011년 겨울 진보 콘서트 현장.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심상정 새진보통합연대 대표가 화기애애하게 웃고 있다. 3당 합당에 앞서 진보통합의 미래에 관한 논의가 오가던 중이었다.

이듬해인 2012년 1월 3당 합당의 결과물인 통합진보당이 창당됐다. ‘이정희’ ‘노회찬’ ‘유시민’ ‘심상정’ 등 모두가 함께였다. 반MB(이명박) 전선의 승리를 위해 손을 맞잡았다. 수권정당을 향한 야심찬 전진, 진보정치세력의 대통합이 완수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다시 사진을 들여다본다. 와장창. 당이 깨진지는 이미 수년이 지났다. 잠시 뭉쳐있던 진보세력은 서로의 오점으로 남은 채 갈라섰다.

세 명의 명암도 엇갈렸다. 현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위풍당당이다. 지난 19대 장미 대선에서는 6.2%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유의미한 약진이었다. 범진보진영 대선주자 랭크에서도 중상위권 지지율을 점유 중이다. 명실공히 진보정당의 맏언니, 대표주자가 됐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현 유시민 노무현 재단 이사장의 주가도 뛰어올랐다. 본인은 한사코 아니라고 하지만 집권여당(더불어민주당)의 잠정적 대권주자로서 존재감은 커갔다. 행보, 발언 하나하나 높은 주목도를 불러왔다.

반면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현 민중당) 대표는 요즘 통 보기가 어렵다. 병중이라는 얘기부터 조용히 당을 챙기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이 모두가 통진당 해산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거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사진 속 가장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에 비추면 더욱 뚜렷한 대조다. 18대 대선을 앞뒀을 때만 해도 범진보진영의 떠오르는 대권주자였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로부터 차세대 대권주자감이라는 칭송도 들었다. 하지만 반짝하고 사라진 옛 얘기가 됐다.

지금의 민중당 처지와도 오버랩된다. 통진당이 해산된 후 민중당으로 부활했지만, 국회의원은 한 명(김종훈 의원)이다. 간신히 원내에 발 딛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을 규탄하고, 박근혜 정부가 탄핵되는데 누구보다 앞장섰던 당이었다. 하지만 촛불의 과실에서 민중당은 달콤함을 얻지 못했다.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심상정 새진보통합연대 대표가 토크콘서를 진행하고 있다.ⓒ뉴시스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심상정 새진보통합연대 대표가 토크콘서를 진행하고 있다.ⓒ뉴시스

 

수난시대의 복선

되짚자면 박근혜 정부 때부터 줄곧 수난시대였다. 가시밭길에도 복선은 있었다. 2012년 대선 TV토론회에서부터 예고됐다. “박근혜 떨어트리려고 나왔다”던 이정희 당시 통진당 후보는 저격수였다. 상대를 말로 ‘킬’시키는 데는 단연 압권이었다. 점잖게 미소 짓는 문재인 후보와 달리 이 후보의 속사포 랩 같은 발언들은 박근혜 후보를 매섭게 몰아갔다.

일본군 장교 당시 충성 혈서를 쓴 박정희 전 대통령을 가리켜서는 친일 행적의 일본 이름인 ‘다카키 마사오’를 꺼냈다. 이 호칭은 단숨에 실검 1위를 차지하며 대중에 깊게 각인됐다. 요즘 박정희 정권 때의 불공정 한일협정이 다시금 문제 되고 있는데, 그 역시 이 전 대표가 토론회에서 지적한 거였다. 최순실의 그림자를 가늠케 했던 측근 비리부터 정수장학회, 영남대 착취 등 권력형 비리를 꿰고 있었다. 전두환 군사정권으로부터 받은 6억 원 출처에 대한 의문, 유신독재의 퍼스트레이디, 독선의 여왕 등 거침없는 돌직구가 쏟아졌다.

너무 입바른 소리를 매섭게 해 정서상 호불호는 갈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이로 시작된 당시 정부여당과의 불편한 관계 속에서 통진당은 내란 선동 혐의로 법에 의해 강제해산 됐다.

민주주의 체제에서의 정당 해산 심판은 표결권을 가진 국민의 몫에 있지 않을까. 선거를 통해 유권자의 선택을 받지 못해 정당의 기능이 상실되면 됐지, 법으로 강제할 수는 없지 않을까. 통진당 해산에 대해 정의당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번 기획을 하게 된 동기다.

이제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2020년 총선,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여기저기서 합당, 분당, 연대, 창조적 파괴의 헤쳐 모여 등 정계개편의 시발점이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민중당과 정의당 등 진보정당 쪽은 말이 없다. 하다못해 지난 4·3 재보선, 진보정당의 텃밭이라 불리는 창원성산에서조차 연대의 틀은 논의되지 못했다. 과연 결합 시즌3은 가능할까. 그때(2012년)처럼 진보정당은 왜 합치지 못할까. 필요한 화두였다.

하지만 절레절레. 통합의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는 많이들 고개를 갸웃해했다. 익명을 요구한 당직자, 진성당원, 인민노련 출신의 소식통, 민주노동당 때부터 잘 아는 진보 쪽 인사 모두 회의적이었다. 루비콘 강을 건넜다, 물과 기름, 이질적 갭 차이가 크다는 게 중론이었다. 

ⓒ영화  '기생충' '아이덴티티' 포스터
ⓒ영화 '기생충' '아이덴티티' 포스터

 

분당 트라우마  

왜 그럴까. 영화에 빗대면 네다섯 편으로 요약될 수 있을 듯싶었다.

- 나는 네가 지난여름(분당 사태 때)에 한 일을 알고 있다 <분당 책임론>
- 기생충 <종북주의 폭로 논란>
- 지금(분열)은 틀리고 그때(통합)는 맞다 <노선 차이론>
- 결혼(통합)은 미친 짓이다<통합 회의론>
- 아이덴티티 <정체성 공감론>

자주파와 평등파

우선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등에서 연상되듯 분당 책임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즉 두 번의 분당이 있기까지 어떤 문제가 있었느냐다.

편의상 민중당을 자주파(NL), 정의당을 평등파(PD)라고 한다면, 이들의 오랜 정당 전신은 2000년 출범한 민주노동당이었다. 복수의 자료에 따르면 제도권 안의 진보정당 출현의 필요성을 느낀 민주노총은 권영길 위원장을 중심으로 민주노동당을 건립했다. 출발은 순조로웠다. 권영길 대표의 경우 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동정론’ 등 돌발 악재에도  100만 표 가깝게 얻는 저력을 보였다. 역대 진보정당 출신 대선주자 중 조봉암 다음으로 가장 많은 득표였다. 16대 총선에서는 3당으로 급부상했다. 17대 총선에서는 원내 의석 10석의 쾌거를 올렸다.

당내 주류는 평등파였다. ‘권영길’ ‘노회찬’ ‘심상정’ 등 대권주자급도 평등파 쪽에 쏠려 있었다. 하지만 경기동부연합 등 자주파가 대거 진입하면서 주도권의 판도가 달라졌다. 다만 이렇다 할 대권주자 급이 약했던 자주파는 2007년 17대 대선에서 ‘노회찬’  ‘심상정’ 대신 그나마 이념색이 약했던 ‘권영길’을 지지했다. 이를 통해 코리아 연방제 슬로건을 달성하려 했다. 하지만 대중적 공감을 얻는데 한계를 보였다. 결국 3%(17대 대선)라는 저조한 성적을 거뒀다.

정파간 종북주의 갈등

분당 사태는 다음 해인 2008년 ‘심상정’ ‘노회찬’ 등 평등파가 대거 탈당하며 촉발됐다. 당시 민노당은 자주파와 얽힌 북한 간첩과의 연루 의혹인 일심회 사건 등이 터지면서 종북 논란 도마에 올라 있었다. 대선 실패와 겹쳐 당의 혁신을 놓고 노선 대립은 커졌다.

사상계의 거두 양동안 교수의 글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가 국민에게 알려준 것들>에 따르면 평등파는 민노당이 대중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이유로 자주파의 종북주의를 지목했다. 따라서 이를 청산해야 한다는 혁신안을 제시했다. 또 당내 경선의 대리 투표 등도 갈등의 원인이 됐다. 이에 평등파는 민노당의 비례대표 후보를 선정함에 있어 자주파의 전횡을 방지할 수 있는 선정방법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는 자주파의 반대로 부결됐다. ‘더 친북해야 한다’는 피켓이 상징하듯 자주파의 반발은 컸다.

평등파의 항의도 거셌다. 조승수 당시 국회의원은 훗날 사과하긴 했지만 당시는 ‘숙주’라는 표현을 써가며 자주파를 맹비난했다. 그는 “민노당을 주도해온 자주파 계열은 당을 정당이 아닌 (남한 내)의회투쟁의 전선기구로 생각했다”며 “진보의 이름으로 자신의 사상을 숨긴 채 민노당 숙주로 기생하는 세력”이라고 비판했다. 진중권 당시 평론가도 “종북파가 섬기는 당은 북한의 조선노동당이고, 민노당은 북한 정권을 보위하는 수단에 불과하다”고 했다.

주대환 전 민노당 정책위 의장 역시 “민노당 위기의 핵심은 김일성주의자들이 당의 안방을 차지한 것”이라며 “(자주파에게) 북한 추종은 종교와 같다”고 고발했다. 김형탁 전 민노당 대변인 또한 “당내 주사파의 친북 노선으로 대중적 지지를 많이 잃었다. (자주파는) 끊임없이 북한의 눈치를 봤다”고 폭로했다.

이처럼 노선차를 좁히지 못한 평등파는 당을 나와 진보신당을 창당했다. 자주파는 민노당에 남아 이정희 대표를 중심으로 새로운 재건에 노력했다. 그것이 두 정파 간 첫 번째 분당이었다. 

통진당은 비례대표 부정경산 논란 등으로 인해 신당권파아 구당권파간 갈등이 빚어졌다.ⓒ뉴시스
통진당은 비례대표 부정경산 논란 등으로 인해 신당권파아 구당권파간 갈등이 빚어졌다.ⓒ뉴시스

 

당권파와 신당권파

또 다른 분당은 통진당 때였다. 이때는 2010년 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과의 적극적 야권연대를 꾀했던 이정희 대표의 민노당이 대중의 지지를 확보하며 진보정당의 중심 역할을 할 때였다. 그에 비해 ‘노회찬 심상정’의 진보신당을 비롯해 ‘유시민’의 국민참여당은 내분과 독자생존 위기론에 겹쳐 상대적 열세에 놓여있었다. 때문에 민노당 입장에서는 진보정당 통합에 있어 크게 아쉬울 것이 없는 위치였다.

하지만 6·2 지방선거를 통해 MB 심판론과 정권교체의 열망이 확인됐다며 진보정당의 통합은 시대적 과제가 됐다는 게 진보진영의 요구였다. 민노총 등 진영 내 요구도 컸다. 그렇지만 통합은 오래가지 못했다. 패권 논란, 야권연대 경선 과정 조작 의혹, 19대 총선 비례대표 부정선거 의혹 등이 불거졌다. 폭력 사태로 번지며 당권파(자주파)와 신당권파(평등파) 갈등이 확산됐다. 이는 유시민 심상정 노회찬 강기갑 이정미 등의 탈당 러시로 연결됐다. 이것이 통진당 강제해산 직전 일어난 두 번째 분당이었다.

하지만 분당 책임론 시각은 상반된 듯했다. 평등파가 자주파의 비례부정경선에 책임을 제기하고 있다면, 반대로 자주파는 ‘유시민 책임론’ ‘평등파의 기회주의적 행동’으로 분당됐다며 작심 발언했다.

관련해 이상규 민중당 상임대표는 지난 3월 <시사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언론에서는 우리가 부정경선 한 것처럼 도배됐지만 내막은 다르다”고 힘줘 말했다. “당시 논란이 된 게 ‘이석기 김재연 비례대표 후보’가 부정선거를 했다는 것인데 정작 검찰은 기소조차 못했다”고 했다.  오히려 “국민참여당의 유시민 계열이 부정 선거한 게 대거 드러나 구속됐다”며 “본인들이 부정선거를 하니, 우리도 당연히 조금 했을 거라고 의심해 터트린 것이 제발 찍기가 된 거였다”고 주장했다.

평등파가 탈당해 2013년 정의당을 창당한 것에 대해서는 “박근혜 정권이 우리를 칠 줄 알고, 도망간 것”이라고 규정했다. 이 상임대표는 “2012년 (평등파) 생각은 우리 (자주파)하고 있으면 같이 벼락(종북 프레임 통진당 해산) 맞는다는 게 지배적이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물론 정의당은 동의하지 않고 있다. 정의당 내 한 당직자는 25일 <시사오늘>과 만남에서 “민중당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며 “끌려 다니면 안 된다는 게 내부의견”이라고 했다.

이상규 대표는 통진당 비례대표 부정선거 논란과 관련해 오히려 구속된 쪽은 유시민 국민참여당계였다며 지난 3월 시사오늘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이상규 대표는 통진당 비례대표 부정선거 논란과 관련해 오히려 구속된 쪽은 유시민 국민참여당계였다며 지난 3월 시사오늘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지금은 맞고 그때 틀린 이유

따지고 보면 두 번의 분당 이유 모두 종북 딱지 우려에 대한 정의당의 선긋기로 볼 수 있다. 평등파인 정의당에서 볼 때 민중당과 함께하는 것은 ‘종북 딱지’인 셈이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노선 차이 극복 없이 다시 통합한다 한들 제3의 분당 상황은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결국 통합 저해의 요지는 정체성에 있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정파 간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민중당의 기저를 이루는 자주파인 NL(민족해방, Ntional Liberation)은 우리 사회의 근본 모순을 ‘민족모순’으로 봤다. 식민지반봉건(혹은, 반자본) 사회로 본 것이다. 분단이야말로 우리나라 모든 만악의 근원이며 이리된 주범을 미국 때문으로 보고 있다. 미국을 몰아내 분단을 극복하고 자주적으로 통일해서 우리 민족이 해방된다는 논리이다. 이 같은 NL은 80년대 중후반부터 지하서클 형태가 아닌 전대협 등 총학생회 대중노선에 기반 해 주류로 떠올랐다. 연세대, 고려대, 한양대, 중앙대, 경희대, 한국외대, 부산대, 전남대, 조선대 등을 중심으로 대학 전반이 NL의 아성이었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강철서신>으로 대표되는 ‘김영환’ 등이 사상적 일각을 이루면서 자민투(반미자주화반파쇼민주화투쟁위원회) 등이 NL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이후, 86년 건대사태 때는 ‘애학투’가 NL 운동을 이끌었다. 당시 NL계가 학생운동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던 배경에 대해 80년대 PD계 운동권 출신의 한 언론인은 “자주파가 대중의 공감을 얻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라며 “노동자, 농민, 도시 빈민 등 기층을 폭넓게 바라본 것도 확산의 요소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더해 “NL계 특유의 품성론을 강조한 것도 대중에 녹아들기 좋았다”고 덧붙였다.

NL과 PD

반면 PD(민중민주주의혁명, People’s Democratic Revolution)는 우리 사회의 근본 모순을 계급 모순으로 봤다. 신식민지국가 독점자본주의론으로 사회를 인식했다. 노동자들의 고혈을 짜내는 자본가들이 독점하고 있는 생산수단을 사회화해 해결하려는 것이 목표였다. 노조결성, 노동조합활성화, 총파업 등 노동자들이 단결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는 삼민투(민족통일민주쟁취민중해방투쟁위원회)와 제헌의회를 주장한 CA(Constituent Assembly)의 민민투(반제 반파쇼 민족 민주화 투쟁 위원회)로 이어졌다. 또 NL의 일부까지 흡수한 지금의 정의당(PD 다수)에 이르렀다.

이런 PD가 소수파를 넘어 현재 대중의 지지를 얻으며 진보정당 중에서도 선두를 달리는 이유 또한 눈여겨 볼만하다. 처음 PD는 대체적으로 서울대, 이화여대, 동국대, 서울시립대 등을 제외하면 학내 전체 운동권 세력의 절반에 채 미치지 못하는 정도의 세력이었다. 그러다 90년대 소련의 사회주의가 무너지면서 방향 전환을 하게 된다. 제도권 정치 지향과 함께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 북유럽식 사민주의(SD)로 노선을 바꾼 것이다. 이와 달리 NL은 처음엔 범대중적 노선으로 성장했지만, 분단 트라우마로 인한 종북 딱지에 발목이 잡혀 정의당과의 경쟁에서 주도권을 놓친 상황이 됐다. 

통합은 진짜 미친 짓일까

이렇듯 세부적 차이에 의해 양 정파 간 차이는 쉽게 좁혀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앞서 풀어본 것처럼 진짜 노선 차이의 문제인가, 싶은 의문이 없지 않다. 정세운 정치평론가는 “단순하고 쉽게 보면 단지 통일을 바라보는 시각차”라며 “그들이 추구하는 정치의 가치는 본질적으로 같다”고 봤다. 때문에 “좌우, 영호남, 진보 보수도 한 당(바른미래당)으로 만나 치열한 노선 투쟁을 벌이는 이때 진짜 수권정당으로 나아가기 위해 진보정당끼리 못 합칠 이유가 없다”고 했다. “통일노선이 다르면 같이 합쳐서 치열한 내부투쟁을 통해 하나로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전했다.

이에 대해 두 당은 어떤 입장일까. 민중당 당직자는 며칠 전 통화에서 “대의명분상 진보통합이 맞지만 정의당이 원치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통합 시 주도권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 듯하다”고 가늠했다.

진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정의당 측은 저마다 답변하기를 꺼려했다. 여전히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정 평론가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민중당이 종북이라는 프레임에 걸려있어 다가서지 않으려 하는 것이 예나 지금의 본질”이라고 답했다. 그게 진짜 맞다면 선거 전략에 앞서 진보정당의 아이덴티티를 환기할 때라고 했다.

“정의당은 왜 정치를 하려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는 반문이었다. “자주적 통일을 종북이라 할 수 있습니까?”  이 질문에 정의당은 뭐라 답할까.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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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희 2019-07-27 09:38:24
좋은 문제제기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