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의 窓] 아름다운 ‘거리 두기’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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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窓] 아름다운 ‘거리 두기’ 예찬 
  • 김웅식 기자
  • 승인 2019.08.01 0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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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웅식 기자) 

개인 공간의 문제는 물리적 거리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적정 거리를 유지한다고 해도 상황에 따라 불편과 불쾌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행위에 대한 심리적 거리가 더 중요해 보인다.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아야 행복할 수 있다. ⓒ인터넷커뮤니티
개인 공간의 문제는 물리적 거리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적정 거리를 유지한다고 해도 상황에 따라 불편과 불쾌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행위에 대한 심리적 거리가 더 중요해 보인다.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아야 행복할 수 있다. ⓒ인터넷커뮤니티

한강공원은 비둘기들의 살림터이기도 하다. 잔디밭 벤치 앞에 비둘기 떼가 모이를 쪼고 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경계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을 졸졸졸 따르고 있지 않는가. 어느 한 순간으로는 이뤄질 수 없는 친밀감은 무수한 만남과 소통의 결과이려니 생각해 본다. ‘해치지 않는다’는 무언의 믿음과 행동이 비둘기와 사람을 친밀한 관계로 발전시켰을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보면 모이를 쪼고 있는 비둘기와 부닥칠 것 같지만,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는다. 비둘기와 나 사이에 안전거리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한강공원은 사람과 사람, 자연과 사람이 소통·교류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산은 나무 간격과 간격이 모여 울창한 숲을 이룬다. 숲은 가까이 서기도 하고 멀찍이 떨어지기도 해야 제대로 볼 수 있다. 지혜로운 거리는 사람과 사람, 나무와 나무 사이에서만 빛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조망에도 필요한 것이다. 삶을 윤택하게 하는 아름다운 ‘거리 두기’를 떠올려 본다.  

숲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때는 몰랐다
나무와 나무가 모여
어깨와 어깨를 대고
숲을 이루는 줄 알았다
나무와 나무 사이
넓거나 좁은 간격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벌어질 대로 최대한 벌어진
한데 붙으면 도저히 안 되는
기어이 떨어져 서 있어야 하는
나무와 나무 사이
그 간격과 간격이 모여
울울창창 숲을 이룬다는 것을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숲을 들어가 보고서야 알았다
           -안도현 詩 ‘간격’ 

나무들 사이에 ‘적정 거리’가 확보되지 않으면 수목은 생존경쟁에 내몰려 볼품없게 된다.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일 듯하다. 동식물에 자신의 영역이 있듯, 우리에게도 ‘개인 공간’이 있어 무의식적인 경계선을 갖는다. 만원버스나 붐비는 전철 안에서 타인과의 거리에 계속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어떤 작가에 따르면, 적절한 개인 공간은 나라별, 문화별로 다소 차이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가벼운 포옹과 키스 등이 허용되는 ‘접촉 문화권’에선 좁고, 신체적 접촉을 금기시하는 ‘비접촉 문화권’에선 상대적으로 넓다. 비접촉 문화권인 아시아·중동 지역에선 낯선 사람과는 100㎝, 지인과는 80㎝, 친밀한 사람들과는 40㎝ 정도를 적당한 거리로 여긴다고 한다.  

개인 공간의 문제는 물리적 거리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적정 거리를 유지한다고 해도 상황에 따라 불편과 불쾌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행위에 대한 심리적 거리가 더 중요해 보인다. 그의 활달한 성격 너머에 쉬 상처 받는 여린 심성이 있음을 잘 안다. 상대를 배려하는 이런 마음이 있을수록 감정의 손상 없이 개인 공간을 좁힐 수 있지 않을까.

비좁은 도시의 탐욕을 좇아 웃고 우는 게 우리네 얼굴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나와 다르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자기 중심으로 살아가는, 나와 똑같은 사람이다. 한 사람을 가까이 하고 의지할수록, 마음의 문을 열수록 관계는 힘들어진다. 그가 내 공간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나와 세상을 연결하는 끈을 밀어보기도 하고 당겨보기도 한다. 밀어내면 멀어지고, 당기면 가까이 와서 들이민다.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아야 행복할 수 있다. 삶의 거의 모든 문제는 ‘거리 조절’에 실패했을 때 벌어진다.

담당업무 : 논설위원으로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2004년 <시사문단> 수필 신인상
좌우명 : 안 되면 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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