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증권社의 史⑥] 1997년…나라 경제 흔들리던 날, 증권사도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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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증권社의 史⑥] 1997년…나라 경제 흔들리던 날, 증권사도 무너졌다
  • 정우교 기자
  • 승인 2019.08.05 1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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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외환위기 맞아…IMF, 12월 3일 한국에 긴급 자금 지원
고려·동서증권, 자금지원 후에도 2주내 연이어 최종 부도 처리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정우교 기자]

국내 최초 증권사인 대한증권(現 교보증권)은 지난 1949년 설립됐다. 5년 뒤, 현대적 모습을 갖춘 증권시장이 개장되면서 증권회사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대한증권이 설립된지 70년. 그동안 국내 증권시장에서는 야심차게 등장했던 증권사가 한순간 사라지는가 하면, 인수와 합병을 통해 사명(社名)을 바꾸고 새롭게 태어난 회사도 있었다. 본지는 그 긴 시간 치열하게 피고 졌던 대한민국 증권사들의 역사(歷史)를 되짚어보기로 했다.<편집자 주>

舊고려증권 본사 건물, 현재는 HP사가 매각해 'HP빌딩'이 됐다. ⓒ시사오늘 정우교 기자
舊고려증권 본사 건물, HP사에 매각돼 현재는 'HP빌딩'이 됐다. ⓒ시사오늘 정우교 기자

"고려증권도 상당히 큰 회사였고, 동서증권도 규모가 있던 곳이었습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최근 '사라진 증권사'들을 취재하고 있다는 기자의 말에 "90년대 증권업계를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면서 IMF외환위기 당시 존재했던 동서·고려증권에 대해 귀띔 했다.

1950년대 비슷한 시기 등장했던 두 증권사는 40여년만인 1997년, 외환위기와 함께 부도를 맞았고 이듬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97년, 당시 한국엔 무슨 일이 있었는가

당시 대한민국은 외환금융 위기를 맞닥뜨렸다.

외환보유고는 바닥을 드러냈고 투자와 소비는 얼어붙었다. 이와 함께 경제, 산업, 사회 전반에서 심각한 문제들이 터져나왔다. 진로, 기아, 쌍용, 쌍방울 등 재벌그룹과 크고 작은 기업들은 도산했고 '명예퇴직'과 '정리해고'에 근로자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결국 대한민국 정부는 12월 3일, IMF 긴급자금 지원에 합의했다. IMF직접지원 자금과 미국·일본 등의 협조융자 등을 합친 총 550억달러 규모였다.

이행 조건으로는 △외국은행·증권의 국내 자회사 설립 허용 △외국인 종목당 주식취득한도 확대 △주식시장 전면 개방 △무역관련 보조금·수입제한 승인제·수입선다변화제도 폐지 등이 알려졌다. 

긴급지원이 이뤄졌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당시 임창렬 부총리겸 재정경제원장관과 여당(한나라당)은 대국민 사과문과 함께 극복 의지를 촉구했지만 이후 기업의 부도는 계속됐다. 

외신은 "급격한 성장둔화", "경제기적의 초라한 종말" 등의 표현으로 한국 경제에 대한 절망적인 분석을 쏟아냈으며, 당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도 정권 인수와 함께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총체적인 대안을 마련해야만 했다. 

두 증권사가 부도 나던 날 

고려증권은 정부가 IMF 긴급자금을 지원받고 당시 부총리가 사과한 이틀 후인 12월 5일, 부도처리됐다. "금융기관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지만 그만큼 상황은 나빴다.

당시 보도를 종합하면 고려증권은 국내 53개 지점을 소유한 자본금 1645억원, 업계순위 8위였던 중견 증권사였다. 고려종금, 고려통상, 고려생명 등 10개의 계열사와 함께 '고려그룹'을 이루고 있었지만 12월 5일 3개 은행에서 돌아온 어음 15장, 1750억원어치를 막지 못했다. 

지난 2013년 방송됐던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성나정(고아라)이 입사하려고 했지만 최종부도처리로 출근하지도 못했던, 그 회사다. 

당시 증권관리위원회에 따르면 1997년 국내 증권사들이 당시 떠안고 있었던 부실채권 1조5000억여원 중 고려증권은 1920억8300만원으로 가장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일주일 뒤 영업정지 처분 법정관리 신청을 낸 동서증권도 부실채권 1060억9600만원을 갖고 있었다. 

지난 1953년 보국증권으로 첫 등장한 동서증권은 국내 82개, 해외 1개 지점을 소유한 회사였다. 자본금 2872억원, 업계순위 4위의 극동건설 그룹 계열이었다. 그러나 이 대형증권사마저도 이날 돌아온 어음 903억원을 결제하지 못해 최종 부도 처리됐다. 

舊고려증권 본사 건물로 알려진 여의도동 34-1번지, 현재는 SIMPAC을 비롯한 다른 회사들이 사용하고 있다. ⓒ시사오늘 정우교 기자
舊동서증권 본사 건물로 알려진 여의도동 34-1번지, 현재는 SIMPAC을 비롯한 다른 회사들이 사용하고 있다. ⓒ시사오늘 정우교 기자

고려·동서증권 본사, 타사에 매각…출신들은 이후 증권사 설립·대표 활동 

20여년이 흐른만큼, 과거 두 회사가 사용했던 본사 건물은 다른 회사들이 들어서 있다.

먼저 서울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83(여의도동 23-6)에 위치하고 있는 'HP빌딩'은 과거 고려증권의 본사 건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자금난을 극복하기 위해 이 건물을 매각키로 했고, 그 결과 1999년 HP사가 660억원에 매입했다.

동서증권의 본사가 있었던 곳은 서울시 영등포구 국제금융로 52(여의도동 34-1)이다. 옛 대우증권 본사건물 옆에 위치해 있다. 현재는 IBK기업은행 동여의도지점, TNS KOREA 등이 사용하고 있다. 

한편, 고려·동서증권 출신 '증권맨'들은 두 회사가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증권가에 남아 꾸준한 활동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우선 지난 2000년 1월, 최봉환 前고려증권 전무는 현재 코리아에셋투자증권의 전신인 코리아RB증권을 세웠다. 또한 지난달 1일 선임된 바로투자증권 윤기정 신임 대표도 지난 1989년 동서증권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담당업무 : 증권·보험 등 제2금융권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우공이산(愚公移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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