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필담] 대안정치, ‘도로DJ당’이라고 부르도록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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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필담] 대안정치, ‘도로DJ당’이라고 부르도록 하여라
  • 한설희 기자
  • 승인 2019.08.04 2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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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국회의 감수분열과 허망한 제3지대론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한설희 기자]

민주평화당 비당권파의 정치 대안은 다시 DJ, 도로 DJ에 불과했다. 모든 초점이 호남과 DJ에 맞춰진 평화당 당권파와 전혀 다를 바 없어 보이는데, 왜 분당을 감수한 것일까. ⓒ뉴시스
민주평화당 비당권파의 정치 대안은 다시 DJ, 도로 DJ에 불과했다. 모든 초점이 호남과 DJ에 맞춰진 평화당 당권파와 전혀 다를 바 없어 보이는데, 왜 분당을 감수한 것일까. ⓒ뉴시스

제20대 국회를 ‘과학 실습의 장’으로 불러야 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 생생한 감수분열의 현장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1개의 모세포, 국민의당에서 두 차례 분열이 발생해 4개의 조직이 생겼기 때문이다.

20대 총선에서 ‘녹색 돌풍’을 일으키며 제3당의 가능성을 보여줬던 국민의당은 1년만에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으로 분열됐다. 바른미래당은 또 손학규 대표를 위시한 당권파와 안철수계 및 유승민계로 불리는 비당권파로 나뉘어 치열한 혈투(血鬪) 중이다. 정작 국민들은 관심도 없어 보이지만. 

민주평화당이라고해서 상황이 다른 건 아니다. 정동영 대표를 중심으로 한 당권파와 대립하고 있는 박지원·천정배·유성엽 등 10명의 비당권파 의원들은 ‘변화와 희망의 대안정치연대’(이하 대안정치)를 조직하고 ‘분당 초읽기’에 나섰다. 

가장 마지막에 탄생한 이 ‘대안정치’ 그룹은 유성엽 원내대표의 말에 따르면 “제3세력에 있는 정당이 제대로 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시작됐다. ‘정동영 체제’의 평화당이 민주당 2중대를 자처하며 제3당의 소임을 다 하지 못하고 있으니, 본인들이 직접 나서 제3지대를 구축하고 진정한 ‘대안정당’ 되겠다는 취지에서다. 

그래서 이들이 내세우는 ‘대안정치’의 가치가 무엇인가. 정치에선 백 마디 말보다 한 마디 실천이 중요한 법이니, 이들의 활동 내역을 살펴보았다.

국회에서 출범 기념 토론회와 워크숍을 개최한 것을 제외하면, 이들의 외부 일정은 단출하다. 권노갑·정대철 등 DJ계 원로 정치인들을 만나 그들의 앞에서 “DJ정신이 되살아나야 나라의 외교·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DJ를 한껏 추켜올렸고, 마찬가지로 DJ의 하의도 생가에 단체 방문할 일정을 세웠다(이는 국회 본회의 연기로 취소됐다).

요컨대 이들의 정치 대안은 다시 DJ, 도로 DJ에 불과했다. 모든 초점이 호남과 DJ에 맞춰진 평화당 당권파와 전혀 다를 바 없어 보이는데, 왜 분당을 감수한 것일까.

잠깐의 고민 끝에, 이들은 DJ의 진정한 후예가 되기 위해서 굳이 이 ‘가시밭길’을 택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답이 나왔다. 

DJ는 지난 1995년 당권파인 이기택 총재와의 갈등 끝에 동교동계와 함께 민주당에서 빠져나와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다. 분당 과정에서 노무현·김원기·제정구·김원웅·유인태·원혜영·김부겸 등 민주당 잔류파(통추)가 적극 말렸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이후 DJ는 김종필과의 ‘DJP연합’으로 호남·충청의 ‘반(反)영남’ 지지기반을 획득해서 1997년 대권을 잡았다. 

일명 ‘대안정치’는 이렇게 DJ의 사례에서 분당 후 창당, 창당 후 연합으로 정권을 획득하는 법을 터득한 것이 아닐까.

임진왜란 때의 일이다. 조선 14대 임금 선조는 피난길에서 생전 처음 보는 생선 ‘묵’을 맛있게 먹었다. 맛에 비해 고기의 이름이 보잘것 없다고 느껴졌는지, 그 자리에서 생선의 이름을 ‘은어(銀魚)’로 고쳐주기까지 했다. 전쟁이 끝나고 궁에 돌아온 선조가 다시 은어 요리를 주문했다. 그런데 한입 베어 물어보니 그 맛이 예전 같지 않자, 실망한 나머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것을 도로 묵이라고 부르도록 하여라.”

이 말이 구전(口傳)되면서 지금의 도루묵이 되었다는, 민간어원설의 한 단락을 소개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민주평화당과 다르게 제대로 된 제3당을 보여주겠다며, 새로운 가치의 제3지대를 형성하겠다며 출범한, 그 이름부터 호화롭고 찬란한 ‘변화와 희망의 대안정치연대’. 그러나 20대 국회에서 제3당의 몰락과 제3지대의 허망함만 보여주는 이들에게 ‘대안정치’라는 말은 과분한 듯하다. 아마 선조가 살아 이 광경을 보고 있었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그냥 ‘도로DJ당’으로 부르도록 하여라.”

담당업무 : 통신 및 전기전자 담당합니다.
좌우명 : 사랑에 의해 고무되고 지식에 의해 인도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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