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필담] 한국과 일본, 둘 중 누가 ‘겁쟁이’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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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필담] 한국과 일본, 둘 중 누가 ‘겁쟁이’가 될 것인가
  • 조서영 기자
  • 승인 2019.08.11 0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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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호체계로 보는 韓日관계
겁쟁이 게임의 최악은 DD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조서영 기자]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왈츠(Kenneth N. Waltz)는 국제정치를 ‘국제체제의 무정부 상태’로 설명했다. 이는 국내정치에는 정부라 불리는 일종의 권위체가 존재하는 반면, 국제정치에는 개별 국가보다 상위의 권위체가 없다는 의미다. 따라서 그는 국제체제에서는 국가 간 국제협력의 가능성이 낮다고 봤다.

하지만 그로부터 7년 후, 오이(Kenneth A. Oye)는 무정부 상태에서도 충분히 국가들은 협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국가 간 협력 가능성이 언제 증가하고 감소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선호체계와 상황, 전략 등을 제시했다. 그는 각 국가가 어떤 선호체계로 상황을 파악하는지에 따라 전략도 달라지며, 이에 따라 국제협력의 가능성도 결정된다고 봤다.

1979년과 1986년에 발표된 두 이론은, 2019년 대한민국과 일본의 관계를 분석하기에 여전히 유효하다.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면서 양국의 반감이 높아지는 가운데, 각 국가가 이 상황을 어떻게 파악하는지에 따라 전략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에 따른 갈등 해결 가능성도 예상해볼 수 있다. 

주요 선호체계에는 겁쟁이 게임, 죄수의 딜레마, 사슴사냥, 교착상태가 있다.ⓒ시사오늘 그래픽=박지연 기자
주요 선호체계에는 겁쟁이 게임, 죄수의 딜레마, 사슴사냥, 교착상태가 있다.ⓒ시사오늘 그래픽=박지연 기자

먼저 각 선호체계를 구성하는 요소로는, 상호 협력(CC), 상호 배신(DD), 상대는 협력하지만 자신은 배신하는 일방적 배신(DC), 상대는 배신하지만 자신은 협력하는 일방적 협력(CD)이 있다. 네 가지 구성 요소의 배열에 따라 다양한 선호체계가 발생한다. 대표적인 선호체계로는 겁쟁이 게임(chicken game), 죄수의 딜레마, 사슴사냥, 교착상태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8일 일본의 수출 규제를 두고 “자유무역 질서를 해치는 승자 없는 게임”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일본과의 상황을 ‘겁쟁이 게임’의 일환으로 파악한 것이다. 이 게임은 두 명이 서로 자동차를 몰고 상대를 향해 돌진하는 상황에서, 먼저 핸들을 틀어서 피하는 쪽이 겁쟁이가 되는 게임이다. 

이 게임의 효용 크기는 DC>CC>CD>DD로, 자신은 돌진하고 상대가 핸들을 꺾어 협력을 하는 경우가 가장 큰 효용을 가져온다. 반면 상호 배신은 모두가 핸들을 틀지 않아 결국 충돌하기 때문에 가장 낮은 효용을 가져온다. 따라서 기본적인 상식을 가진 국가라면 이 전략은 취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현재 한국과 일본은 모두에게 가장 낮은 효용을 가져오는 상호 배신을 선택했다.

그렇다면 의문은 하나다. 왜 합리적 이성을 가진 두 국가가 최악의 효용을 선택했는가. 겁쟁이 게임은 이름처럼 먼저 핸들을 꺾는 것을 자존심의 문제로 본다. 더구나 역사 문제가 얽혀있는 한일관계는, 일견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행동을 취할 충분한 명분이 된다.

물론, 경제적 효용 관점에서만 봤을 때 DD에서 CD로 전략을 바꾸는 것이 본인에게 더 큰 효용을 가져온다. 하지만 문제는 상대에게 더 큰 효용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결국 정치와 외교는 사람이 하는 일이고, 또 오랜 시간 축적된 감정의 영역이기 때문에 경제적 이해득실만을 따져 전략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

한편 한국은 이번 사태를 겁쟁이 게임으로 봤지만, 일본은 다른 선호체계로 봤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일본은 이번 상황을 ‘죄수의 딜레마’나 공통의 이익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교착상태’로 봤다면, 일본 측에서는 협력하지 않는 쪽으로 전략을 세울 유인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상황은 상대에 대한 정보 부족으로 생긴 ‘죄수의 딜레마’나, 두 국가 간의 공통의 이해관계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교착상태’, 두 국가가 오로지 하나의 공통의 이익을 바라는 ‘사슴사냥’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고민은 하나다. 겁쟁이라는 평판을 얻더라도 폭주하던 자동차의 핸들을 꺾어 자국의 이익을 얻는 것, 혹은 두 국가의 파국(破局)을 초래하더라도 핸들의 방향을 끝까지 유지해 앞만 보고 달리는 것. 그리고 만약 전자를 선택할 것이라면 또 한 번의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둘 중 누가 겁쟁이가 될 것인가’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행복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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