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도의 時代架橋] 극일(克日)-기업 살려야 전쟁 이긴다
[이병도의 時代架橋] 극일(克日)-기업 살려야 전쟁 이긴다
  • 이병도 주필
  • 승인 2019.08.10 09: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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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격차가 문제 본질 ... 국가미래 대비를
한·일 경제전쟁, 초기 산업피해 관건
백척간두 한국경제, 반(反)시장 규제 청산 계기로
노동계 줄파업엔 입 닫은 민감반응 정부 문제
기업관과 정책 패러다임 전환을 촉구한다
비상 걸린 기업들, 대일 관계 속도조절론
소재·부품 국산화, 기초과학 육성이 최대 과제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이병도 주필)

한·일 양국이 본격적인 경제전쟁에 돌입했다. 그동안의 협력관계가 전면적인 대결 국면으로 바뀌었다. 우방국간 군사정보 교류협력 관계까지 깨질 위기에 처하면서 서로의 자존심을 건 무한경쟁이 펼쳐질 판이다.

결코 만만치 않은 싸움이다. 어차피 일본도 피해를 감수해야겠지만, 우리에게 닥칠 피해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은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한 데 이어 자동차용 배터리와 화학제품으로까지 규제 대상을 확대할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다. 결국 경제·산업 전방위로 확대될 조짐이다. 

이제,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등 공격으로 우리 기업이 직접적이고 광범위한 피해를 보게 되면 그 규모는 헤아리기 어렵다. 경제 전쟁을 직접 치러야 하는 기업이 살아야 극일(克日)도 가능하다. 

중소기업은 이런 불확실성에서 더 위태롭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달 일본의 수출 제한과 관련해 중소제조업 269개사를 조사한 결과 일본의 수출 규제가 지속되면 10곳 중 6곳은 6개월 이상 버티기 어렵다고 답했다. 한국경제는 내외 악재의 중첩으로 그야말로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서게 됐다. 

직접적인 피해자는 역시 기업이다. 기업들이 버텨내고 힘을 쓸 수 있는 실질적인 지원 대책을 정부가 내놓지 못하면 '지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말은 허언이 될 수밖에 없다. 이미 기업들은 실적악화에다 미·중 무역전쟁이라는 대형악재만으로도 벅차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부품·소재 조달에 차질이 빚어진다면 제품생산 계획이 틀어질 수밖에 없고 끝내 경영압박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이미 시장 판도가 중국과 대만으로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주도권이 바뀔 경우 앞으로 4~5년 뒤 부품·소재 개발에 성공한다고 한들 시장의 열세를 극복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의문이다. 

결과적으로 국민들에게 그 피해가 돌아가기 마련이다. 과거 외환위기 당시 금 모으기로 사태를 이겨냈던 경우와도 또 다르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 한다. 여권이 진정 이번 사태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으려면 심각한 경제상황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가다듬고 소득주도 성장으로 대변되는 반기업·친노동정책의 기조를 바꾸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미증유의 위기는 과거와 전혀 다른 새로운 접근방식을 요구하고 있다. 

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소재부품장비인력발전특위 1차 회의에서 정세균 특위위원장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뉴시스
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소재부품장비인력발전특위 1차 회의에서 정세균 특위위원장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뉴시스

기업에 대한 시각부터 바꾸라

현재 경제활력을 꺾는 반(反)시장적 규제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통신요금, 신용카드 수수료, 분양가 등의 가격 규제부터 공정거래법과 국민연금을 동원한 기업 지배구조 규제, 최저임금 등 노동관련 규제가 대표적이다. 산업안전보건법, 화학물질관리법 등의 규제는 말할 것도 없고 인터넷은행, 핀테크 규제도 거미줄처럼 깔려있다. 

의료·공유경제·빅데이터 규제는 신산업 활성화를 막는 주범이다. 입법 대기 중인 공정거래법과 상법 개정안도 기소 남발과 경영권 위협 우려로 기업들에 공포의 대상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기업과 기업인들이 잠재력을 발휘하기는커녕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지금은 비상 상황이다. 세계 경제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미·중 무역전쟁 여파로 1, 2위 경제대국의 경기침체 우려마저 높아지고 있다. 안보위기까지 겹친 한국은 이중 삼중으로 취약한 상태다. 본격적인 규제혁파로 기업들에 힘을 실어줄 때다.

기업의 활력을 높이려면 우선, 대기업에 대한 청와대의 시각부터 바꿔야 한다. 경제난국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법은 먼 곳에 있지 않다. 

대기업을 개혁 대상으로만 여기는 시각을 바꾸지 않고 기업인들을 만나봐야 내실 있는 논의가 이뤄지기 어렵다. 대기업은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의 원천이다. 정치도, 외교도 멈춘 상황에서 한국 경제가 그나마 버티는 것은 기업인들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회동은 기업인들의 애로사항이 무엇인지, 경영활동을 정상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진솔하게 논의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기초과학 토대 다시 세워야 

문제의 본질은 일본과의 기술격차다. 여기에 대한민국 국가미래의 큰 함정이 도사린다. 정부 계획대로 일본과의 격차를 줄이는 '기술자립'을 이루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최대 과제다.

우리는 이미 1990년대부터 소재·부품산업 육성을 위한 국가 차원의 계획을 수립해 실천에 옮겼다. 2001년 ‘부품·소재 전문기업 등의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도 만들었고 2010년 ‘10대 소재 국산화 프로젝트’도 추진했다. 

그렇게 했는데도 이번처럼 일본의 공격에 노출된 것은 세계에서 일본만이 만들 수 있는 고급 부품과 고급 소재를 아직도 개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제껏 단 한해도 일본과의 무역역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이는 소재·부품 국산화를 구호로만 주장했을 뿐, 보다 근본이 되는 기초과학 연구를 소홀히 한 결과다. 기초과학은 당장 결과물을 만들 수 없지만 반드시 필요한 분야다. 

일본이 지금의 기술 경쟁력을 갖춘 바탕에는 전후 기초과학에 꾸준히 투자해 배출한 20여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있다. 우리가 진정한 기술자립을 이루려면 그 밑에 기초과학이라는 탄탄한 토대부터 다시 세워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지난 30년 가까이 부품과 소재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한결같이 외쳤어도 별로 나아진 게 없는 전철만 계속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정부, 대학, 연구기관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위기 극복의 중심은 역시 기업들이다. 정부는 말로만이 아니라 난국을 이겨낼 수 있도록 기업들의 기(氣)를 살려서 기초 기술경쟁력 등 모든 분야에서 창의적인 기업가정신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경제환경을 조성해 나가야만 한다.

'기업현장'에 바탕한 정책 구상을

현재 일본의 보복으로 가장 충격에 휩싸인 건 산업계다. 5대 그룹은 일제히 ‘비상경영체제’를 본격 가동했다. 시나리오별 점검, 소재·부품 재고 확보, 대체 공급처 물색 등 최악의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대비하는 모습이다. 중소기업들도 후폭풍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당장 6개월도 버티지 못한다는 중소기업이 절반이 넘는다. 소재·부품 관련 기업과 인력 양성에 앞서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것은 현재 우리가 보유한 기업과 기업인, 관련 전문가 등의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다급한 기업들 입장에서는 정부가 대책을 내놔도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느끼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소재·부품 국산화만 해도 적지않은 시간이 걸려 당장의 대안이 되기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밝힌 ‘남북 간 평화경제’ 구상도 지금 단계에선 현실성을 기대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수출규제 영향권에 들어간 업종과 기업이 대폭 늘어난 데다 저마다 처한 현실이 다르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산업 전반에 걸친 과감한 대책과 함께 맞춤형 지원이 절실하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가 기업들 목소리를 제대로 듣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피해 당사자들인 기업의 의견이다. 기업들이 이번 사태를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견부터 청취할 필요가 있다. 기업 현장의 생각과 동떨어진 정책 구상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이들이 잠재력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기업인과 전문가들의 의욕을 꺾고 경제 활력까지 앗아가는 규제부터 걷어내야 한다. 

또한, 소재·부품·장비의 경쟁력을 세계적으로 끌어올리려면 이번 기회에 중소기업을 더 지원하고 더 확실히 배려해야 한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에게만 맡기지 말고 중소기업과도 다양한 채널로 만나고 대화해야 한다. 

2010년 출범한 동반성장위원회가 이익공유 등 대·중소기업 상생을 시도하겠다고 장담했지만 뚜렷한 성과가 없었다. 중소기업 제품을 대기업이 외면했다거나 구매한 뒤 어음으로 결제해 자금회전이 어려웠다는 불평 등은 더이상 나오지 않아야 한다. 정부의 정책 발표에서도 소재·부품·장비 경쟁력위 산하에 대·중소기업 상생협의회를 설치하고 상생품목을 육성하겠다고 했는데, 결코 구두선에 그쳐서는 안 된다.

'감정'보다 실사구시 추구해야

문 대통령이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후 정부는 최근 잇따라 대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기초 소재 및 부품, 장비 산업의 대일 의존 탈피 등의 대책은 단기간에 실현되기 어렵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당장 급한 것은 일본의 경제 보복으로 치명상을 입을 위기에 처한 기업의 어려움을 덜어주고 살길을 찾아주는 것이다. 일본 외 대체 구매처 확보를 위한 예산·세제 지원, 기술 개발을 위한 규제 개선 등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기업 지원 대책이 절실하다.

정부 여당의 감정적 대응으로 결코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내년 도쿄올림픽 보이콧, 1965년 한일협정체제 청산 등의 강경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여당 내에서 쏟아지고 있다. 상황을 냉정하게 관리하면서 외교해법 등으로 사태해결을 모색해야 할 정부 여당이 되레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정치권이 정략적 판단에 따라 반일감정을 부추기는 행태는 위기 대처에 나선 기업들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 삼성·SK 등 기업들은 비상회의를 여는 등 일본 수출규제 대응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위기 극복을 넘어 이번 기회에 내실을 더 다져 새로운 사업기회를 창출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는 모습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5일 전자계열사 사장단회의를 긴급 소집해 ‘긴장은 하되 두려워하지 말고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자’는 메시지를 전했다. 최태원 SK 회장도 이날 열린 비상회의에서 “흔들림 없이 위기 대처에 최선을 다하자”고 강조했다. 

이런 재계의 행보를 정부 여당이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감정을 앞세워 ‘결사항전’만 외치고 있어 우려스럽다. ‘말로만 하는 반일’은 사태만 악화시킬 뿐이다. 정부 여당이 할 일은 피해를 최소화할 실질적 대책을 마련하고 기업이 경쟁력을 키우도록 정책·입법으로 뒷받침하는 것이다. 감정에서 벗어나 실사구시를 추구하는 냉철한 이성을 발휘하는것이 중요하다. 

대응조치는 실익 고려

우리의 대응조치는 실익을 고려해야 한다. 국제분업과 산업생태계의 큰 틀에서 한·일 산업의 비교우위를 따져 정밀 타격하는 방안을 세워야 한다.

문 대통령이 느닷없이 ‘평화경제’를 언급한 것도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북한이 자고 나면 미사일 도발에 나서고 비핵화협상도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국제사회의 고강도 대북제재도 여전하다. 한반도 정세가 살얼음판을 걷는 마당에 남북경제협력과 평화경제는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자칫 이 발언이 경제전쟁 전선을 외교안보로 확산시키는 빌미로 작용할 수도 있다.
정부가 내놓은 종합대책도 허술하다. 100대 핵심전략품목을 선정해 수입선 다변화와 생산 확대를 통해 1∼5년 내 공급을 안정시킨다는 게 핵심이다. 

정부는 예산·금융·규제완화 등 가용한 수단을 총동원하겠다고 한다. 화급한 일은 어떤 경우에도 일본의 보복조치로 공장이 멈추거나 수출이 중단되는 사태를 막는 것이다. 과연 20개 핵심품목을 1년 만에 국산화하거나 대체할 수 있겠는가. 지난해 대일 무역적자 241억달러 중 소재·부품·장비 적자는 224억달러에 달한다. 수십년간 이어져 온 한·일 기술격차가 정부 대책만으로 뚝딱 해결될 일은 아니다.

정부가 몇 년 걸릴지도 모를 소재·부품 국산화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기업들은 몇 달이면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삼성전자만 해도 한 해에 20조 원 가까운 연구·개발(R&D) 투자를 하는데, 정부의 1조 원 지원으로 획기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글로벌 경제 전쟁은 현실이다. 냉철하게 외교 해법을 찾는 데 집중해야 한다. 

상대적 자충수 주의 ... 냉철한 외교해법 중요

아베 신조 정권의 결정에 맞서 문 정부도 “일본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경제 맞보복 카드는 실효성이 의문이며, 본격화할 경우 한국 경제에 상대적으로 더 큰 타격을 줄 것이 분명하다.

지난해 한국은 일본에 305억달러어치 상품을 수출하고 546억달러어치를 수입해 무역적자가 241억달러였다. 무역역조는 대일 무역에서 항상적 두통거리다.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뚫기 어려운 시장으로 수출을 늘리는 것이 우리 이익에 부합한다. 대일본 수출 절차를 까다롭게 할 경우 가뜩이나 수출 부진에 허덕이고 있는 우리 기업들이 더 힘들어질 수 있다. 

일본의 대한 수출규제는 대체 가능성이 떨어지는 부품·소재 중심이어서 우리 경제를 타격하는 효과는 크면서 자신들의 피해는 최소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반면 한국이 일본에 수출하는 상품은 석유제품, 철강, 반도체 등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제품이 주축인데 대부분 다른 국가 제품으로 대체 가능하다. 

손실은 주겠지만 치명적이지 않고 수출 감소에 따른 우리 피해가 더 클 가능성이 높다. 대일 수출규제는 쓸 수 있는 카드 중 하나지만 치밀한 논리와 정밀타격 효과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되레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

자칫 어렵게 뚫은 일본 시장만 스스로 차버리는 결과가 될 수 있다. 한국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70%에 이르는 D램 반도체로 맞보복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이 역시 대만 등으로 수입처를 돌리면 그만이다. 일본은 메모리 반도체 수입을 한국(17%)보다 대만(59%)에 3배 이상 의존하고 있다. 이런 대응은 일본의 기존 보복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추가 보복 빌미도 된다. 

국회 졸속입법 반성을

국회 자세도 돌아봐야 한다. 지난 2일 본회의를 열어 142건의 법안을 일제히 처리했다. 거의 1분에 1건꼴로 법안을 처리하는 속도전을 펼쳐서인지 일부 법안은 국내 산업계에 미치는 파장이 매우 큰데도 세세한 검토 없이 졸속 통과됐다. 

근로자에게 근로시간 단축청구권을 주는 남녀고용평등법이 대표적이다. 

이 법은 근로자가 회사에 학업, 자녀·부모 돌봄, 은퇴 준비, 본인의 질병·사고, 학업 등을 이유로 주당 근로시간을 15~30시간으로 줄여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았다. 이 법 통과로 가뜩이나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과 최저임금 인상으로 힘들어하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은 인건비가 한층 더 늘어나는 부담을 안았다. 

특히 노사관계가 좋지 않은 회사에서 노조가 이 법을 악용해 집단으로 단축청구를 한다면 회사 업무가 마비될 수도 있다. 실업급여 지급 규모와 기간이 대폭 확대되는 것도 회사에는 큰 부담이다. 이날 통과된 고용보험법에 따르면 10월부터 실직자에 대한 실업급여 지급 수준이 평균 임금의 50%에서 60%로 오르고 지급기간도 현행 90~240일에서 앞으로 120~270일까지 확대된다. 회사는 이에 따른 금전적 부담도 고스란히 져야 한다. 

지난 2년간 최저임금 인상이 큰 문제가 된 것은 인상 속도가 우리 사회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수준으로 너무 빨랐다는 데 있다. 근로시간 단축청구권이나 실업급여 확대 역시 회사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까지 너무 빨리 가면 부작용만 커지고 안착에 실패할 것이다.

규제개혁 노동개혁 시급 

기본적으로, 벼랑 끝에 놓인 한국 경제에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선 정부가 기존의 경제정책 패러다임을 전면적으로 재조정해야 한다. 기업과 소비자들이 투자와 소비에 다시 나설 수 있도록 새로운 비전과 전략을 제시해야 한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혁신역량을 최대로 끌어올리기 위한 규제개혁이다. 그동안 환경당국에서는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화학물질 등록·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을 내세워 영업비밀까지 공개하라며 기업을 다그쳐왔다. 

환경부를 비롯한 규제 부처에 최근 3년 사이 공무원이 25%가량 늘어났다고 하는데 공무원이 늘어나면 규제가 늘어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기업에 대한 단기적인 자금지원과 별도로 이들 기업이 마음껏 뛸 수 있도록 환경규제·의료규제 등을 과감하게 혁파해야 한다.

협력적인 노사관계 정립도 필수적이다.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제 등 정부가 노동계 주장을 받아들여 과속 추진한 정책들이 기업 투자를 움츠러들게 하고 우리 경제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정부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이라는 공약을 이행하려는 과정에서 해고자와 실업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등 노동계 요구에 편향된 법률 개정에 나서는 것도 문제다. 균형된 노사관계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경영진도 노조의 무분별한 파업에 맞설 수 있도록 대체근로를 허용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한국 경제가 벼랑 끝에 몰린 이 와중에도 자동차·조선업계를 필두로 이달 중순부터 '릴레이' 파업을 강행한다는 방침이다. 불법 시위로 공권력을 우롱해온 민주노총에 대해서는 정부가 법의 엄정함을 보여야 할 때다.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깨려면 고용의 유연성을 높이는 노동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 

노동계 파업 자제 요구 시점 

노조 파업결의도 문제다. 자동차와 조선에 이어 철강업계 노동조합까지 전국의 산업현장에선 전례없는 위기 상황과는 아랑곳없이 파업결의만 줄줄이 이뤄지고 있다. 

현대·기아자동차 노조는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중지’ 결정을 받아 파업권을 확보했고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제철 노조도 쟁의권을 얻었다. 

민노총 금속 노조 산하로 들어간 삼성전자서비스는 이달들어 순환파업에 이어 전면파업을 예고했다. 심지어 지난해까지 무노조였던 포스코도 파업 일보 직전이다. 앞으로 더 얼마나 많은 파업결의가 나올지 알 수도 없다.

연례행사와도 같은 파업일지라도 적어도 올해는 달라야 한다. 자제가 필요하다. 

정부와 여당 주요 인사들은 죽창을 들자고,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벌이자고, 일치단결해서 맞서자고 국민들만 부추길게 아니라 노동계에 자제를 촉구할 필요가 있다. 일단 외부의 파고를 넘는게 먼저다. 내부 갈등해소는 그 다음 순서다.

안그래도 기울어진 노동시장을 충실히 만들어온 정부 아닌가. 노동계의 자제를 요구하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다.

기업인 존중 분위기 조성을

최저임금의 급속한 인상과 주52시간 근로제 등으로 기업 생태계가 고통 받는 상황에서 일사불란한 대일본 경제전쟁 대비태세가 갖춰지기는 쉽지 않다. 

탈원전 정책도 재고돼야 마땅하다. 국가적으로 전력조달 비용을 굳이 높게 부담하면서 외국과 경쟁을 벌인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이번 싸움이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 내다보기 어렵다는 점에서도 장기적인 대비책이 필요하다. 정부와 경제계가 혼연일체를 이루는 자세가 요구된다. 정부가 싸움을 지휘하더라도 현장에서는 기업들이 맞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기업들에 대해 정책적인 신뢰를 줘야만 한다. 

한·일 갈등의 최대 피해자는 다름아닌 기업이다. 하지만 두 나라 재계는 정치권의 위세에 눌려 제 목소리조차 못내고 있다. 

지난 2일 대한상공회의소 등 한국 경제단체 5곳은 공동성명에서  "한·일 호혜적 발전을 위해선 외교·안보 이슈가 민간 교류에 영향을 끼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고 했다. 

일본 재계도 소극적이긴 마찬가지다.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파결이 나온 뒤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 등 경제단체 4곳은 "(이번 판결로) 한·일 관계가 손상될 수 있을 것으로 깊이 우려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백색국가 파문 과정에선 입을 꼭 다물고 있다. 우리는 두 나라 재계가 공동의 목소리를 내는 데 힘을 모으길 바란다. 한·일 양국 정부는 응당 최대 피해자인 기업의 호소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정부는 기업 경쟁력을 키우고 부품·소재 투자 등 경제활력을 불어넣는 쪽으로 정책기조를 대전환해야 한다. 경제 비상시국에 맞추어 법인세 인하와 주 52시간 근로제 수정, 파업 시 대체근로 인정 등의 조치도 적극 검토해볼 만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업인들의 사기를 북돋우는 일이다. 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국가대표들이다. 기업인을 잠재적 범죄자가 아닌 애국자로 바라보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기업들이 줄지어 해외로 탈출하는 것을 막고 국내 투자와 고용을 늘리도록 하려면 무엇보다 기업인이 인정받고 존중받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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