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 상한제] 우려의 목소리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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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가 상한제] 우려의 목소리 '셋'
  • 박근홍 기자
  • 승인 2019.08.13 1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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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지난 12일 문재인 정부가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적용기준 개선 추진안'을 발표했다. 이번 안의 주요 골자는 △투기과열지구 분양가 상한제 적용 △재건축·재개발 사업 분양가 상한제 소급 적용 △분양가 상한제 적용 주택 전매제한 기간 5~10년 강화 등이다. 

국민들의 내 집 마련 부담을 줄여 부동산 시장을 실수요자 위조로 재편함과 동시에, 분양가 상한제 부작용을 야기하는 투기세력을 정조준한 대책이라는 분석이다. 국토교통부에서는 분양가 상한제 확대를 통해 분양가를 시세 대비 70~80% 수준으로 낮출 수 있으며, 나아가 전체 집값 안정화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기대보다 우려가 앞서는 모양새다.

우선, 주택 공급 변동성이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참여정부에서 분양가 상한제를 시행할 당시인 2007년 주택 공급자들이 분양가 상한제를 회피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면서 전체 공급물량(2007년 인허가 55만 6000만 호)이 전년 대비 급증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2009년 하반기 글로벌 금융위기로 주택경기 하락이 시작됐음에도 2007년 인허가 물량의 분양으로 물량이 늘어나는 결과를 야기했다.

분양가 상한제가 주택경기와 무관하게 공급물량이 집중되거나 감소하는 기형적인 현상을 초래한 것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공급물량 변동성 확대라는 리스크로 이어질 공산이 큰 셈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허윤경 연구위원은 "경기나 나빠도 규제를 회피하기 위해 공급을 늘리고, 경기가 좋아도 규제 때문에 공급을 줄일 가능성이 존재한다"며 "주택 공급에 걸리는 2~5년이라는 시간을 고려하면 (분양가 상한제에 따른 시장 반응이) 경기 상황과 역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주택 공급 변동성 심화는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뿐만 아니라, 기획재정부 등 국가경제를 거시적으로 운용하는 부처에서도 바라는 바가 아니다. 특히 지속된 경기침체, 미중 무역분쟁, 일본 경제보복 조치 등으로 국가경제가 흔들리는 요즘과 같은 위기 속에서는 더욱 그렇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실제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분양가 상한제가 발표된 직후 "(분양가 상한제는) 적용요건을 완화하는 1단계 조치와 이를 적용하는 2단계 조치가 있고, 오늘 발표한 건 적용요건을 완화하는 1단계 제도 개선 조치"라며 "2단계 조치는 부동산 상황이나 경제 상황을 고려해 관계부처 간 별도의 판단이 필요하다"고 선을 그었다. 분양가 상한제 관련 시행령 개정과 진짜 시행은 별개라는 것이다.

홍 부총리가 기재부와 국토부 간 이견이 있음을 공개석상에서 거론한 이유는 분양가 상한제로 인해 부동산 시장에 과잉 유동성이 쏠릴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대내외 경제 불투명성 심화에 이어 기준금리 인하로 시중에 넘쳐나고 있는 유동성이 부동산이나 금과 같은 실물자산으로 흘러가고 있는데, 분양가 상한제까지 시행되면 '로또 아파트' 부작용과 맞물려 둑까지 터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유동성 위기 가능성을 감수하더라도 집값이 확실하게 잡힐지 미지수라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전국 주택 재고는 1712만 호, 주택 준공 물량은 57만 호로 집계됐다. 이중 서울 지역 주택 재고는 287만 호, 주택 준공 물량은 7만 호다. 재고 시장 대비 신규 공급물량이 2~3%에 불과한 것이다. 분양가 상한제는 신규 공급물량의 가격(분양가)을 통제하는 것인데, 전체의 2~3%를 통제해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긴 쉽지 않을 전망이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윤관석 등 민주당 의원들이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당정협의에 참석하고 있다 ⓒ 뉴시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윤관석 등 민주당 의원들이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당정협의에 참석하고 있다 ⓒ 뉴시스

분양가 상한제에 대한 마지막 우려의 목소리는 제도가 시행될 시 집권여당의 차기 총선용 카드로 악용될 여지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분양가 상한제는 일종의 최고가격제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인위적으로 가격을 조정하는 내용이다. 부동산 시장의 과열로 많은 국민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기에 내놓은 방안이나, 시장경제에 역행하는 규제임은 분명하다. 특히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돼야 할 가격을 정부가 나서서 조정하는 정책인 만큼, 가장 적극적인 정부 개입으로 볼 수 있다.

때문에 이 같은 강도 높은 정부 개입은 시장에 많은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아무리 불가피한 개입이라도 시장 구성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 그래서 정부 개입 시에는 시장에 충분한 예측가능성을 제시해야 한다. 정부 개입에 따른 영향과 파급효과를 시장 구성원들이 파악할 수 있도록 일정하고,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 하에 정부 개입이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국토부는 분양가 상한제 적용 지역을 기존 '주택가격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의 2배 초과인 지역'에서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지역'으로 고쳤다. 현행 주택법상 투기과열지구는 주택가격 상승률과 물가 상승률, 청약 경쟁률, 주택 보급률 등을 분석해 과열 여부를 살피고, 주택가격의 안정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국토부 장관과 시·도지사가 지정한다. 표면적으로는 객관적인 지정 요건이 제시돼 있지만, 실상은 '고무줄 잣대'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과열 여부를 판단하는 기간이나 기준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정부 마음대로라는 비판까지 나오는 현실이다.

결국 분양가 상한제 적용 지역을 투기과열지구로 정한 것은, 일정한 법이나 객관적·합리적 기준 없이 분양가 상한제 시행 지역을 정부에서 정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될 수 있다. 21대 총선을 불과 8~9개월 가량 앞두고 국민들의 표심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카드를 정부가 손에 쥔 셈이다.

실제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윤관석 의원은 지난 12일 김현미 국토부 장관과 분양가 상한제 관련 비공개 당정협의를 마친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시행령 개정안이 마련되는 오는 10월께 적용 시기와 지역 등을 놓고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상황을 면밀히 파악해 시장 상황을 보고 당과 협의해 시기와 적용 지역 등을 논의할 시점이 올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 업계의 한 관계자는 "엿장수 마음대로인 투기과열지구가 분양가 상한제 적용 기준이 된다면 과연 어느 공급자가 제대로 사업을 추진하겠으며, 어느 수요자가 마음 놓고 청약을 넣겠는가"라며 "분양가 상한제 적용 지역을 법이 아니라 정부 멋대로 설정한다는 건 결국 총선용 카드로 쓰겠다는 계산이 깔린 게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제대로 객관적인 기준을 세우거나, 아니면 아예 전체 민간택지에 전부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한편, 분양가 상한제는 오는 14일부터 다음달 23일까지 입법예고, 법제처 심사, 국무회의 등을 거쳐 오는 10월께 시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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