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비서관 김정남 “김영삼 정부, 日에 싸우지 않고 이겼다”…‘당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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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비서관 김정남 “김영삼 정부, 日에 싸우지 않고 이겼다”…‘당당’
  • 윤진석 기자
  • 승인 2019.08.14 2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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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교문사회수석, 다산연구소 논평에서 문민정부 소회
도덕적 우위 잃고 경제보복 당하는 文정부 안타까워
YS, 정부차원의 보상 마련하고 日엔 사과 촉구…일침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진석 기자]

김영삼 문민정부는 일본에 당당한 외교력을 발휘하는 한편 동맹국 관계로서의 입지를 확실히 했다고 전직 비서관인 김정남 전 교문사회수석이 평가했다.ⓒ뉴시스
김영삼 문민정부는 일본에 당당한 외교력을 발휘하는 한편 동맹국 관계로서의 입지를 확실히 했다고 전직 비서관인 김정남 전 교문사회수석이 평가했다.ⓒ뉴시스

 

8·15 광복절을 맞아 명분상 우위에 올라서며 한일 관계를 슬기롭게 풀어나간 김영삼(YS) 문민정부 당시의 일화가 조명돼 눈길을 끈다. 14일 YS의 차남 김현철 국민대 특임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 에 아버지의 비서관을 지낸 김정남 전 교문사회수석의 글을 게재했다. 전날(13일) 다산연구소에서 발행하는 ‘다산포럼’  홈페이지에 수록된 ‘일본이 적인가’라는 제목의 칼럼이었다.

해당 글에서 김 전 수석은 최근 악화일로의 한일 관계 관련, “8·15를 맞이하면서 증오와 적대를 내세우기보다,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방법이 있을 수 있고, 싸우되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점을 환기했다.

그는 “일본은 한국 정부가 방치하는 틈을 타고 더욱 치밀하게 준비해온 것 같다”며 “거기에 비하면 우리의 대응은 무능해 보이고 미덥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도덕적 우위를 잃어버린 점을 지적하며 “아베는 징용 문제를 놓고 한국이 협정을 지키지 않아 신뢰가 크게 훼손된 점을 분명히 했다. 앞서 문재인 정부가 박근혜 정부 때 이뤄진 한일 간의 위안부 문제 합의를 파기한 것도 한몫했을 것”이라고 지목했다.

김 전 수석은 그러면서 도덕적 우위에 서며 일본에 일침을 가했던 YS 정부 때를 소회했다. 그에 따르면 문민정부가 들어선 1993년 3월 13일 YS는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일제강점기에 강제동원 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실태조사와 생계 대책을 정부 차원에서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한편으로 YS는 일본 정부를 향해 사과 촉구의 분명한 메시지를 보냈다. 김 전 수석은 “(YS는)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의 진상을 스스로 밝히고 역사와 세계 앞에 사죄하라’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밝혔다”며 “문민정부가 막 출범한 직후라 그 발언에 대한 국내외의 반응은 뜨거웠다”고 말했다. 

김 전 수석은 “그로부터 얼마 뒤 주일 한국대사가 나를 찾아와 자신의 외교관 생활 중 일본 앞에서 일찍이 그렇게 당당해 본 적이 없었노라던 모습이 지금도 새롭다”며 “그에 비하면 한국의 도덕적 우위마저도 잃고, 경제보복까지 당하는 (문재인 정부의) 현실이 안타깝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YS가 전직 대통령 자격으로 와세다 대학에서의 특강 등 일본을 방문할 당시 수행원으로 따라간 경험담도 전했다. 이를 통해 YS가 일본에 으름장을 놓으면서도 동맹국으로서의 입지는 확실히 가져갔다고 밝혔다.

김 전 수석은 “YS는 (와세대 대학 특강의) 청중들 앞에서 ‘나는 일본을 원수라고 생각하며 자랐지만 정치인이 되고 나서야 일본이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공동의 가치를 추구해 나가야 할 이웃이라는 점을 깨달았다고 했다”고 했다.

YS는 2002년 한일월드컵을 양국 역사상 최초로 공동유치한 점을 재임기간 성과 중 하나로 꼽았다는 전언이다. 또 훗날 한일 양국 청년들이 허심탄회하게 손잡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고 기대했다고 김 전 수석은 언급했다. 

이에 따르면 YS는 “내가 죽을 때, 한국의 청년들을 향해 일본의 청년들과 손에 손잡고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진보를 향해 나가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고 했다. 뒤이어 “일본이 지난날의 식민지배와 착취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때 일본은 도덕적 대국으로 거듭날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청년들은 기꺼이 손잡고 미래로, 세계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고 당부했다.

김 전 수석 역시 “나는 한국 민주화 투쟁의 고비 고비마다 일본 시민사회의 양심으로부터의 지지와 협력이 큰 힘이 됐던 것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또 “지금 일본 안에서 일본 정부를 향해 ‘한국이 적인가’를 묻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라며 일본이 적이 아님을 역설적으로 강조했다.

다음은 다산연구소(http://www.edasan.org) 글 전문

일본은 적인가

지난 7월 4일, 일본 정부가 반도체 등의 핵심소재 3가지에 대한 수출규제를 강화한 데 이어 8월 2일에는 한국을 이른바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우대국)에서 제외함으로써 이제 한국과 일본은 사실상 경제전쟁에 돌입한 상태다. 이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바로 그날 “우리는 다시는 일본에게 지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가 앞장서서 국민과 함께 승리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자고 호소했다. 그리고 8월 5일에는 “남북 경제협력으로 평화경제가 실현된다면 단숨에 일본경제를 따라잡을 수 있다”면서 이번 사태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한국이 지원하는 쌀 5만 톤의 수령마저 거부하고 미사일 도발을 거듭하는 북한을 놓고 평화경제는 뜬구름 잡는 얘기처럼 들리지만, 어쨌든 전화위복의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일치단결하여 하나 되어 싸워야 하고, 그 싸움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 그것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방법이 있을 수 있고, 싸우되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며, 험하고 살벌한 모습으로 국민 내부가 분열되는 모습을 보인다면 싸우기 전에 이미 패한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또한 증오와 적대를 내세우기보다는 지면서 이기는 방법도 생각해 볼 일이다. 8·15를 맞이하면서 느끼는 소회다.

잃어버린 도덕적 우위

일본 정부는 한국에 대한 보복 조치를 하게 된 이유를 이리저리 구차하게 돌려 말하더니 8월 6일, 아베는 징용문제를 놓고 한국이 협정을 지키지 않아 양국 간의 신뢰가 크게 훼손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그보다 앞서 문재인 정부가 2015년 12월 박근혜 정부 때 이루어진 한일간의 위안부 문제 합의를 파기한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참에 경제적으로 한국의 기를 꺾어 놓자는 계산이 있을 수 있고, 정치적으로는 아베의 숙원이라 할 헌법개정이라는 정치목표와 연결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요시다 쇼인, 이토 히로부미 등 조선 침략 이데올로기의 맥을 잇고 있는 아베한테 이런 보복을 당하는 것은 아프다. 일본은 한국 정부가 방치하고 있는 틈을 타고 더욱 치밀하게, 정밀타격을 준비해 온 것이 분명해 보인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의 대응은 무능해 보이고 미덥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한일관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내가 느끼고 겪은 한두 가지 경험을 전하고 싶다. 아마도 1993년 1월쯤이었을 것이다. 제14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YS와 재야인사들과의 면담이 63빌딩에서 있었다. 그 자리에서 홍성우 변호사가 그때 막 떠오르기 시작한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정부에 돈을 내서 피해를 보상하라는 것이 어쩐지 마음에 걸린다, 우리도 이만큼 살 만하게 되었으니, 그분들의 생계는 한국정부가 스스로 책임지고, 일본 정부는 다만 그 진실을 밝히고 그 역사적 죄과를 사과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소견을 밝혔다.

YS 문민정부가 들어선 1993년 3월 13일, YS는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한국정부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실태조사와 생계대책을 마련하고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의 진상을 스스로 밝히고 역사와 세계 앞에 사죄하라는 한국정부의 입장을 밝혔다. 문민정부가 막 출범한 직후라 그 발언에 대한 국내외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로부터 얼마 뒤 주일 한국대사가 나를 찾아와 자신의 외교관 생활 중 일본 앞에서 일찍이 그렇게 당당해 본 적이 없었노라던 모습이 지금도 새롭다. 그에 비하면 한국의 도덕적 우위마저도 잃고, 경제보복까지 당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한국청년과 일본청년이 손잡는 날

2008년 아니면 2009년이었을 것이다. YS가 전직 대통령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하게 되었을 때 내가 수행원으로 따라가게 됐다. 도쿄는 물론 오사카와 교토, 나라까지 들렀는데 나이 든 교포들이 때때옷을 차려입고, 전직 대통령과 사진 찍고 자기들이 손수 만든 떡과 잡채와 김치 등을 들고 와서 대접하던 그 따뜻하고 눈물겨운 정경들이 아련하다.

그때 와세다 대학에서 YS의 특강연설이 있었다. YS는 청중들 앞에서 “나는 일본을 원수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내가 정치인이 되고 나서야, 일본이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공동의 가치를 추구해 나가야 할 이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대통령 재임 중 잘한 것 하나 있다면 나는 2002년 한일월드컵 공동유치를 꼽고 싶다. 한국과 일본의 2천 년 역사에서 이룩한 최초의 협력이 2002년 한일월드컵이었다. 내가 죽을 때 한국의 청년들을 향해 우리들의 이웃인 일본의 청년들과 손에 손잡고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진보를 향해 나가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일본이 지난날의 식민지배와 착취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때 일본은 도덕적 대국으로 거듭날 것이며 한국과 일본의 청년들은 기꺼이 손잡고 미래로, 세계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나는 한국 민주화 투쟁의 고비고비마다 일본 시민사회의 양심으로부터의 지지와 협력이 큰 힘이 되었던 것을 잊을 수가 없다. 지금 일본 안에서 일본 정부를 향해 “한국이 적인가”를 묻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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