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청] 오세훈 시장직 사퇴, 보수 몰락 시발점 된 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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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 오세훈 시장직 사퇴, 보수 몰락 시발점 된 그 곳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9.08.16 17: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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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사퇴-박원순 당선-홍준표 체제 몰락…개혁보수 세력 무너져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한나라당 CI. ⓒ한나라당
한나라당 CI. ⓒ한나라당

한나라당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정당 중 하나였다. ‘신이 내린 정당’, ‘나라를 팔아먹어도 득표율 40%를 받을 정당’이라는 비아냥거림 속에는, 그만큼 한나라당이 넓고도 확고한 지지 기반을 갖추고 있었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실제로 한나라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으로 역풍을 맞았던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조차 121석을 획득하며 자신들의 실력을 증명하기도 했다.

이처럼 한나라당이 40%를 상회하는 지지층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중도보수에서 극우보수까지 전부 아우를 수 있는 폭넓은 스펙트럼 덕분이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야 한다’며 군부독재 세력과 손을 잡고 민주자유당을 만든 YS(김영삼 전 대통령)는, 자신의 공언대로 민정계와 공화계를 몰아내고 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꿨다. 그리고 소위 ‘YS 키즈’로 불리는 개혁 세력을 대거 등용했다.

그러나 당시 대권에 도전하던 이회창 전 국무총리는 당내 세력 없이 대선 후보로 선출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리고 뒤로 물러나 절치부심(切齒腐心)하던 민정계와 의기투합(意氣投合), 다시 군부독재 세력을 전면으로 끌어낸다. 그러고는 IMF 외환위기로 지지율이 폭락한 YS와 완전히 갈라서며 당명을 한나라당으로 교체했다. 이로써 한나라당은 민주계를 따르는 개혁보수와 민정계 중심의 극우보수가 공존(共存)하는 정당이 된다.

개혁보수와 극우보수의 공존은 친이(親李)와 친박(親朴), 친박과 비박(非朴)으로 이어진 오랜 계파 갈등의 씨앗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개혁보수와 극우보수가 한나라당이라는 외피(外皮)에 싸여 있었다는 점은 보수 지지자들이 안심하고 한나라당에 표를 던지게 하는 유인(誘因)이기도 했다. 끊임없는 내분 속에서도, 한나라당이 단일대오를 유지하면서 ‘신이 내린 정당’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이유다.

보수의 몰락은 이 미묘한 균형이 깨지면서 시작됐다. 그 시발점(始發點)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서울시장 사퇴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오 전 시장은 2010년 제5회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한명숙 후보를 접전 끝에 꺾고 민선(民選) 첫 재선(再選) 서울시장이 됐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오 전 시장 앞에는 가시밭길이 펼쳐져 있었다. 서울시의회 106석 중 무려 79석이 야당인 민주당의 차지였던 까닭이다.

오 전 시장과 시의회의 갈등은 지방선거가 직후부터 불거졌다. 2010년 8월 24일, 시의회가 초·중·고교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내용의 ‘서울특별시 학교급식 등 지원에 관한 조례 일부 개정 조례안’을 발의하자 오 전 시장이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오 전 시장은 ‘학교 안전이 무상급식보다 시급하다’며 반대했지만, 시의회는 석 달여 후인 12월 1일 무상급식 조례를 강행 처리하며 물러설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사퇴는 보수 몰락의 단초가 됐다. ⓒ시사오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사퇴는 보수 몰락의 단초가 됐다. ⓒ시사오늘

이에 오 전 시장은 이틀 후 기자회견을 열고 무상급식을 ‘복지의 탈을 쓴 망국적 포퓰리즘’으로 규정하면서 “서울시장의 모든 집행권을 행사해 저지할 것”이라고 맞섰다. 하지만 허광태 시의회 의장은 2011년 1월 6일 오 전 시장이 공포를 거부했던 ‘친환경 무상급식 조례안’을 직권 공포했다. 이러자 오 전 시장은 마지막 ‘승부수’를 띄운다. 이것이 유명한 ‘무상급식 주민투표’다.

당연히 민주당은 주민투표에 반대했다. 조례 통과로 이미 무상급식이 시행 중인 상황에서 주민투표를 하면 혼란만 가중될 것이라는 논리였다. 그러나 ‘복지포퓰리즘추방 국민운동본부’는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를 위한 서명운동에 착수, 80만 명 이상의 서명을 받아 2011년 6월 16일 서울시에 주민투표를 청구했다. 그리고 오 전 시장은 투표 사흘 전인 8월 21일, “주민투표 결과에 시장직을 걸겠다”는 의사를 표명한다.

알려진 대로, 8월 24일 실시된 무상급식 주민투표의 투표율은 개표 요건(33.3%)에 턱없이 모자란 25.7%에 그쳤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주민투표 거부운동이 벌어진 데다, 한나라당의 지원도 뜨뜻미지근했던 탓이 컸다. 결국 투표 이틀 뒤인 8월 26일, 오 전 시장은 약속대로 서울시장 자리에서 물러난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26일 시장직에서 사퇴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10월26일 보궐선거를 통해 새 서울시장이 선출될 전망이며 정치권에 커다란 파장이 예상된다.
오세훈 시장은 이날 오전 11시 서울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저의 거취로 인한 정치권의 논란과 행정공백을 최소화 하기 위해 즉각적인 사퇴로 저의 책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오 시장은 이어 “과잉복지는 반드시 증세를 가져오거나 미래세대에 무거운 빚을 지운다”며 “사퇴를 계기로 과잉복지에 대한 토론은 더욱 치열하고 심도 있게 전개되길 바란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유권자들이 (과잉복지를) 막지 못하면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선심성 공약이 난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중략)
민선 첫 재선 서울시장인 오 시장은 이번 주민투표에 시장직까지 거는 승부수를 띄웠으나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의 주민투표 거부운동 장벽을 넘지 못하고 고배를 들었다.
서울시는 지난해 6·2 지방선거부터 이달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이어 오는 10월 보궐선거까지 1년 반 만에 3번의 선거·투표를 치르게 됐다.
오는 10월 26일 치러질 전망인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여야 가운데 어느 쪽에서 새 시장직을 맡느냐에 따라 내년 4월 총선과 12월 대선에도 커다란 파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2011년 8월 26일자 <연합뉴스> ‘오세훈 “주민투표 책임, 시장직 사퇴”’

이때까지만 해도, 오 전 시장의 사퇴가 어떤 나비효과를 가져올 것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그의 사퇴는 보수 몰락의 단초(端初)가 됐다. 오 전 시장의 사퇴로 열린 보궐선거에 안철수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유력 후보로 떠오르고, 안 원장이 박원순 당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지지하면서 서울시장이 교체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서울시장 보궐선거 과정에서 일어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공격사건으로 선거부정 의혹이 불거지면서, 홍준표 체제는 붕괴하고 만다.

무엇보다 당시 한나라당 지도부가 당대표 홍준표·최고위원 유승민·나경원·원희룡·남경필로 구성돼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오 전 시장 사퇴로 촉발된 홍준표 체제 붕괴는 사실상 개혁보수 진영에 ‘핵폭탄’이 떨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박성민 정치컨설팅민 대표는 이 사건을 다음과 같이 평한다.

“2011년 10월 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장외 우량주인 박원순과 안철수를 야당의 전략적 자산으로 편입시켰다. 선거 패배는 홍준표 체제를 붕괴시키고 박근혜 비대위를 불러왔다. 홍준표·유승민·나경원·원희룡·남경필로 짜인 화려한 라인업은 (총선을) 뛰어보지도 못하고 무너졌다. 그 순간 친이계는 끝났다. 오세훈의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 자신과 당과 보수가 몰락하는 ‘트리거’가 되었다.”

개혁보수의 몰락은 ‘박근혜’라는 군부독재의 세력을 불러내는 방아쇠로 작용했다. 그리고 모두가 아는 것처럼,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전무(全無)했고 후무(後無)해야 할 사건으로 보수를 빠져나오기 힘든 수렁에 빠뜨렸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오 전 시장이 서울시청에서 일으킨 작은 날갯짓이 대한민국 정치 지형 전체를 바꾼 셈이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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