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우리 가족 여름 피서지, 지리산 뱀사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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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우리 가족 여름 피서지, 지리산 뱀사골에서
  • 최기영 피알비즈 본부장
  • 승인 2019.08.18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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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영의 山戰酒戰〉 깊어진 계곡의 운치만큼, 추억은 깊어간다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최기영 피알비즈 본부장)

지리산 뱀사골 계곡은 정말 크고 웅장하다. 계곡의 물은 절대 마르지 않는다 ⓒ 최기영
지리산 뱀사골 계곡은 정말 크고 웅장하다. 계곡의 물은 절대 마르지 않는다 ⓒ 최기영

우리 민족의 밸런타인데이는 음력 7월 7일이다. 견우직녀가 만나는 날로 잘 알려진 칠월칠석날은 지리산 뱀사골의 유래와도 연관이 있다. 

지리산에는 송림사라는 절이 있었다. 송림사에서는 칠월칠석이 되면 가족 모두의 무병장수를 기원하고 자손들이 대대손손 창성하게 해달라는 공양을 올렸다. 그런데 이 절의 주지 스님들은 칠월칠석 불공을 드리던 중 해마다 매번 어디론가 사라졌다. 사람들은 주지 스님이 부처가 돼 승천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서산대사는 이 소식을 듣고 뭔가 미심쩍었다. 돌아오는 칠월 칠석, 그는 불공을 드릴 주지 스님의 장삼 속에 비상(극약) 주머니를 달아 주고 예년과 똑같이 독경하도록 했다. 새벽이 되자 요동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큰 뱀이 송림사에 왔다가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서산대사가 뱀을 쫓아가 보니 거대한 이무기가 그 비상을 먹고 죽어있는 것이다. 뱀의 배를 갈라보니 그 속에는 죽은 주지 스님도 있었다. 그동안 없어졌던 주지 스님들은 부처가 된 것이 아니라 그 이무기를 위한 제물이 된 것이다. 이후 뱀이 죽었던 이곳을 뱀사골이라 불렀다고 한다.

노고단에서 출발해 지리산 종주 길을 걷다 보면 삼도봉을 지나 토끼봉이 나오기 전 왼쪽으로 화개재로 가는 이정표가 나온다. 그곳으로 길을 잡으면 남원시 산내면이 나오는데 40리에 가까운 긴 계곡 길을 따라 내려와야 한다. 그 길고도 웅장한 계곡이 바로 뱀사골이다. 가을 단풍산행 길로도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코스다. 그리고 우리 가족들의 단골 피서지이기도 하다. 

시원한 계곡물에서 짓궂은 물장난을 하며 더위를 날리는 가족들 ⓒ 최기영
시원한 계곡물에서 짓궂은 물장난을 하며 더위를 날리는 가족들 ⓒ 최기영

여름 피서지를 고르기는 쉽지 않다. 어딜 가든 사람도 많고, 피서지의 바가지요금도 부담된다. 산을 좋아하는 나는 가족들과의 여름 휴가철 피서지로, 바다보다는 늘 산 계곡을 선호한다. 이래저래 인연이 돼 뱀사골에는 잘 아는 단골 민박집도 있고 해서 동생네와 날을 맞춰 부모님을 모시고 뱀사골로 들어갔다.

지리산 계곡은 어디든 깊고도 깊다. 요즘이야 길이 잘 나 있어 그 입구까지도 차를 댈 수 있지만, 옛날 뱀사골로 가는 여정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의 물은 절대 마르지 않는다. 장엄한 바위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는 너무도 시원스럽다. 뱀사골에 도착하자 아이들은 옷을 갈아입더니 튜브를 챙겨 바로 계곡 물속으로 들어갔다. 딸아이와 조카들은 오랜만의 해우를 짓궂은 물장난으로 대신하는 것 같았다. 동생 내외와 어머니도 아이들과 함께 차가운 뱀사골의 계곡물로 더위를 날리고 있었다. 

일찍 해가 저무는 지리산골 민박집 식당에서는 우리가 먹을 지리산 흑돼지 삼겹살이 익어가고 있었다. 지리산의 명물 흑돼지 맛이 원래 그리 좋은 건지 아니면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모여 먹는 저녁 자리여서 그리도 맛이 있던 건지…. 그렇게 지리산 뱀사골의 밤도 깊어갔다. 

지리산 와운마을의 천년송의 모습이다. 크고 위엄있는 모습이 신비롭기까지 하다 ⓒ 최기영
지리산 와운마을의 천년송의 모습이다. 크고 위엄있는 모습이 신비롭기까지 하다 ⓒ 최기영

아침 일찍 일어나니 밖에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다른 식구들보다 일찍 잠에서 깬 어머니와 나는 함께 산책을 나갔다. 산내면 민박촌에서 약 3km 정도를 걸어 올라가면 와운마을이라는 곳이 있다. 구름도 이곳을 지날 때 힘에 겨워 누워 간다는 뜻에서 와운(臥雲)이라는 이름이 붙은 첩첩산중의 마을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천년 된 명품 소나무 두 그루가 있다. 마을 사람들은 그 천년송을 각각 할아버지와 할머니라고 부른다. 와운마을까지는 목재 데크가 설치돼 있어서 가벼운 옷차림과 편안한 샌들을 신고도 계곡의 절경을 안전하게 감상하며 걸을 수 있다. 천년송에 도착하자 어머니는 합장하며 할아버지 할머니 소나무에 인사를 하고 소원을 빌었다. 지리산 천년을 지켜봐 온 천년송은 어찌나 크고 신비스러운지 보는 사람마다 그 위엄에 눌려 절로 고개를 숙일 정도다. 

뱀사골 민박촌 인근에는 지리산 탐방안내소가 있다. 1층에는 아름다운 지리산의 생태와 문화를 보여주는 다양한 것들이 전시돼 있고, 2층은 빨치산 토벌 전적 기념관이다. 

나무숲과 계곡 이곳저곳에서 조잘거리는 새들의 소리가 한없이 평화로운 뱀사골 계곡은 한때 큰 전쟁터였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이 이 깊고 깊은 지리산 계곡으로 들어와 서로를 의지하며 살았다. 지리산 밖에는 그들이 그리도 보고 싶어 했던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세상과 타협하며 살면 될 텐데 그들은 왜 이곳까지 들어와 그렇게도 처절한 죽음을 맞았을까? 지리산이 세상의 마지막이었던 그들의 숨겨진 사연은 기념관 어디에도 없었다. 오로지 승자들이 늘어놓는 영웅담만이 가득했다. 그들의 한 많은 사연은 오로지 지리산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할머니 천년송에 합장하며 인사를 하는 어머니 ⓒ 최기영
할머니 천년송에 합장하며 인사를 하는 어머니 ⓒ 최기영

다음날 어머니는 서울로 출발하는 나에게 미리 만들어 챙겨 놓으신 반찬을 한가득 건네며 술 담배 줄이라고, 제때 밥 좀 먹고 다니라고, 운전 좀 급하게 하지 말라고 등등 장황한 작별 인사가 이어졌고 나는 서둘러 차 문을 닫고 서울로 향했다. 그렇지 않아도 시원했던 계곡은 비가 내린 뒤 더없이 상쾌했다. 그리고 더욱더 깊어진 계곡의 운치와 가족들과의 추억을 뒤로하고 나는 뱀사골을 빠져나왔다.

최기영은…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前 우림건설·경동나비엔 홍보팀장

現 피알비즈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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