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 원내대표 경선, 분위기 바꾼 김재원의 한 마디

<현장에서>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혼절하기도 했다” 고발 경험 회고하며 공감대 형성…‘경쟁자’ 이장우 의원에게 인사 받기도

2019-12-09     정진호 기자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이 김재원 의원을 선택한 게 ‘신의 한 수’였던 것 같네요.”

9일 오전 국회 본관. 심재철 의원과 김재원 의원이 자유한국당 신임 원내대표·정책위의장으로 선출된 이 자리에서, 한국당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김재원 의원의 이름을 언급했다. 김 의원의 정견 발표가 동료 의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이유였다.

심재철 의원의 러닝메이트로 나선 김 의원은 이날 정견 발표에서 “2년 전 이맘때, 제 딸이 수능시험을 치는 날 저는 서울중앙지검에 가서 조사를 받았다. 수없이 이어지는 조사와 재판을 받으며 영혼이 탈탈 털리는 기분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혼절하기도 했다. 노끈을 욕실에 넣어두고 (극단적인 선택을 할 때는) 망설이지 않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재직하던 당시 제20대 총선 여론조사 비용 명목으로 이병호 전 국가정보원장으로부터 특수활동비 5억 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검찰 조사를 받은 바 있다.

김 의원의 말을 들은 동료 의원들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60명의 의원들이 패스트트랙 지정 과정에서 발생한 물리적 충돌로 고발당한 상황에서, 자신이 ‘마음고생’을 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다.

이러자 김 의원은 “투명인간처럼 살면서 한 식당에 들어갔는데 낙서를 발견했다. ‘내가 내 편이 돼 주지 않는데 누가 내 편이 돼 주겠는가’라는 낙서를 보고 깨달았다”며 “내가 내 편이 돼 주지 않으니 아무도 내 편이 돼 주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서 “우리가 쇄신하고 반성한다면서, 우리가 우리에게 회초리만 드니 국민은 우리 스스로 서로에게 매질하는 것으로 본다. 혁신하고 쇄신하더라도 우리는 스스로를 존중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도 우리말을 존중한다”며 “결국 국민들 신뢰를 얻어야 하는 일 아니냐”고 호소했다.

원고도 거의 보지 않은 채 의원들을 향해서 읊조리듯 말하는 김 의원의 연설에 몇몇 기자들의 입에서도 탄성이 나왔다. 정견 발표가 끝난 후에는 ‘경쟁자’ 이장우 의원이 김 의원을 향해 “정말 잘 하셨습니다. 존경합니다”라고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의원총회 직후 <시사오늘>과 만난 한국당 관계자들은 “나도 울컥했다”면서 “모르긴 몰라도 김 의원이 20표는 움직였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의원들의 고민이 뭔지를 정확히 아는 것 같다”는 평가도 뒤따랐다. 김 의원의 한 마디가 장내 분위기를 바꾼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