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악포럼] 정범구 “‘포스트 메르켈’은 녹색당…탄소중립 빨라질 것”

〈강의실에서 만난 정치인(179)〉 정범구 전 주독일대한민국대사관 대사

2021-05-12     조서영 기자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조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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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정치가 한국에서 주목받은 건 2019년이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독일식 정당명부제가 여러 차례 소환됐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석패율제를 도입하지 않고, 비례대표 30석에 50% 상한선(캡)을 설정하면서, 반쪽짜리 법안에 그쳤다. 이에 더해 거대 양당이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과 미래한국당을 각각 만들면서, 제도의 취지는 완벽히 훼손됐다.

그 결과가 지금의 제21대 국회다. 독일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선거 개혁의 취지는 높은 불비례성에 있었다. 즉 정당별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해, 사표를 방지하고자 했다. 뿐만 아니라 이는 다양성을 위한 제도였다. 일종의 패자부활전인 석패율제를 도입하면, 호남에서 보수 정치인이, 영남에서 진보 정치인이 나올 수 있었다. 아울러 봉쇄조항인 최소 정당 득표율 3%를 완화하거나 삭제할 경우, 다양한 소수 정당이 원내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기회는 정치권에 의해 산산조각 났다.

그렇다면 어떻게 독일은 꿈같은 제도 도입이 가능했을까. 그리고 우리 정치가 배울 점은 무엇일까. 정범구 전 주독일대한민국대사관 대사는 이를 한 마디로 ‘연정’으로 요약했다. <시사오늘>은 11일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북악포럼에서 ‘연정(Koalition)의 예술-독일 정치를 말한다’는 주제로 강연을 펼친 정 전 대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봤다.

 

독일 정치의 3가지 키워드


정범구 전 대사는 독일 정치를 이해하기 위한 3가지 키워드로 △연방제 △의원내각제 △연정을 꼽았다.

한국은 중앙 정부와 17개의 광역지방자치단체로 구성돼있다. 주민들이 직접 지역 대표를 뽑아 지방자치제도를 실현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연방제도와는 다르다. 연방제는 중앙 정부와 각 주에 권력을 동등하게 분배한다.

“독일은 8개의 주로 구성돼있습니다. 주마다 별도의 헌법이 존재하죠. 중앙 정부가 외교, 국방, 조세 등을 담당한다면, 그 외 나머지 대부분의 행정은 연방 주에서 관할합니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19로 연방제의 문제점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코로나 대응의 1차적 책임과 권한은 주에 있습니다. 따라서 주마다 상이한 대응책을 내놓았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주는 10시부터 통금을 실시했지만, 통금이 없는 주도 있었습니다. 이에 메르켈 총리는 8개 주의 대표를 만나 각기 다른 대응을 조정하면서, 논의 단계가 길어졌습니다. 연방제는 독일 민주주의의 자랑이지만, 동시에 신속한 결정을 요구하는 재난 위기 때는 결정이 늦어지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제를 채택했지만, 대부분의 유럽 국가는 의원내각제를 도입했다. 독일 역시 그중 하나로, 의원내각제 국가다.

“우리는 대통령을 뽑고, 대통령이 국무총리를 임명하는 형태입니다. 그러나 의원내각제는 총리가 권한을 가지고 있으나, 국민이 직접 총리를 뽑지 않습니다. 내각제는 대통령 선거도 총리 선거도 아닌, 의회 선거만이 있습니다. 정당에 한 표, 지역구에 한 표 찍으면 득표율에 따라 의회가 구성됩니다. 여기서 과반수를 차지하는 정당이 총리를 냅니다. 그러나 1949년 건국 이후 그 어느 정당도 원내 과반수를 차지한 적이 없습니다.

이는 독일이 나치를 겪었기 때문입니다. 히틀러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지 않았습니다. 선거를 통해 절대 다수 정당이 돼 합법적으로 독재를 했습니다. 나치의 악몽을 기억하는 독일 국민들은 어느 정당에도 과반의 표를 준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독일은 다당제 형태를 띱니다.”

독일의 주요 정당은 7개다. △기독교민주연합(기민당·CDU) △사회민주당(사민당·SPD) △녹색당 △자유민주당(자민당·FDP) △좌파당 △독일대안당(AfD) △기독교사회연합(기사당·CSU)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가운데 그 어느 정당도 과반이 되지 않으면 단독 집권이 불가능하다. 이에 다른 정당과의 연합을 통해 과반을 확보해야만 총리를 낼 수 있다. 독일의 연정이 자연스러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독일은 선거가 끝나자마자 총리가 결정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기민당이 35%, 사민당이 15%로 둘이 합치면 50%로 정권을 잡을 수 있다고 해봅시다. 하지만 정권을 잡기 위해 당의 정체성까지 버릴 수는 없습니다. 가령 최저임금 문제를 두고 두 정당은 첨예하게 논쟁합니다. 기민당은 기업의 입장을 대변하고, 사민당은 노동자의 지지를 받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연정은 다른 정당과의 끊임없는 접촉과 치열한 협상의 줄다리기 끝에 이뤄집니다.

연정을 통해 형성됐기 때문에 행정부 역시 나눠 갖게 됩니다. 기민당에서 총리와 함께 국방부장관을 가지면, 사민당에서는 외교부장관 등을 갖는 식입니다. 나눠진 부처의 노선은 각 정당의 방향을 따르게 됩니다. 아울러 연방제이기 때문에 기민당과 사민당의 연정으로 중앙 정부가 이뤄지더라도, 각 주의 대표는 연정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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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정 전 대사는 ‘포스트 메르켈’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독일은 올해 9월 총선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메르켈 총리는 다음 선거 불출마 및 정계 은퇴를 선언한 바 있다. 정 전 대사는 포스트 메르켈은 80년생 녹색당의 안나레나 베어보크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만약 녹색당 출신 젊은 여성 총리가 당선된다면, 독일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새 바람이 불 것입니다. 독일 헌법재판소는 2050년 탄소 제로에 대해 위헌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미래 세대에 부담을 전가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였습니다. 이에 독일은 2040년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녹색당에서 총리가 나오면 지금보다 훨씬 속도가 빨라질 것입니다. 우리 정치도 이러한 흐름을 무시할 수 없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