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필담] ‘속 시원한’ 리더십, 정말 좋은 걸까

효율성과 민주주의는 양립 어려워…효율성에 집착하는 리더십 경계해야

2021-10-09     정진호 기자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요즘 대세는 ‘속 시원한 리더십’인 것 같습니다. 여야 대선주자들에 대한 선호도를 보면 그렇습니다. ‘본선 직행’ 9부 능선을 넘은 것으로 평가받는 이재명 경기지사는 ‘사이다 리더십’으로 유명한 정치인이고, 야권 대선 주자 ‘2강’ 중 한 명인 홍준표 의원은 그 스스로를 ‘홍카콜라’로 명명(命名)합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역시 기존의 정치인들에게서 볼 수 있는 ‘정치적 언어’와는 거리가 있는 인물입니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정도를 제외하면, 여야 유력 대선주자 가운데 ‘부드럽고 타협적인 리더십’을 내세우는 후보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바야흐로 ‘스트롱맨(strongman)’의 시대입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우리 정치에서 ‘스트롱맨’이 득세하고 있는 이유를 ‘고착화된 저성장 구조’와 ‘정치적 양극화’로 분석합니다. 저성장 구조로 인해 ‘화끈한 변화’를 원하게 된 사람들, 그리고 양극화된 정치 지형에서 상대 진영을 ‘절멸(絕滅)’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강한 리더십’을 요구하고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런 ‘속 시원한’ 리더십이 정말 ‘좋은 것’인지는 의문입니다. 본질적으로 민주주의는 지독히도 비효율적인 체제입니다. 국가의 주권을 국민이 갖는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아무리 작은 목소리라도 무시당해서는 안 되므로, 최후의 한 사람까지 설득하기 위해 대화와 토론을 이어가야 하는 까닭입니다.

이러다 보니 민주주의는 비효율적이라는 치명적인 단점에도 불구하고, 천부인권(天賦人權)을 갖고 태어난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을 존중하는 체제라는 논리적 정합성 때문에 보편타당성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요컨대, 민주주의란 말 그대로 ‘모든 사람’을 존중하기 위해 비효율성을 용인하는 체제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탄산 리더십’은 이런 민주주의 원칙에 위협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속 시원하게 국정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반대를 눌러야 하고, 상대 진영의 비판은 무시해야 하는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논리 필연적으로 효율성을 강조하는 속 시원한 리더십과 민주주의가 양립하기는 어렵습니다.

리더가 ‘우리 편’일 때는 속 시원한 리더십이 최선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특정 사안에 대한 생각이 리더와 다를 경우, 내 목소리가 깡그리 무시될 수도 있다는 의미와도 같습니다. 조금은 답답하더라도, 차분하게 대화하고 토론해서 ‘모두와 함께 가는’ 리더십을 기대하는 건 기자만의 바람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