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통합 리더십’ 추구하는 윤석열의 착각

한 바구니에 넣는다고 통합 아냐…갈등 조정이 진정한 통합

2021-12-04     정진호 기자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당내

차기 대선의 시대정신은 ‘국민통합’이라고들 한다. 남성과 여성, 정규직과 비정규직, 유주택자와 무주택자 등으로 나뉘어 반목했던 지난 4년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리라. 다음 대통령은 성별로, 이념으로, 재산으로 나뉘어 갈등했던 국민들을 통합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국민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끊임없이 ‘인물’에 욕심을 내는 것도 이런 이유로 보인다. 당내 경선 과정에서부터 윤 후보는 ‘호남 출신’ 정치인들인 김경진 대외협력특보, 김영환 인재영입위원장 등을 합류시키며 지역의 벽을 넘는 데 공을 들였다.

후보가 된 후에는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과 민주당 대표였던 김한길 전 대표를 영입해 ‘이념의 강’도 건넜다. 또 이수정 경기대 교수 영입으로 여성들의 마음을 얻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하지만 과연 윤 후보가 ‘제대로 된’ 통합 행보를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성별, 이념, 지역, 연령 등에 상관없이 가능한 많은 사람들을 캠프에 끌어들이고 있지만, 이들의 ‘화학적 결합’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재료를 모아 한 냄비에 집어넣기만 할 뿐, 구성원들을 어떻게 조화시켜 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지에 대한 로드맵은 눈에 띄지 않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준석 대표와의 갈등이다. 윤 후보는 국민의힘 입당 직후부터 이 대표를 ‘패싱’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았다. 그러나 이 대표가 ‘당무 거부’라는 카드를 꺼내들기 전까지, 윤 후보가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당내에서는 파열음이 끊이지 않는데, 윤 후보는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방관하는 모습이었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 영입도 마찬가지다. 윤 후보는 이 대표의 반대에도 이 교수 영입을 밀어붙였다.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여성·아동 전문가인 이 교수는 정치권에서 욕심을 낼만한 인물이다. 무한 책임을 져야하는 후보 입장에서, 이 교수 영입이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판단했다면 얼마든지 결단할 수 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윤 후보가 보인 태도다.

윤 후보 말대로 민주 정당에서 여러 목소리가 나오는 건 당연하고, 오히려 권장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갈등이 번지지 않도록 하고, 이견을 조정해 에너지를 한데 모으는 건 리더의 역할이다. 그러나 윤 후보는 이 대표를 충분히 설득하지도, 영입된 이 교수가 당에 녹아들게 돕지도 못했다.

그 결과 이 대표는 당무를 거부하고 지방으로 내려갔고, 이 교수는 ‘갈등의 원흉’ 취급을 받으며 붕 뜬 상태가 됐다. 이 대표의 행동이 부적절한 것과는 별개로, 구성원들 사이의 갈등을 조정해야 하는 윤 후보가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가 ‘편 가르기’를 한다고 비판 받았던 건 ‘내 편 아니면 적’이라는 태도 때문이었다. 이를 지켜본 윤 후보는 아마도 ‘내 편 네 편 가리지 않고 한 바구니에 담으면 통합’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국민 한 명 한 명이 주권자인 민주주의 사회에서, 진짜 통합은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고 대화하면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이다. 그것이 대통령이 가져야 할 ‘진짜’ 통합 리더십이다.

하지만 윤 후보는 사람을 모아놓기만 할 뿐, 구성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의 조정에는 무관심해 보인다. 이러면 이 대표 한 명 설득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세대 갈등을 풀어내겠다는 것인지, 이 교수 한 명 당에 담아내지 못하면서 어떻게 젠더 갈등을 해결하겠다는 것인지 국민들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윤 후보가 이 질문에 정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지금의 지지율 하락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