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텔링] TV토론은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을까

TV토론은 후보 선택에 큰 영향 주지 못한다는 게 정설…부동층 많은 이번 선거는 예외일까

2022-01-17     정진호 기자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이달 중 TV토론에서 맞붙게 됐습니다. 양당의 양자 토론 실무협상단은 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회의를 열고 두 후보 간 설 연휴 전 양자 TV토론 개최에 합의했습니다. 두 사람이 TV토론에서 만나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양강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두 사람의 첫 맞대결에, 양측 캠프의 긴장감도 고조되고 있습니다. TV토론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최고조에 달한 데다, 개최 시기상 ‘설 연휴 밥상머리 민심’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일각에서는 ‘판’을 뒤집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됩니다.

그렇다면 이번 TV토론은 어느 정도 파급력이 있을까요. 기본적으로 학자들은 ‘결정적인 변수’가 되지는 않는다는 데 동의합니다. 2019년 하버드경영대학원 연구진이 주요 선진국에서 치러진 56차례의 TV토론을 분석한 결과, TV토론과 유권자들의 선택 사이에는 큰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미국의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가 1988년부터 2016년까지 치러진 미국 대선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TV토론 이후에 후보를 결정했다는 응답은 10% 안팎에 그쳤습니다. 2009년 경기대 송종길과 한국방송협회 박상호가 발표한 ‘17대 대통령 후보 TV토론이 유권자의 태도변화 및 투표행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를 봐도, TV토론은 태도 변화를 이끌기보다 오히려 기존 태도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TV토론이 선거의 변수가 되지 못하는 건 주 시청층이 이미 후보에 대한 호불호가 뚜렷한 정치 고관여층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TV토론은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주로 시청할 테고, 이들은 일찌감치 지지 후보를 정해뒀을 공산이 큽니다. 이러다 보니 토론에서 상대 후보가 더 뛰어난 모습을 보이더라도 ‘말만 잘하는 상대 후보는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식의 반응을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실제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와 김민석 새천년민주당 후보가 맞붙었던 2002년 서울시장 선거 당시 김민석 후보는 TV토론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압승’을 거뒀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도리어 지지율 면에서는 손해를 봤습니다.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가 대결한 2016년 미국 대선 때도 언론들은 일제히 클린턴을 토론 승자로 꼽았으나, 대선 결과는 트럼프의 승리였습니다. TV토론과 지지율 사이에는 큰 연관성이 없다는 방증입니다.

다만 차기 대선에서는 TV토론이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우선 이번 선거는 유독 지지율 변동 폭이 큽니다. 한 달 새 10%포인트가량 앞서던 후보가 역전을 당하고, 또 다시 역전을 이뤄낼 정도로 지지율이 요동칩니다. 이렇게 지지율의 탄력성이 크다는 건 여론이 작은 이슈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의미입니다. 즉, 예전과 달리 TV토론이 선거 당락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뜻이죠.

이런 기류는 여론조사에서도 나타납니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등 여론조사업체 4개사가 지난 10~12일 실시해 13일 발표한 전국지표조사(NBS) 결과에 따르면 ‘지지 후보를 바꿀 수도 있다’는 응답이 29%였습니다. 특히 20대는 55%, 30대는 44%가 지지 후보를 바꿀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TV토론이 어떤 작용을 할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TV토론이 지지율에 큰 영향을 미쳤던 사례도 없지 않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한때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위협할 정도의 지지율을 올렸지만, 토론에서의 ‘MB 아바타’ 발언으로 치명상을 입었습니다. 이재명·윤석열 후보 모두 자신의 지지층에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는 만큼, 토론에서 ‘문제적 발언’이 나온다면 대선 판도가 크게 변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국내외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TV토론과 지지율 사이에는 별다른 상관관계가 없음은 물론, 오히려 확증 편향(confirmatory bias)에 기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이번 대선에 유독 부동층이 많다는 점, 정책 방향에 따라 지지율 이탈과 회귀가 눈에 보일 정도로 여론이 각종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TV토론이 유권자들의 선택에 중요한 변수가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설 명절을 앞두고 열릴 TV토론, 과연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을까요.

* 본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의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http://www.nesdc.go.kr)를 참조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