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착한 사람이 손해 보는 반포3주구, 그리고 삼성

'삼성물산 배후설' 불거진 반포3주구 '전세 맞교환' 사태 선량한 조합원 피해 입는데…국토부·시공사·지자체 '방관'

2022-02-17     박근홍 기자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오늘의 삼성은 글로벌 일류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국민의 사랑과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때로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실망을 안겨드리고 심려를 끼쳐 드리기도 했습니다. 법과 윤리를 엄격하게 준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회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데에도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기술과 제품은 일류라는 찬사를 듣고 있지만 삼성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따갑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저희들의 부족함 때문입니다. 저의 잘못입니다. 사과드립니다."

2020년 5월 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에서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을 열고 경영권 승계 의혹, 무노조 경영, 시민사회와의 불통 등 자신과 삼성그룹을 둘러싼 여러 구설수들에 대해 사과했다. 사법부의 권고로 출범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주문을 받고 총수인 이 부회장이 직접 국민 앞에 머리를 숙인 것이다. 이후 삼성과 이 부회장, 그리고 준법감시위는 준법경영·정도경영의 틀을 구축하는 데에 집중했고, 과거와 달라진 삼성의 행보에 여론의 찬사가 쏟아졌다. 삼성전자, 삼성생명 등 핵심 계열사 7곳도 준법경영·정도경영이 기업문화로 정착되도록 여러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사실상 지주사 역할을 하는 삼성물산은 '클린홍보·클린수주'를 선언하며 불법이 만연했던 건설업계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가장 대표적인 게 반포3주구(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주공1단지 3주구) 수주전이었다. 2020년 5월 30일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그해 상반기 최대어로 꼽힌 반포3주구 재건축사업을 품에 안았다. 수주 과정에서 일부 논란이 불거지긴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삼성물산이 불법·위법한 홍보활동 없이 깔끔하고 깨끗하게, 공정하고 정당하게 조합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호평이 나왔다. 삼성물산이 정비업계 내 클린수주 문화 확산을 주도하고 있다는 극찬까지 들리기도 했다. 이 부회장의 대국민사과 직후 열린 수주전을 성공적으로 치른 삼성물산은 "불법적인 홍보 없이 법과 절차를 준수하며 투명하게 수주했다. 이번 수주로 클린수주 문화가 정착되는 기틀을 마련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 8개월 가량이 흐른 지금 반포3주구에는 선량한 조합원들이 재산권 피해를 입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또한 그 배후에 삼성물산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임차인보증금반환대출

현재 반포3주구에서는 '전세 맞교환'이라는 희한하고도 영악한 방법을 통해 재건축 이주비를 해결한 사례가 뒤늦게 밝혀져 논란이 일고 있다. 2019년 12·16 부동산대책으로 공시가 15억 원 이상 초고가 아파트에 대한 주택담보대출이 원천 금지되면서 철거 주택을 담보로 이주비 대출을 받기 어렵자, 일부 조합원들이 임차인보증금반환대출 제도를 악용한 것이다. 해당 제도 하에선 기존 주택(철거되는 주택)에 임차인이 있을 시 조합이 임차보증금을 임차인에게 우선 지급하고 추후 조합이 임대인인 조합원에게 청구할 수 있는데, 몇몇 조합원들이 서로의 집에 세를 들고, 서로가 받은 대출금으로 이주비를 마련하는 꼼수를 부렸다. A가 B의 집에, B가 C의 집에, C는 A의 집에 각각 세를 들어가는 '전세 삼각교환'이라는 기가 막힌 일도 펼쳐진 것으로 확인됐다. 상대방 조합원이 세입자로 전입하기 위해 일으킨 전세대출도 이주비 조달에 쓰였다. 전세를 시세보다 높게 책정했기에 이주비 조달이 더욱 수월했다. 실제로 반포3주구 전세 거래는 보통 3억~4억 원 가량에 이뤄졌는데, 이들의 등기에는 5억 원에서 많게는 7억8000만 원까지 전세대출이 잡힌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분명 허위거래·허위신고로 시장을 교란하는 행위에 해당하며, 12·16 부동산대책이라는 정부 정책에 반하는 행위다. 또한 다른 조합원들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가짜 전세계약을 통해 조합의 사업비로 사익을 취함으로써 조합 전반의 채무를 증가시킨 셈이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이주비 인센티브'가 운영됐다는 것이다. 반포3주구 조합은 2021년 9월부터 2022년 2월까지 신속하게 이주를 실시한 조합원들에 한해 △등기비용 500만 원 지급 △이주활성화비 최대 2000만 원 지급 △이주비 이자 대납 등 혜택을 제공했는데, 전세 맞교환 꼼수를 부린 조합원 중 상당수가 이주 기간 초인 지난해 9월 이주를 진행해 해당 인센티브를 가져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결국 모두 조합원들이 부담해야 할 비용이다. 법을 잘 지키는 착한 사람들은 손해를 보고,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한 나쁜 사람들은 혜택을 보는 씁쓸한 현실이 반포3주구에서 그대로 연출된 것이다.

반포3주구

선량한 조합원들은 이 같은 꼼수의 배후에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있다고 의혹을 제기한다. 삼성물산 관계자들이 반포3주구 수주전 당시 조합원들에게 전세 맞교환과 임차보증금반환대출로 이주비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공유했고, 일부 조합원들이 이를 그대로 따른 결과라는 것이다. 실제로 본지에 제보된 내용을 살펴보면 자신을 '삼성물산 A책임'이라 소개한 자는 조합원과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이주비 대출이 막혀도 임차보증금반환금 등으로 사업비 책정 후 총회 결의로 1.9% 차입 가능하다", "그런 것(전세계약서)은 꼼수지만 미리 준비해두면 좋다. 세상 규정이 그러니 어쩌겠느냐"라고 언급했다. '삼성물산 B책임'이라는 자는 조합원과의 통화에서 "대비를 해야 한다. 임차보증금반환금을 받을 수 있도록 임대차계약서를 만들라. 래미안 원베일리 조합원들도 다 그런 식으로 임대차계약서를 썼다"며 직접적으로 불법행위를 권유하기도 했다. 래미안 원베일리 조합장 A씨는 외국에 거주하는 조합원이 소유한 빈 주택에 허위로 전세 전입신고를 한 후 약 11억 원 규모 대출을 실행해 경찰 조사를 받은 바 있다.

이 같은 의혹이 사실이라면 결과적으로 삼성물산이 조합원들의 불법행위를 부추기고, 착한 사람이 손해 보는 반포3주구를 만든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리곤 반포3주구 수주전에 클린수주 원칙을 고수했으며, 클린수주 시대를 열었다고 자평한 것이다. 이에 대해 삼성물산 측은 복수의 언론을 통해 "사실무근", "개입한 적이 없다", "관여한 바 없다"고 거듭 부인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조합원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전화를 한 '삼성물산 책임'들은 모두 유령인가. 그게 아니면 삼성물산이 고용한 홍보업체 관계자가 자신을 삼성물산 직원이라고 사칭을 했으며, 삼성물산의 영업활동 지침을 어기고 불법행위를 조장한 것이 되는데, 그렇다면 삼성물산의 책임은 소각되는 것인가. 무작정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하는 게 납득이 가지 않는 이유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 관리감독 의무가 있는 지방자치단체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라며, 처벌 근거가 없다며 수수방관하고 있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반포3주구의 선량한 조합원들은 냉혹한 현실에 마음이 무겁다. 삼성물산은 일등 건설사, 래미안은 일류 아파트라는 찬사를 듣고 있지만 삼성을 바라보는 착한 사람들의 시선은 여전히 따갑다. 이미 엎지러진 물을 어쩌겠냐마는, 아마 이들은 삼성물산에게 "이 모든 것은 저희들의 부족함 때문입니다. 저의 잘못입니다. 사과드립니다"라는 말을 듣고 싶었으리라. 삼성물산의 대응이 못내 아쉬운 대목이다. 관계당국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대출 규제가 더욱 강화된 실정에서 이를 방관한다면 다른 정비사업 현장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속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허위거래 등 불법행위가 사실이라면 엄벌하고, 편법이라면 제도 개선에 착수해야 한다. 아울러 금융권에서는 이들의 대출이 불법적으로 이뤄진 게 확인될 경우 즉각 대출금을 환수하는 등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