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촌주공 사태, ‘공사비’ 아닌 ‘이권개입’이 원인이었나

조합에서 특정 층간차음재 업체 '콕' 집어…"현행법 위반 소지" 홈네트워크·에어컨 실외기 전동루버 등도…조합서 임의교체 의혹 공사비 증액 수용에도…"의혹 해소해야 원활한 사업 추진 가능"

2022-04-20     박근홍 기자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둔촌주공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사업에서 벌어진 공사 전면 중단·유치권 행사라는 국내 정비업계 초유의 사태의 주된 원인이 공사비 증액 문제를 둘러싼 조합과 건설사 간 갈등이 아닌, 일부 조합 집행부의 이권개입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둔촌주공 조합이 시공사업단에 공사비 인상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친 상황이나, 이 같은 이권개입 의혹이 해소되지 않는 이상 사업이 추진 동력을 되찾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20일 본지에 제보된 내용을 종합하면 둔촌주공 조합은 2021년 1월 28일 시공사업단(현대건설·HDC현대산업개발·대우건설·롯데건설 등)에 공문을 보내 '건축자재·마감재 선정 시 조합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식으로 통보했다. 해당 공문 발송 이후 조합은 마감재, 층간차음재, 창호, 홈네트워크 등 업체 선정에 연이어 개입했다는 게 제보자의 주장이다.

실제로 조합은 지난해 3월 "층간소음(완충재 등) 관련 회의 시 기술적 접근과 방향을 정하기 위해 시공사업단의 기술 관련 관계자 회의를 개최하려고 하니 참석해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시공사업단에 보냈고, 이어 그해 7월에는 임시총회를 열고 층간차음재, 홈네트워크 시스템, 창호 등 업체에 대한 교체를 결의했다. 시공사업단에 공사기간, 비용 등에 대한 별도의 설명은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시공사업단은 둔촌주공의 경우 경량충격읍 1급·중량충격음 2급이라는 최고 등급이 적용되는 현장인데, E회사는 층간소음 관련 공인 성능인증서를 보유하지 못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행정규칙인 '공동주택 바닥충격음 차단구조인정 및 관리기준'에선 품질이 인증되지 않은 회사는 납품업체로 선정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조합은 시공사업단, 감리단, 조합, 정비업체, 지방자치단체 등 참여 하에 조합이 원하는 E회사와 시공사업단에서 추천한 회사를 비교하는 현장 시공 시험을 제안하는 등 E회사를 선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 같은 개입이 현행법을 위반할 소지가 다분하다는 데에 있다. 조합의 마감재 등 업체 선정 개입은 서울시가 2011년 제정·발표한 정비사업 공사표준계약서상 '조합 및 조합원의 이권 개입 및 청탁 금지' 조항에 반하는 행위다. 서울시는 지난해 12월 열린 둔촌주공 민원 중재 회의에서 "조합이 시공사의 역할을 침해하는 것 같다. 계약에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업체 선정은 당연히 공사를 수행하는 시공사의 권한"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통상적으로 정비사업 공사에서 건축자재, 마감재 등 업체 선정은 현행법 등에 의거해 설계·공사도급계약과 한국공업규격(KS)에 따라 시공사가 진행하고, 공사계약 형태로 조합에 제안한다. 그러나 둔춘주공 조합은 지속적으로 특정 업체 선정을 요구한 것이다.

앞서 사례로 제시한 층간차음재 사안은 빙산의 일각이다. 조합은 가구, 타일, 위생도기, 수전 등 마감재의 경우 시공사업단과 협의를 거치지 않고 자체적으로 입찰 절차를 진행한 뒤 시공사업단에 일방 통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2019년 12월 총회에서 의결된 공사계약서상 마감재 리스트가 유효함에도 시공사의 영역인 입찰 절차를 침해하면서까지 이를 강행한 것이다. 시공사업단에서 조합이 원하는 업체를 받지 않았을 시에는 자재 승인을 미루는 등 공사 진행을 지연시킨 것으로도 전해진다.

정비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행법에서 정비사업 조합의 업체 선정 개입을 방지하는 건 몇몇 집행부의 욕심으로 인해 합리적인 선택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 조합원들의 피해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라며 "특히 납품업체가 중도에 변경되면 전체 조합원이 부담해야 하는 사업비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둔촌주공 조합의 업체 선정 개입도 일부 집행부의 이권개입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게 제보자의 주장이다. 대표적으로 예를 든 건 홈네트워크다. 당초 둔촌주공 현장의 홈네트워크 납품업체는 2020년 2월 경쟁입찰을 통해 선정된 K회사인데, 2021년 2월 둔촌주공 조합이 조합장 직무대행 체제로 전환된 후부터 통합관제센터 건설을 이유로 S회사를 회의에 참석시키고, 새 조합장이 당선된 뒤인 같은 해 7월 총회에선 홈네트워크 납품사를 S회사로 변경하는 안건까지 결의했다는 것이다.

제보자는 "둔촌주공의 새로운 조합장은 S회사 임원 출신이다. 전(前)직장과의 결탁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업체 변경에 따라 조합원들이 얻을 실익이 전혀 없다. 조합이 밀어주는 S회사의 견적가가 기존 대비 수백억 원 가량 비싸고, 기존 납품업체인 K회사와 법적공방에 들어갈 시 피해보상도 모두 조합이 부담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K회사는 지난 2월 조합 측에 보낸 공문을 통해 "공정한 경쟁 입찰을 통해 획득한 정당한 지위를 박탈당해야 할 이유에 대해 아무런 고지를 받지 못했다. 이는 소위 말하는 갑질의 행태"라며 "이것이 특정 업체에게 시공을 맡기기 위함이라면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현재 K회사는 공사중단으로 40억 원 가량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전해진다. 업체 변경 시에는 손실이 약 200억 원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이에 대해 조합 측은 시공사업단이 홈네트워크 관련 하도급계약을 체결하려면 공사계약서에 의거해 조합의 서면 승낙을 받아야 하는데 이를 승낙받지 않았기에 업체를 변경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시공사업단 측은 홈네트워크 공사는 하도급계약이 아니라 제조위탁설치계약이기에 조합의 주장이 이치에 맞지 않으며, 특히 건설산업기본법에서는 전문공사일 경우 해당 전문건설업자와 하도급계약을 맺은 후 조합에 통지하도록 돼 있어 전문건설업면허를 보유한 K회사에 대해선 조합의 승낙 의무가 없다는 입장이다.

둔촌주공

이밖에도 조합은 에어컨 실외기 전동루버 납품업체 변경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조합은 특정 업체의 낙찰을 유도하고자 시공사업단에 입찰 가이드에 해당 업체가 독점하고 있는 기능을 명시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특정 업체가 독점 보유한 기능을 입찰 가이드에 적으면 불공정 논란이 일 것을 우려한 시공사업단은 이를 거부한 채 입찰을 진행, 보다 단가가 저렴한 다른 회사를 납품업체로 선정했다. 그러자 조합은 지난 3월 납품업체를 변경해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시공사업단에 재차 발송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을 거친 직후인 지난 15일 시공사업단은 둔촌주공 현장의 모든 인력과 장비를 철수하고 공사중단을 선언한 것이다. 둔촌주공 사태의 주된 원인이 공사비가 아닌 조합의 이권개입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둔촌주공 공사중지는 표면적으로는 공사비 인상으로 인한 조합과 시공사업단의 갈등이지만 이면에는 하도급 업체 선정에 개입하려는 조합의 이권개입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일부 집행부의 이익을 위한 납품업체 변경 요구가 길어질수록 전체 조합원이 부담해야 하는 사업비는 점점 불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사태의 배경에 이권개입 문제가 깔린 거라면 공사비 인상 부분에 대해 양측이 합의를 봐도 향후 비슷한 갈등이 또 발생할 것"이라며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사업 재추진 전에 납품업체 문제와 관련해 양측이 깔끔하게 정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최근 둔촌주공 조합은 시공사업단에 공사비 증액을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시공사업단은 관련 소송 취하는 물론, 다른 여러 문제들도 해결돼야 공사를 재개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시공사업단의 한 관계자는 "지금 상황에서는 이에(이권개입 등 의혹에) 대해 마땅히 낼 입장이 없다"고 말했다. 조합 측은 "담당자가 회의에 들어갔다"며 추후 입장을 주겠다고 했으나 답변은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