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하 논쟁, 원희룡이 ‘옳다’ [기자수첩]

현실 고려 않은 선언적 정책은 피해자만 양산…원희룡 의견 귀 기울여야

2022-08-17     정진호 기자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오세훈

2020년. 문재인 정부가 ‘임대차 3법’을 시행했다. 계약갱신청구권과 임대료 인상률 상한을 통해 주거 안정을 꾀하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쫓겨나는 세입자가 속출했다. 전셋값은 폭등했다.

임대인들은 ‘실거주’를 이유로 임차인의 계약갱신을 거절했다. 방법은 여러 가지였다. 직계존속·직계비속의 주소지를 옮기는 건 그나마 양반이었다. 말로는 직접 입주한다고 해놓고 전셋값을 높여 새 임차인을 구하는 일도 빈번했다.

이론적으론 임차인들도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일반 국민들이 소송이라는 번거로운 과정을 선택하긴 어려웠다. 이렇게 ‘임대차 3법’은 수혜자는 없고 피해자만 양산한 ‘실패한 법’이 됐다. 문재인 정부조차 ‘국민께 송구하다’며 고개를 숙였을 정도다.

임대차 3법은 명백한 포퓰리즘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이 법의 맹점을 몰랐을까. 그랬을 리 없다. 야당과 전문가들은 물론 당내에서조차 우려가 컸던 법안이었다. 그럼에도 거칠게 밀어붙인 건 ‘민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부동산 폭등 속에서, 정부여당이 ‘국민을 위해 뭔가 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퍼포먼스 성격이 짙어 보였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반지하 전면 금지’ 발언이 걱정스러운 이유가 여기 있다. 지난 10일 오세훈 서울시장은 최근 폭우로 반지하 가구가 침수 피해를 입자 “지하·반지하 주택은 모든 측면에서 주거 취약 계층을 위협하는 후진적 주거유형으로 이제는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지하를 주거용으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건축법 개정을 정부와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또 반지하 주택 주민들이 공공임대주택으로 이주할 수 있도록 하고, ‘특정 바우처’를 신설해 월 20만 원씩 최장 2년간 주거비를 지원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하지만 반지하 가구가 침수 피해를 입었다고 해서 반지하를 없애자는 건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 세입자들의 주거가 불안정하니 계약갱신청구권을 주고 임대료 인상률을 제한하면 된다는 ‘임대차 3법’과 다르지 않은 접근 방식이다.

사람들이 주거 지역을 결정하는 데는 여러 요인이 작용한다. 집값은 물론, 직장과의 거리나 주거 인프라 등이 모두 고려 요소다. 단순히 살 집이 없어서 반지하를 택했을 수도 있지만, 몸이 좋지 않아 병원과 가까운 곳에 거주해야 하는 사람이 경제적 여유가 없어 반지하에 살기도 한다.

실제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반지하 공공임대주택 거주자 1만8000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9.4%가 다른 지역 공공임대주택으로 이전하도록 지원하겠다는 제의를 거절하겠다고 답했다. 직장과 멀리 떨어진 다른 지역의 공공임대주택보다 반지하를 선호하는 사람이 더 많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 시장의 대책에는 이 같은 고민이 빠져 있다. 없애는 게 우선이고, 주민의 삶은 그 다음에 고려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다 보니 오히려 반지하 주택 주민들이 ‘반지하 제로’ 정책을 더 우려한다. ‘임대차 3법’ 시행 당시를 떠오르게 하는 장면이다.

물론 장기적으로 반지하는 사라져야 할 주거 형태다. 그 무엇도 안전보다 우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임대차 3법’에서 나타났듯, 잘못된 미봉책(彌縫策)은 수혜자 없이 피해자만 양산하는 쪽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12일 “반지하도 사람이 사는 곳이다. 반지하를 없애면 그분들은 어디로 가야 하나”라며 “먼 거리를 이동하기 어려운 노인, 환자, 몸이 불편한 분들이 실제 (반지하에) 많이 살고 있다. 이분들이 현재 생활을 유지하며 이만큼 저렴한 집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반지하 거주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고 주거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책”이라며 “당장 필요한 개보수 지원은 하되 자가 전세 월세 등 처한 환경이 다르기에 집주인을 비롯해 민간이 정부와 함께 움직일 수 있는 실효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오 시장의 반지하 정책이 ‘정치 구호’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원 장관의 제안에 귀를 기울여봐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