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텔링] 황교안의 조어(造語)정치…“품격인가요, 관료습성일까요”

문세먼지·알바천국 등 쉬운 말로 문재인 정부 겨냥…품격 있는 비판 vs. 관료 습성 의견 갈려

2019-03-18     정진호 기자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황교안

흔히 정치를 말의 예술이라고 합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조정하는 활동이 정치고, 그 도구가 말이기 때문일 텐데요. 그래서인지 정치권에서는 말을 잘 ‘다루는’ 인물이 높은 평가를 받아왔죠.

그런데 최근 ‘말’로 주목받는 정치인이 있습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그 주인공입니다. 당대표 자리에 오른 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았음에도, 황 대표는 벌써 다양한 ‘어록(語錄)’을 쏟아내면서 국민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황 대표의 발언이 처음으로 정치권의 이목(耳目)을 끌었던 것은 지난 6일이었습니다. 그는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연석회의에서 “네티즌들은 미세먼지가 아니라 ‘문세먼지’라고 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책임을 따지고 있는데 대통령은 어제서야 긴급 보고를 받았고 하나마나 한 지시사항 몇 개 내놓은 게 전부”라고 말했습니다.

문세먼지란 문재인과 미세먼지를 결합해 만든 신조어인데요. 미세먼지 책임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있다는 점을 꼬집은 표현입니다. 미세먼지에 대한 실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또 야당 대표로서 적절한 발언을 한 것인지는 차치하더라도 문재인 정부와 미세먼지를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 정치적으로는 매우 성공적인 발언이었죠.

황 대표의 조어(造語) 정치는 이후에도 계속됐습니다. 1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그는 “이 정권이 일자리에 쓴 돈이 무려 54조 원인데 도대체 이 막대한 돈을 어디에 쓰고 참담한 고용성적표를 받았는지 철저히 따지겠다”면서 “대한민국이 알바천국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아시겠지만, 알바천국은 한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사이트 명칭입니다.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사이트의 대표격이다 보니 사람들에게 매우 친숙한 단어죠. 그러니까 ‘천문학적인 금액을 쏟아 부은 문재인 정부 일자리 정책이 전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말을 ‘알바천국’이라는 익숙한 한 단어로 요약한 건데요. 실제로 이날 이후 정치권에서는 황 대표의 조어 솜씨에 대해 높은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16일에는 아주 문학적인 표현도 동원됐습니다. 황 대표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달은 숨고, 비는 내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습니다.

‘달은 숨고, 비는 내립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어두운 밤입니다.
한미동맹은 갈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는 미국의 요구에 어떤 형태로든 양보할 의사가 없다.”
북한 최선희가 어젯밤 평양에서 공식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김정은이 미북 비핵화 협상 중단을 고려하고 행동 계획도 곧 발표한다고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렇게 될 줄 전혀 몰랐습니까?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 도대체 어느 나라에 있습니까?

언론들은 연일 한미동맹을 걱정하고 있고 국민들의 불안도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해결방법은 오직 강한 압박밖에 없다는 미국에, 이 정권은 북한 퍼주기로 맞서고 있으니 참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달’이 숨어버렸습니다.
어둠 속에 ‘비’가 내립니다.

저도 함께 비를 맞겠습니다.

우리가 ‘빛’이 됩시다.

결국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이지만, 형식은 마치 한 편의 시 같기도 합니다. ‘달’은 문 대통령의 성을 영어로 옮긴 ‘Moon’을 다시 우리말로 옮긴 건데요. 즉 ‘북한이 비핵화 협상을 깨겠다고 나섰는데 문 대통령은 어디서 뭘 하고 있느냐’고 따지는 셈이죠.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막말’이 횡행하는 우리 정치권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스타일이기는 합니다.

황 대표의 이 같은 스타일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의견이 둘로 나뉘더군요. 18일 기자와 만난 한국당 관계자는 “원래 보수는 품격 있게 하는 게 제일 큰 장점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당이 막말로 도배가 돼버렸다”면서 “점잖고 품격 있게 말씀하시는 황 대표가 우리 당 이미지를 바꾸고 있다고 본다”고 했습니다.

물론 다른 의견도 있었습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야당은 정부여당에 맞서서 투쟁을 해야 하는 위치인데, 황 대표는 너무 공자왈 맹자왈 하는 것 같다”며 “관료 때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면 정치인으로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어떤 평가가 옳은지는 시간만이 말해주겠지만, 적어도 황 대표의 조어 정치가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