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 현실을 인정해야 이상으로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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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 현실을 인정해야 이상으로 나아갑니다
  • 한설희 기자
  • 승인 2019.10.10 1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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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다양성은 약자를 위한 것…정부·여당 옹호는 해당되지 않아
야당인줄 아는 여당, ‘억울함의 정치’에서 벗어나 업데이트 필요해
정부, 현실과 당위성 재정립 필요해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한설희 기자]

전국이 양극단으로 갈려 공존하지 못하고 어느 한 쪽은 물러나야만 하는 사생결단의 치킨게임 중인데, 이를 두고 국민들이 직접 다양한 의사 표시를 할 수 있으니 긍정적이라고 평가할 일인가? 초가삼간이 불타는데 ‘불의 존재에 대해 감사하자’고 하는 것이다.  ⓒ시사오늘 김유종
전국이 양극단으로 갈려 공존하지 못하고 어느 한 쪽은 물러나야만 하는 사생결단의 치킨게임 중인데, 이를 두고 국민들이 직접 다양한 의사 표시를 할 수 있으니 긍정적이라고 평가할 일인가? 초가삼간이 불타는데 ‘불의 존재에 대해 감사하자’고 하는 것이다.  ⓒ시사오늘 김유종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역을 눈앞에 놓고서도 한글 모르는 척하는 셈이다. 

조국 법무부장관을 두고 국민이 서초동과 광화문 두 곳으로 갈라지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일 “국론분열이 아닌 직접민주주의 행위”라는 정의를 내렸다.

궤변이다. 전국이 양극단으로 갈려 공존하지 못하고 어느 한 쪽은 물러나야만 하는 사생결단의 치킨게임 중인데, 이를 두고 국민들이 직접 다양한 의사 표시를 할 수 있으니 긍정적이라고 평가할 일인가? 여론은 조 장관의 거취와 사법개혁을 두고 과열된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국민 요구의 ‘내용’에 대한 언급 없이 여론 표출의 ‘형식’이 적합하니 문제가 없다는 식이다. 

마치 불타고 있는 집을 보면서 ‘날씨가 좋으니 불타는 것이 잘 보인다’고 평가하는 것과 같다. 초가삼간이 불타는데 ‘불의 존재에 대해 감사하자’고 하는 셈이다.  

 

다양성은 애초에 약자를 위한 것…정부·여당 옹호는 해당되지 않아

문 대통령의 말대로 국론은 획일화될 순 없고, 획일화돼서도 안 된다. 사안에 따라 다양한 의견은 존재할 수 있고, 이러한 다양성은 민주적 정책 결정 과정에서 긍정적 영향을 준다. 대의제 형식을 보완하기 위해 직접민주주의 제도를 가져온 이유도, 다양한 여론을 정책에 잘 반영하기 위해서다. 

국가는 왜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통해 국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해야 하는가? 이는 권력을 가지지 못한 사회적 약자(소수자)를 위해서다. 그들의 정당한 요구가 기득권에 의해 ‘투정’, 또는 ‘밥그릇 싸움’이라고 매도 받지 않도록 돕기 위함이다.

국정 결과는 대개 다수자의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소외된 사회적 소수자의 이해관계와 상충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민주주의 사회는 최소한의 ‘안전망’을 마련했다. 소수자가 자신의 이해관계를 관철하기 위해 정부에 호소할 수 있도록 광장을 열어둔 것이다. 그게 바로 대통령이 말한 직접민주주의 행위, 시위 집회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5일 서초동 집회를 두고 “촛불 시민혁명의 부활”이라고 극찬했다. 그러나 ‘조국 수호’, ‘자한당 해체’, ‘토착왜구 박멸’ 피켓이 휘날리는 명백한 ‘친(親)정부 시위’를 과연 낮은 곳으로부터의 혁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정권을 잡았다. 국회에서도 40%가 넘는 의석수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정치 지형에서 최고 권력자다.

권력자를 옹호하는 목소리는 약자의 목소리라고 볼 수 없다. 야당 주장처럼 정부나 공공기관이 직접 개입한 ‘관제 데모’는 아니라고 해도, 양심상 서초동 시위를 가리켜 기득권을 뒤집을 ‘혁명’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야당인줄 아는 여당, ‘억울함의 정치’에서 벗어나 업데이트 필요해

그렇지만 서초동 집회에 모인 시민들은 억울해한다. 못된 권력자(야당)들이 힘없는 정부와 조 장관의 ‘큰 뜻’을 방해한다며 분통을 터뜨린다. 아직도 민주당을 약자, 한국당을 비롯한 보수야당을 강자라고 보는 시각 때문이다. 

민주당은 이를 적극적으로 부추기고 있다. 민주당은 정치개혁 일선에서 애쓰고 있지만 거대 비리 권력으로부터 핍박받는 안타까운 피해자 위치에 스스로를 둔다. 정부와 여당이 조국 장관을 ‘최후의 전선’으로 삼아 밀어붙였기에 이 사달이 났지만, 한국당을 향해 “국론을 분열시키지마라”고 엉뚱하게 책임을 전가한다. 20대 국회에서 “정부 여당은 자기들이 아직도 야당인 줄 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오는 이유다.

지난달 만난 한 바른미래당 의원은 “진보 정부가 10년 만에 집권해서 그런 건지, 한국당처럼 삭발식만 안했지 대여투쟁을 하듯 정치를 하고 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 같은 모습에 대해 강상호 한국정치발전연구소 대표는 지난달 20일 “민주당을 주도하고 있는 일명 ‘386 운동권세대’의 국정운영이 아직 미숙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자기들이 야당인 줄 안다’는 비판도 국정수행 능력 부족에서 오는 것이다. 1980년대 ‘386컴퓨터’로 국정을 담당하려고 하니 리더십과 판단 능력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어 강 대표는 ‘386 세대’가 수십 년간 집권 세력이었던 독재 권력을 반대하는 ‘안티테제(Antithese·반정립)’로만 살아왔기에 이런 지적이 나왔다고 분석했다.

“그들은 이제까지 항상 주체 세력의 반대 세력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그 습성이 몸에 뱄을 수 있다. 보수 세력이 권위주의적 사고, 중심적 사고에 익숙하다면 현재 운동권 집권세력은 주변적인 사고에 익숙하다. 아직도 자기가 권력 중심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주변적인 사고의 틀을 버리지 못한 거다.”

반면 김행 위키트리 부회장은 “권력자의 피해자 코스프레”라며 “표를 얻기 위한 포장을 그쳐야 한다”고 냉소적으로 비판했다.

“표를 얻기 위해 ‘정치적 프레임’으로 본인들을 포장할 뿐이지, 스스로 약자라고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결국 ‘피해자 코스프레’다. 민주당 운동권을 비롯해 진보는 이미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쳐 10년 동안 권력을 잡아봤고, 이번이 세 번째 집권이다. 지방의회 권력은 이미 상당히 민주당에 넘어가 있다. (정부여당이) 스스로를 약자라고 생각한다면, 지금 민주당이 하는 일련의 밀어붙이기식 정치행태는 납득하기 어렵다. 정치적인 이익을 위한 코스프레에 불과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분열의 현실을 부인하고, 통합정치의 당위성을 거부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은 분열의 현실을 부인하고, 통합정치의 당위성을 거부하고 있다. ⓒ뉴시스

분열 현실을 인정해야 통합 이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원점으로 돌아가, 갈등 자체를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갈등이 없는 사회는 죽은 사회뿐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식민 통치, 국토 분단과 전쟁, 장기간의 군부 독재, 급격한 산업화 등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격동을 수차례 겪었다. 역동적인 한국사회 속에서 갈등은 필연적이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에게 쏟아지는 우려는, 그가 현실과 당위성을 제대로 정립하지 못한다는 데서 온다. ‘국론분열’의 현실과, ‘국민통합’의 당위성 말이다. 분열의 현실을 부인하고, 통합정치의 당위성을 거부하고 있다. 

현실을 인정하자. 국론은 이미 양분됐다. 조국을 절대적으로 수호하는 자, 절대로 용인할 수 없는 자. 조국만이 사법개혁의 칼이라고 생각하는 자, 조국 없이도 사법개혁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는 자. 이젠 타협 가능한 지점도 넘어섰다. 해임과 유지 둘 중 하나로만 치닫는 중이다.

그리고 이상을 추구하자. 정치란 갈등을 다루는 기술이요, 통합을 지향하는 예술이다. 물론 5천만이 넘는 국민들의 의견을 완전하게 통합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정치란 약자를 폭력으로 억누르지 않는 선에서 마땅히 통합을 추구해야 한다. 그것이 정치의 당위성이다. 불가능할지라도, 통합이라는 ‘이상’, 지향점을 향해 뛰어야한다. 

눈앞에 존재하는 분열과 갈등을 ‘아니다’라고 부정한다면, 현실에서 이상으로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문제가 없으니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문제가 어렵다고 해결을 미루는 것은 이제 강자가 된 집권 세력의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담당업무 : 통신 및 전기전자 담당합니다.
좌우명 : 사랑에 의해 고무되고 지식에 의해 인도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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