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가 마주한 거대한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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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가 마주한 거대한 도전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9.10.21 18: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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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보수와 다를 바 없는 기득권 누리는 진보…위선 논란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미 프로농구(NBA) 최고의 스타 르브론 제임스는 최근 홍콩 시위에 대해 발언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사진은 제임스 유니폼을 짓밟고 있는 홍콩 시민들. ⓒ뉴시스
미 프로농구(NBA) 최고의 스타 르브론 제임스는 최근 홍콩 시위에 대해 발언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사진은 제임스 유니폼을 짓밟고 있는 홍콩 시민들. ⓒ뉴시스

미 프로농구(NBA) 최고의 스타 르브론 제임스는 최근 홍콩 시위에 대해 발언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휴스턴 로켓츠 대럴 모리 단장이 자신의 트위터에 “자유를 위한 투쟁, 홍콩과 함께 하겠습니다(Fight for Freedom. Stand with Hong Kong)”라는 글을 올려 중국의 비난을 받은 것과 관련, 제임스가 인터뷰에서 “우리 모두에게 표현의 자유는 있지만, 부정적 여파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트윗을 올리거나 말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 화근이 됐다.

평소 정치적·사회적 문제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피력해왔던 제임스이기에, 이 발언은 ‘중국 눈치 보기’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설전을 벌이고, 미국 내 흑인 차별을 고발하는 ‘Taking a Knee’ 운동에도 지지 의사를 밝혔던 그가 느닷없이 “정치에 대한 발언은 조심해서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행보였던 까닭이다.

쉽게 예상할 수 있다시피, 자신을 단순한 운동선수 이상(I am more than an athlete)이라며 사회적 역할을 강조했던 제임스가 신념을 꺾은 데는 경제적인 이유가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야오 밍(Yao Ming)의 활약 이후, 중국에서 NBA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연간 중국 내 NBA 시청자 수는 5~6억 명에 달하며, CCTV는 중계권료로만 NBA에 1년 7000만 달러(한화 약 830억 원)을 지불한다. 온라인 중계를 하는 텐센트(Tencent)는 5년 총액 15억 달러(한화 약 1조7745억 원)에 중계권 계약을 맺었다. 중국 내 NBA 시장 규모는 약 40억 달러(한화 약 4조7736억 원)로 추산된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논란은 단순히 ‘조국’이라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진보 진영에 몸담은 정치인이나 지식인 대다수가 공유하고 있는 숙제다. ⓒ뉴시스
조국 전 법무부장관 논란은 단순히 ‘조국’이라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진보 진영에 몸담은 정치인이나 지식인 대다수가 공유하고 있는 숙제다. ⓒ뉴시스

구체적인 상황은 다르지만, 제임스의 사례는 우리 정치, 특히 진보 진영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본질적으로 제임스를 둘러싼 논란은 진보 진영 전체가 마주한 고민과 다르지 않다. 현실의 제약을 인정하고 주어진 환경 내에서 최선의 대안을 모색하는 보수와 달리, 진보는 환경 자체를 변화시키는 데 관심이 있다. 때문에 진보의 주장은 이상적이며 현실과 다소 유리될 수밖에 없다는 특성을 갖는다.

그러나 진보적 주장을 하는 사람 역시 현실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존재다. 환경 자체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한편으로는 ‘현실인’으로서 주어진 환경 내에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압력 또는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진보적 신념은 언제나 개인의 욕망과 갈등 관계에 놓이게 된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논란은 진보 지식인으로서의 신념이 현실인으로서의 욕망 앞에 무릎을 꿇으며 벌어진 비극이다.

문제는 해결 방법도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제임스나 조 전 장관 사례에서 발견할 수 있듯이, 사람들은 위선(僞善)을 용납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메신저(Messenger)의 행위와 메시지(Message)가 언제나 일치하기를 바란다. 이렇게 보면, 진보는 자신들이 내는 메시지에 맞게 개인적 욕망을 억누르며 신념을 지켜야만 계속해서 사람들의 공감과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하지만 수백억 원을 포기하면서 정의를 말하고, 자녀의 밝은 미래보다 내 신념을 앞세우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결국 대부분은 수도자적 삶 대신 메신저의 행위와 메시지의 불일치를 감수하는 삶을 선택하고, 위선과 표리부동(表裏不同)이라는 평가에 직면하게 된다. 조 전 장관 논란은 단순히 ‘조국’이라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진보 진영에 몸담은 정치인이나 지식인 대다수가 공유하고 있는 숙제다.

진보는 그 특성상 더 나은 사회로의 변화를 주장하며 더 도덕적이고 더 정의로울 것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재산 증식, 자녀 교육 등 사적 영역에서 보수와 진보의 차이는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보수와 비슷한 방법으로 비슷한 위치에 올라 비슷한 권력을 누리고 있는 ‘기득권 진보’는 이제 누구를 위해 무엇을 말할 것인가. 진보가 무겁고 거대한 도전 앞에 섰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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