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죽은 者에게 너그러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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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죽은 者에게 너그러운가
  • 박근홍 기자
  • 승인 2019.12.10 1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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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김우중 前 대우그룹 회장 별세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지난 9일 늦은 밤 세상을 떠났다. 향년 83세. 김 전 회장은 지난 1년 간 숙환으로 투병 생활을 했고, 연명 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평소 뜻에 따라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기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고 한다. 1967년 만 30세의 나이에 대우를 설립해 국내 2위 규모의 대기업으로 성장시킨 기업인이 영면에 들어갔다.

기자는 김 전 회장이 '대우 신화'를 쓴 시절을 직접 경험한 세대가 아니다. 그가 대우를 세웠을 때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고, 대우그룹이 해체된 2000년에는 막 중학교에 입학했다. 어른들과 TV에서 김 전 회장을 운운하며 떠드는 얘기를 간간이 들은 게 전부다. 그럼에도 고인에 대한 기억이 두 가지 있다.

2014년 이제 막 언론인으로서 걸음마를 뗐을 무렵, 당시 정치부 소속이었던 기자는 대우그룹 출신의 한 정치인을 식사 자리에서 만났다. 그는 술자리 주제가 YS(故 김영삼 전 대통령)와 IMF 외환위기로 흘러가자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대우그룹이 해체된 건 DJ(故 김대중 전 대통령) 때문이다', '김 전 회장은 억울하게 이용만 당했다', 'IMF는 대우그룹 책임이 아니라 재정경제원 관료들 탓'이라며 언성을 높였다.

'대우그룹이 해체된 주된 원인은 부실경영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 정치인은 다른 대기업들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는데 국민의정부가 유독 대우그룹을 특정 사정해 돈줄이 막혔기 때문이라며 역정을 냈다. '김 전 회장의 분식회계와 사기대출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고 사법부로부터 징역과 추징금 선고도 받지 않았느냐'고 반문하자, 그는 "김 전 회장이 별세하면 재평가가 이뤄질 겁니다"라고 일축했다. 그 정치인은 뼛속까지 '대우맨'이었고, 김 전 회장의 추종자였다.

또 한 가지 기억은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간다. 기자가 초등학교 고학년이었을 때다. 옆 반에는 학교에서 잘나가는 친구가 있었다. 반은 달랐지만 함께 운동장에서 공을 차며 친해졌고, 방과후에 그 친구 집에 놀러가기도 했다. 집도 무척 잘살았고, 떡꼬치를 잘 사주는 친구였다. 그런데 그 친구의 모습은 다음 학기부터 보이지 않았다. 옆 반 담임 선생님에게 여쭤보니 집안 사정으로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다고 했다.

하지만 나중에 들려온 건 그의 아버지가 대우그룹의 한 계열사 하청업체 사장이었고, 대우 사태로 어려워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그리고 동네에는 그 친구 가족들이 야반도주를 했다는 소문까지 퍼졌다. 대우그룹 때문에 그 친구는 아버지를 잃었고, 나는 친구를 잃었다. 

김우중 전 회장이 세상을 떠난 날 밤 고인의 별세를 다룬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기사들 밑에 달린 댓글들을 살펴보니 'DJ 정권의 가장 큰 피해자', '정권 입맛에 들지 않아 회사가 공중분해돼 참 원통하겠다', 'DJ한테 속은 분', '경제로는 비판할 수 없다' 등 대부분 김 전 회장을 비호하는 내용이었다. 참으로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 전 회장은 분명 한국경제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이다. 그의 자서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처럼 그는 대기업 총수답지 않게 하루 24시간, 1년 365일을 세계를 누비며 '세계경영'을 펼쳤고,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시켰다. 해외시장 개척해 끊임없이 수익 다각화를 시도했고, 부실기업들을 인수해 단기간에 경영정상화를 이뤄냈다. 김 전 회장의 지휘 아래 대우그룹은 41개 계열사와 396개 해외법인, 국내외 40만 명의 임직원을 거느린 재계 2위 대기업이 됐다.

그러나 과도 극명했다. 고도성장을 거듭하면서 대우그룹의 부채는 89조 원까지 쌓였다. IMF 외환위기가 대우그룹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또한 구조조정에 무려 30조 원 규모의 혈세가 투입됐다. 그럼에도 대우그룹은 유동성 위기를 벗어나지 못했고 결국 워크아웃에 들어간 후 공중분해됐다. 외형 확대에만 집중한 방만경영이었고, 부실경영이었다. 이 과정에서 김 전 회장이 41조 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지시하고, 10조 원 규모의 불법 대출을 받았으며, 해외로 24조 원 규모의 재산을 빼돌렸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혹자들의 주장대로 DJ 때문일지도 모른다. 김 전 회장의 분식회계, 사기대출 혐의가 모두 정권 차원의 불공평한 표적수사로 씌워진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것이 면죄부는 될 수 없다. 선거자금을 둘러싼 DJ와 김 전 회장 간 갈등은 분명한 정경유착이다. 대우그룹이 분식회계와 사기대출을 저질렀다는 점은 팩트다. 관행이었다는 변명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확실한 건 당시 대우그룹 해체로 피눈물을 흘린 사람들이 수백, 수천 명에 달했으며, 수십조 원의 국민 세금이 낭비됐다는 것이다.

우리는 왜 항상 죽은 자에게 너그러운가. 뇌물을 받고 부정을 저지른 정치인이어도 죽으면 세상의 칭송을 받고, 온갖 불법행위를 일삼고 사회적 논란을 야기한 기업인이어도 죽으면 한국경제 부흥의 상징이 된다. 그럼 죽은 자들 때문에 피해를 입은 산 자들은 도대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존재의 이유가 있을까.

죽은 자들에 대해서도 공은 공대로 평가하고, 과는 과대로 책임을 물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는 진보했고 성장했으며 발전을 지속하고 있다. 이제는 변화해야 할 때다. 시기를 놓치면 역사에 큰 죄를 지은 전직 대통령들에게도 책임을 묻기 어렵다. 우선, 김우중 전 회장에게 선고된 추징금 17조 원, 그리고 체납된 세금 35억 원을 받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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