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의 사람들] “중도개혁 판을 열자”…5人 출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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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의 사람들] “중도개혁 판을 열자”…5人 출격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0.04.11 20:4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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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춘, 민주당 부산 선대위원장으로
박재호, 부산 남구을서 이언주와 격돌
이성헌, 서대문서 우상호와 6번째 맞대결
이원복, 인천 남동구을서 8번째 도전
박진, ‘종로의 아들’에서 ‘강남의 아들’로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김영삼 전 대통령과 정치적 운명을 함께 했던 이들이 제21대 총선에 출격한다. ⓒ시사오늘
김영삼 전 대통령과 정치적 운명을 함께 했던 이들이 제21대 총선에 출격한다. ⓒ시사오늘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1동 상도터널 사거리 근처. 언덕을 오르고 작은 골목을 서너 번 돌아가다 보면, 마음씨 좋은 노부부(老夫婦)의 보금자리 같은 작은 주택을 발견할 수 있다. 집 앞에 서 있는 앳된 얼굴의 경찰들과 金泳三(김영삼) 세 글자가 적힌 문패(門牌)가 아니었다면 전직 대통령 사저임을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집.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상도동 자택이다.

지금은 고즈넉한 분위기를 가진 평범한 주택이지만, 사실 이곳은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치열한 투쟁을 벌였던 ‘민주화 투사(鬪士)’들의 아지트였다. 초산테러, 가택연금, 민주산악회 조직, 단식투쟁, 민주화추진협의회 발족 등 이곳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은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렵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YS와 운명을 함께 했던 이들을 우리는 ‘상도동계’라고 부른다.

상도동계는 목숨을 건 민주화 투쟁으로 1987년 6·29 선언을 이끌어냈다. 1992년에는 YS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문민정부(文民政府)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과 함께, 민주화 운동 선봉(先鋒)이자 대통령을 만들어낸 최초의 민주적 정치집단이었던 상도동계는 뿔뿔이 흩어져 저마다의 정치를 시작했다. <시사오늘>은 제21대 총선을 맞아 이번 선거에 나서는 상도동계 정치인들의 현주소를 점검해 봤다.

 

 

더불어민주당 김영춘 부산 진구갑 국회의원 후보는 YS 비서로 정계에 입문했다. ⓒ김영춘캠프 제공
더불어민주당 김영춘 부산 진구갑 국회의원 후보는 YS 비서로 정계에 입문했다. ⓒ김영춘캠프 제공

‘민주당 부산 선대위원장’ 김영춘


상도동계 인사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더불어민주당 김영춘 부산 진구갑 국회의원 후보다. 김영춘은 고려대 총학생회장이던 1984년, 민주정의당 당사 기습 점거를 주도한 일을 계기로 YS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YS 비서로서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그는 문민정부 수립 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행정관과 정무비서관을 역임했다.

제16대 총선에서는 서울 광진구갑 선거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 처음으로 국회 입성에 성공하며 본격적으로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한나라당에서 민정계가 다시 주류로 등장하고, 당이 수구적·폐쇄적인 분위기로 흘러가자 김영춘은 2003년 전격적으로 한나라당을 떠나 열린우리당으로 당적을 바꿨다.

보금자리를 옮겼지만, 김영춘은 제17대 총선에서도 당선증을 받으며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는 탄탄대로 앞에서 또 한 번의 ‘변신’을 감행했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문국현 후보를 돕기 위해 창조한국당에 입당한 것. ‘문국현의 약속이나 슬로건이 내가 생각하는 것과 많은 부분 일치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후 민주당으로 돌아온 그는 마지막 정치 실험에 도전하고 있다. 제20대 총선 부산 진구갑에서 당선증을 받으며 3선 의원이 된 그는, 문재인 정부 초대 해양수산부 장관을 거쳐 제21대 총선 부산 선거를 진두지휘하는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만약 이번 선거를 통해 4선에 성공한다면, 김영춘 앞에는 ‘대권’이라는 새로운 과제가 놓일 전망이다.

Q. 정치권에 몇 안 남은 상도동계 인사다.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상도동계가 갖는 의미는 뭐라고 생각하나.

A. 상도동계를 중심으로 한 과거의 통일민주당 계열은 한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중도개혁 정치 세력이었다. 그래서 양극단의 정치를 중화시키고, 보다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정치 문화를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상도동계가 와해되고 지금의 민주당과 통합당으로 나뉘면서, 중도 세력이 사라져버렸다. 어떻게 보면 상도동계는 양극단으로 흘러가기 쉬운 정치를 중도에 붙잡아두는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Q. YS를 계승하는 정당은 통합당이라고 보나 민주당이라고 보나.

A. YS 정신은 민주화와 개혁이다. 과거 군사독재정권과 맞서 가장 강력한 투쟁을 했던 사람도 YS고, 대통령이 된 후 사람들이 상상하지 못했던 개혁을 이뤄낸 사람도 YS였다. 젊은 세대들도 역사 속에서 기억할 수 있는 하나회 숙청, 금융실명제, 공직자 재산공개 같은 걸 이뤄냈다. 이렇게 보면 YS의 정신은 민주화와 개혁이라고 할 텐데, 통합당과 민주당 중 누가 더 YS 정신에 가까울까. 저는 민주당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민주당 박재호 부산 남구을 국회의원은 미래통합당 이언주 의원과 격돌한다. ⓒ박재호캠프 제공
더불어민주당 박재호 부산 남구을 국회의원은 미래통합당 이언주 의원과 격돌한다. ⓒ박재호캠프 제공

이언주와 맞서는 ‘원조 친노’ 박재호


‘3당합당’ 이후, YS는 보수정당의 울타리를 벗어난 적이 없다. 이러다 보니 상도동계 대부분은 여전히 민주자유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으로 이어지는 보수정당에 몸을 담고 있다. 예외가 있다면 앞서 소개한 김영춘, 그리고 지금 소개할 더불어민주당 박재호 부산 남구을 국회의원 후보 정도다.

박재호는 1986년 신한민주당 서석재 전 의원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했다. 그는 1987년 제13대 대선 때 민주쟁취 선거혁명추진 부산학생연합회 회장을 맡아 전국을 누볐으며, 1992년에는 YS의 비선조직이었던 ‘나라사랑본부(나사본)’ 부산지역 책임자로 활동했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후에는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인사재무비서관을 지냈다.

그랬던 그가 ‘친노(親盧)’ 타이틀을 얻게 된 것은 1999년이다. YS 퇴임 후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있던 그는 제16대 총선을 1년 앞둔 1999년 귀국 비행기를 탔다. 자신이 모셨던 서석재 지역구(부산 사하구갑)에 무소속으로 출마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중, 박재호는 우연히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를 만나게 된다.

안희정과 이광재는 박재호에게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 마침 서석재가 제16대 총선에 출마하기로 하면서, 박재호는 총선 출마를 포기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돕기로 한다. 이때부터 박재호는 ‘원조 친노’로 활동하면서 노무현 정권 탄생의 일등공신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이후 박재호는 대통령 정무비서관으로 임명됐으나 반 년 만에 사임하고, 부산 남구을 선거구에서 세 차례 연속(제17·18·19대) 낙선한 뒤 제20대 총선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금배지를 달았다. 제21대 총선에서는 미래통합당 공천을 받아 부산으로 내려온 이언주 의원과 맞대결을 펼칠 예정이다.

Q. 정치권에 몇 안 남은 상도동계 인사다.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상도동계가 갖는 의미는 뭐라고 생각하나.

A. 상도동계는 민주와 통일이라는 이념으로 하나가 된 공동체였다. 집권 후에도 대한민국 민주주의 전진에 큰 역할을 했다. 그럼에도 상도동계의 역할은 저평가돼 있다. 기회가 마련되면 재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Q. YS를 계승하는 정당은 통합당이라고 보나 민주당이라고 보나.

A. 우리 현대사가 민주화의 승리라고 보면, YS와 DJ의 정신은 하나로 연결돼 있다. 이런 관점에서, 군부독재 종식과 민주화라는 두 사람의 정신을 어느 당이 더 치열하게 실천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올 거라고 본다.

 

 

미래통합당 이성헌 서울 서대문구갑 국회의원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후보와 여섯 번째 맞대결을 펼친다. ⓒ이성헌캠프 제공
미래통합당 이성헌 서울 서대문구갑 국회의원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후보와 여섯 번째 맞대결을 펼친다. ⓒ이성헌캠프 제공

우상호와 여섯 번째 맞대결, 이성헌


민주당에 김영춘이 있다면, 미래통합당에는 서울 서대문구갑 국회의원에 일곱 번째로 도전하는 이성헌 후보가 있다. 이성헌은 연세대 총학생회장이던 1984년 학생회가 주최한 광주항쟁 기념식에 YS를 연사로 초빙하기 위해 상도동을 찾았다가 인연을 맺었다. 그로부터 1년 후, 대학을 졸업한 그는 상도동 비서진의 막내로 들어가면서 정치에 발을 들인다.

상도동계의 ‘막내’로서 활발히 활동하던 이성헌은 YS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청와대에 함께 들어가 대통령비서실 정무비서관으로 일했다. 그러다가 YS 임기 말에 열린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 공천을 받아 서울 서대문갑에 출마하며 본격적으로 자신의 정치 인생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이성헌이 대중적 명성을 얻게 된 것은 2000년 제16대 총선 이후다. 이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우상호 후보를 꺾고 처음으로 국회의원이 된 그는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에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 비서실장으로 발탁되는 등 승승장구했다. 2012년 대선에서도 새누리당 국민소통본부장을 맡으면서 당내 입지를 넓혔다.

또한 이성헌은 우상호와의 ‘질긴 인연’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연세대학교 81학번 동문이자 학생회장 출신인 두 사람은 2000년 제16대 총선부터 2020년 제21대 총선까지 6번 연속 맞대결을 벌이면서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현재 상대전적 2승 3패로 열세인 이성헌은 4·15 총선에서 지난 패배의 설욕(雪辱)을 노린다.

Q. 정치권에 몇 안 남은 상도동계 인사다.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상도동계가 갖는 의미는 뭐라고 생각하나.

A. 상도동계는 군부독재에 맞서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했던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YS가, 또 상도동계가 앞장서 이뤄낸 자유민주주의는 우리가 다듬고 보완해서 더 발전시켜야 할 가치라고 생각한다.

Q. YS를 계승하는 정당은 통합당이라고 보나 민주당이라고 보나.

A. 당연히 통합당이다. YS의 핵심적인 정신은 민주화, 국민이 권력을 갖는 진정한 민주화다. 통합당은 자유한국당, 그 전부터도 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힘써온 정당이다.

 

 

미래통합당 이원복 전 의원은 인천 남동구을에서만 8번째 금배지 도전에 나선다. ⓒ이원복캠프 제공
미래통합당 이원복 전 의원은 인천 남동구을에서만 8번째 금배지 도전에 나선다. ⓒ이원복캠프 제공

인천 남동구을 ‘8번째 도전’ 이원복


1985년 2월 12일 열린 제12대 총선은 ‘신민당(신한민주당) 돌풍’으로 역사에 기록된 선거다. 당시 신민당은 ‘질 것이 뻔하다’는 우려를 딛고 총선 참여를 결정, 예상 밖 승리를 거두면서 대한민국 민주화에 불을 댕겼다. 바로 이때 신민당 돌풍에 일조한 사람이 바로 미래통합당 이원복 인천 남동구을 국회의원 후보다.

이원복은 신민당 창당 후 학생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던 YS에 의해 ‘스카우트’된 인사다. 당시 YS는 제12대 총선을 통해 ‘국민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고, 각계각층의 인물들을 끌어들였다. 이때 이원복은 학생 운동 경력을 바탕으로 학생들과 노동계가 2·12 총선에 광범위하게 참여하는 데 일익(一翼)을 담당했다.

그러나 이후 이원복의 정치 인생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제13대 총선부터 제19대 총선까지 7차례(2006년 재보궐선거까지 8차례)나 인천 남동구을에 출마했지만, 불과 두 차례 당선되는 데 그쳤다. 특히 공천 문제로 세 차례나 당을 떠나(제14대 총선 통일국민당, 제18대 총선 무소속, 제19대 총선 국민생각)는 등 부침(浮沈)이 컸다.

하지만 그는이번 총선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물론 지역구는 인천 남동구을이다.
제13·14·15·16·17·18·19대 총선에 이어 무려 8번째 도전이다. 2006년 재보궐선거까지 더하면 9번째 출마. 인천 남동구을에서만 9번째 선거에 나서는 ‘뚝심’과 그동안 쌓아온 지역 기반을 바탕으로 3선에 도전한다.

Q. 정치권에 몇 안 남은 상도동계 인사다.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상도동계가 갖는 의미는 뭐라고 생각하나.

A. 상도동계는 시민민주주의 세력의 본산이다. 대한민국 현대정치사에서 일종의 정치 사관학교, 의회민주주의 학교의 역할을 했다. 이 학교 졸업생들이 한국 현대 정치를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Q. YS를 계승하는 정당은 통합당이라고 보나 민주당이라고 보나.

A. 둘 다 아니다. 오히려 제대로 된 제3의 정당이 나온다면 거기가 YS 정신에 가장 가깝지 않을까.

 

 

미래통합당 박진 전 의원은 서울 종로에서 강남으로 지역구를 옮겨 국회 복귀에 도전한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미래통합당 박진 전 의원은 서울 종로에서 강남으로 지역구를 옮겨 국회 복귀에 도전한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종로의 아들’에서 ‘강남의 아들’로, 박진


미래통합당 박진 강남을 국회의원 후보는 앞서 언급한 네 명의 후보들과는 조금 다른 케이스다. 김영춘·박재호·이성헌·이원복이 YS와 함께 민주화 운동을 한 사람들인 반면, 박진은 문민정부가 들어선 후 YS와 인연을 맺었다. 때문에 박진은 상도동계가 아닌 민주계로 분류되는 경우가 더 많다.

다만 박진과 YS의 인연은 결코 가볍지 않다. YS는 경기고와 서울대를 나오고, 외무고시 출신이자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에서 행정학 석사, 옥스퍼드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엘리트’ 박진을 크게 신임했다. 박진이 우리나라를 방문한 국빈과의 회담에서 통역을 도맡아 했던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문민정부에서 공보비서관과 정무비서관을 지낸 박진은 2002년 재보궐선거에서 ‘정치 1번지’ 서울 종로에 출마, 당선증을 받았다. 이후 제17·18대 총선에서도 승리하며 내리 3선을 한 그는 거물 정치인들을 차례차례 꺾으며 입지를 굳혀갔다. 하지만 제19대 총선에서 불출마하고, 제20대 총선에서는 당내 경선에서 오세훈 전 서울시장에게 밀리면서 조금씩 잊히는 듯했다.

그러나 제21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최홍 전 ING자산운용 대표의 서울 강남을 공천이 논란에 휩싸이자, 통합당 지도부는 박진을 급히 불러들였다. 종로에서 태어나 종로에서만 3선을 한 박진이지만, 강남 유권자들에게 어필할 만한 ‘스펙’과 ‘외교 전문가’라는 평가에 기대를 건다는 분석. 이로써 박진은 강남에서 네 번째 금배지를 노린다.

한편, 대표적인 상도동계 인사로 알려져 있는 미래통합당 김무성 의원은 제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3월 31일 <시사오늘>과 만난 자리에서 “상도동계는 YS라는 지도자를 중심으로 군사독재정권이라는 불의(不義)에 맞서 투쟁했던 정치 결사체였다”며 “총칼을 든 군인들과 싸우면서도 굴하지 않고 자유와 민주를 위해 목숨 걸고 투쟁했다”고 회상했다.

YS 차남 김현철 동국대 석좌교수도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상도동계는 과거 군사독재정권에 대항하며 민주화 투쟁을 통해 나라를 발전시켜온 사람들”이라면서 “상도동계의 바탕 위에 민주화추진협의회가 탄생했고, 민추협이 있었기 때문에 6월 항쟁이 가능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도동계는 우리나라 민주화의 근간이 된 조직”이라고 평가했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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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자 2020-04-12 09:26:59
이번 국회의원 후보자드 중에 YS계보에 관하여 알수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