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필담] 호남정치의 다원화, 지금이 적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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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필담] 호남정치의 다원화, 지금이 적기다
  • 한설희 기자
  • 승인 2020.05.04 03: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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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맹주들의 퇴장…제3지대 정치실험 종료 의미
민주당의 호남 독과점, 新지역주의 망령 부를 수 있어
호남 살풀이, 적기…주류세력 교체 인식 속 다원화 꿈꿔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한설희 기자]

정치권에서 호남의 영역은 작아지고 영남은 커지는 ‘신(新)호남고립론’에 호남 스스로 몰표로써 일정 부분 기여하게 된다. ⓒ뉴시스
정치권에서 호남의 영역은 작아지고 영남은 커지는 ‘신(新)호남고립론’에 호남 스스로 몰표로써 일정 부분 기여하게 된다. ⓒ뉴시스

낙선 후 최근 ‘정계은퇴설’이 돌고 있는 정동영 의원은 호남 정가에선 ‘전북대통령’으로 불렸다. 

전북 전주는 제15대 총선 이후 도합 네 번이나 정 의원을 선택했다. 그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하고, 2007년 대권주자가 되기까지 꾸준히 그의 손을 들어줬다. 전주, 그리고 호남은 정치인 정동영을 대선주자 인물로 성장시킨 든든한 뒷배였다.

그랬던 정 의원은 이번 총선에서 ‘더블스코어’로 패했다. 비단 정동영 한 사람의 패배가 아니다. 호남 지역 당선자 28명 중 27명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이고, 그마저도 60% 이상은 초선 의원이다. 

20대 총선에서 ‘녹색 바람’에 앞장섰던 정동영·천정배·박주선·박지원·유성엽 등 지역 명망가들은 우후죽순 낙선했다. 정계 거물들의 실패는 호남 지역의 ‘제3지대 정치실험’ 종결을 의미하는 것에 가깝다. 호남 맹주들의 시대적 퇴장이자, 어쩌면 제3당과의 영원한 고별인사일지도 모른다. 

 

민주당의 호남 독과점, 지역주의 망령 불러올 수 있어


지난 20대 총선에선 새누리당도 호남에서 2석을 얻었다. 친박계 이정현 후보는 순천에서 민주당 노관규 후보를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고, 정운천 후보도 민주당·국민의당 후보와의 3자대결에서 승리한 바 있다.  

이제 호남은 다시 민주당 일당체제가 됐다. 정치 신인이라도 민주당 깃발을 달면 당선되고, 외지(外地)에서 수차례 검증된 인사라도 반민주당 세력이라면 힘을 쓸 수 없는 험지가 된 것이다. 

그런데도 이를 두고 ‘지역주의의 부활’이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진보 세력은 오히려 민주당의 호남 재탈환에 대해 ‘정의구현’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반면 미래통합당의 영남권 독과점을 두곤 지역주의를 원인으로 꼽는다. 

안타깝게도 호남의 몰표는 지역주의라는 망령에 일조하고 있다. 

호남 정계에서 민주당을 견제할 수 있는 정치세력은 없다. 민생당마저도 ‘우군(友軍) 전략’을 택해 대통령과 전 국무총리와의 사진을 현수막으로 내걸었다. 여기에 굴복한 통합당은 호남 지역을 거의 비우다시피 했다. 인지도 있는 통합당 후보들은 호남 출마를 거부했다. 김무성 의원 단 한 명이 호남 출마를 타진했지만 지도부에 의해 좌절됐을 뿐이다. 견제와 균형의 정치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 이러한 현상이 과연 장기적으로 봤을 때 호남에게 도움이 될까. 

역설적이게도 ‘호남은 민주당, 영남은 통합당’이라는 지역구도 속에서, 대선을 앞둔 민주당이 ‘외연확장’을 이유로 영남주자를 내세울 가능성만 높아지게 됐다. 그렇게 되면 호남인들이 간절히 바라던 제2의 DJ, 즉 ‘호남 대권론’은 멀어지게 된다. 

더 이상 의석을 뺏길 수 없는 통합당은 ‘집토끼’ 영남에 더욱 매달리고, 호남은 공란으로 남겨둔다. 정치권에서 호남의 영역은 작아지고 영남은 커지는 이 같은 ‘신(新)호남고립론’에 호남 스스로 일정 부분 기여하게 되는 셈이다.

 

호남 살풀이, 지금이 적기다


한국 정치사회는 명백한 주류교체가 일어나고 있다. 산업화 세력은 역사 속으로 저물고, 민주화 세력이 기득권으로 자리잡은 상황이다.ⓒ뉴시스
한국 정치사회는 명백한 주류교체가 일어나고 있다. 산업화 세력은 역사 속으로 저물고, 민주화 세력이 기득권으로 자리잡은 상황이다.ⓒ뉴시스

물론 호남권에서 민주당의 독주는 호남인들의 책임만은 아니다. 여기서 ‘반호남 지역주의’로 요약되는 한국 지역주의의 역사를 언급하지 않는다면 기만일 것이다. 

호남에는 한(恨)의 정서가 짙다.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시작된 호남인에 대한 차별은 아직도 건재하고, 색깔론에 앞장섰던 구보수 세력은 여전히 통합당에 적을 두고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주류는 바뀌고 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이를 두고 ‘뉴노멀(새로운 표준)’이라는 표현을 썼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추종하는 구보수 산업화 세력은 이번 총선을 통해 명백히 저물었다. 180석의 ‘슈퍼여당’ 당선자는 대개 군사독재 정권과 맞서 싸운 민주화 세력, 즉 ‘586세대(50대·80년대 학번·60년대 태생)’ 인사들이다. 

1970년 7대 대선을 앞두고 본격화된 지역주의는 호남의 피해의식으로 굳혀져 사회 전 분야에서 내면화돼 2020년인 지금까지 기생하고 말았다. 독재는 시민들의 눈앞에서 사라졌지만, 지역주의에 의존해 정당을 운영하는 비민주적 행태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한국 정치사회는 ‘민주화 운동권’이 정치권 주류가 된 새로운 시대에 직면했다. 바꿔 말하자면 뿌리 깊은 ‘호남의 한’을 달랠 적기가 왔다는 뜻이다. 구보수를 정계에서 영원히 퇴출시키고, 호남정치의 다원화를 고려할 ‘살풀이’의 시대다. 그 책무는 정치권에게 있다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 유권자 역시 나눠 짊어져야 한다.

담당업무 : 통신 및 전기전자 담당합니다.
좌우명 : 사랑에 의해 고무되고 지식에 의해 인도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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