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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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으니…"
  • 김신애 기자
  • 승인 2011.12.15 14: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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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의 미덕을 실현하는, 동부플래니쳐 정강일 대표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신애 기자]

조선 후기 설백자기(雪白磁器)로 유명한 한 도공이 살았다. 백자를 만드는 도공의 솜씨는 칭찬이 자자하여 군왕의 호의를 얻었다. 도공은 부와 명성을 쌓고 임금으로부터 ‘우명옥’이라는 이름을 하사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내 술과 계집의 유혹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됐고, 결국 스승에게 버림받아 고향으로 내려갔다. 강원도 홍천에서 명옥은 자신의 방탕한 삶을 뉘우치며 스스로의 과욕을 경계하고자 자그마한 술 잔 하나를 만들었다. 잔의 이름은 ‘계영배(戒盈杯)’다.

‘가득참을 경계하는 잔’이란 뜻의 계영배는 술잔의 70% 이상 술이 채워지면 이미 담겨 있던 것까지 모두 사라진다. 인간의 욕망이 지나칠 때 누리고 있던 것 마저 모두, 마치 잔 속의 술처럼 한 순간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것. 돈도, 명예도, 사랑도 그러하다. 동부플래니쳐의 정강일 대표(50)는 이 진리를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지나침의 경계는 옛 부터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로도 한국 사회에 익숙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또 경주가 시작되면 멈출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습성. 마찬가지로 작은 구멍가게부터 세계적인 대기업까지 모든 기업의 목표가 만년 이윤추구, 평생 시세확장이기도 하다. 그 속에서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기업은 단연 눈에 띠지 않을 수 없다. 정 대표는 지나침의 ‘쓴 맛’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갈구하라, 언제나 우직하게"

 ▲ ⓒ권희정 기자
동부플래니쳐 정강일 대표는 서울고·연세대를 거치며 흔히들 말하는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그도 그럴 것이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사업으로 부유한 생활을 해 왔다. 그러나 그의 대학 3년,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온 가족은 말할 수 없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사업의 실패가 얼마나 많은 이들을 힘들게 하는지, 피해를 주는지. 그 때 이미 정 대표는 내 가족들을, 나의 사람들을 ‘절대’ 힘들게 하지 않을 것을 다짐했다.

정 대표는 현재 동부플래니쳐라는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의 다짐(?) 때문일까 동부플래니쳐는 14년이라는 세월동안 한 치의 흔들림 없이 꿋꿋이 서 왔다. 우직하게. “무리한 욕심을 부리지 않겠다”는 신념 때문이다. 

‘우직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어리석고 고지식하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동부플래니쳐는 어찌 보면 미련하리만큼 좁은 보폭으로 성장세를 이어간다. 단기간에 수백억, 혹은 수천억대의 매출을 올려내는 기업의 눈에는 보잘 것 없을 수 있다. 그러나 동부플래니쳐는 화려한 외양보다 단단한 내실을 선택했다.  

“흔히 인테리어 업체들은 종합건설회사의 하청을 받으면 높은 매출액을 쉽게 올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부도 위험도 높아지기 일쑤죠. 현재 워크아웃에 들어가 있는 많은 건설사가 쓰러질 때 그들과 함께 했던 업체들도 같이 문을 닫았습니다. 수많은 회사들이 제 아무리 열심히해 봐야 발주업체가 흔들리면 먼저 무너져 버립니다.” 때문에 정 대표는 보다 어렵지만 보다 확실한 길을 고집한다. 대기업들과 직접 거래를 하는 것.

많은 회사들이 쉽게 매출을 올리기 위해 하도급의 방식을 선택하지만 동부플래니쳐는 어려운 방법을 택했다. 그러나 매출 규모는 작을지언정 무엇보다 안전한 길이기도 하다. “규모가 큰 사업을 하청 받으면 경쟁이 높은 만큼 수익성도 낮습니다. 그 상태에서 발주한 회사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순식간에 ‘끝’이지요. 대기업의 오더를 직접 받는 것이 어렵지만 현명하다 생각했습니다.”

어렵지만 현명한 선택의 길

물론 어느 회사라고 대기업과의 거래를 마다할까. 대개 대기업에 업체등록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다행히 정 대표는 젊은 시절 10년간의 동부그룹 근무 경험으로 대기업을 상대하는 노하우를 얻었다. 그만큼 많은 것을 배우고 애착이 있어 회사 이름 또한 ‘동부플래니쳐’이기도 하다.

동부그룹에서 정 대표와 함께 근무했던 직원들이 지원군이 돼 동부플래니쳐의 가족으로 회사를 일으키는데 공을 세웠다. 덕분에 사업 초기부터 정 대표는 중소 업체들이 어려워하는 대기업에 기꺼이 도전했고, KT·농협·우리은행 등 대기업뿐만 아니라 최근 성장 추세에 있는 IT업체, 병원들과도 줄곧 활발한 거래를 이어오고 있다.

 ▲ ⓒ권희정 기자
사업을 하면서 기업을 상대로 한 접근방법도 중요하지만 대기업들과의 지속적인 거래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신뢰’가 중요하다. “신뢰는 약속을 지키는 것입니다. 약속한 납기나 품질, 사후관리 등에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사실 중소업체에게는 약속을 지키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다. 그러나 이윤을 줄여서라도 지켜야만 하는 것, 그것이 약속이다. 과정은 어렵지만 열매는 달다. 약속을 지킴으로써 다음 사업을 맡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최근에는 경기악화로 건설업계 전반에 어려움이 있기도 하다. 발주량 자체가 적다보니 큰 인테리어 회사들도 작은 주문에 관심을 갖고, 여기에 밀려난 작은 회사들은 갈 곳을 잃게 된다. 그러나 14년 동안 기업들 사이에 쌓아올린 신뢰는 이럴 때 일수록 든든한 힘이 된다. 또 회사를 지켜온 직원들이 있기에 정 대표는 걱정이 없다. 중소기업의 대표로 직원 한 사람 한 사람과 회사의 대소사를 모두 챙겨야 하는 고충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직원들은 정 대표의 또 하나의 가족이 됐다.

 “인테리어업종은 주말 작업이 많은데 가정생활, 경조사도 모두 뒤로 하고, 또 싫은 내색도 안하면서 회사를 위해 일해주니 항상 고맙게 생각합니다. 어려운 여건에도 항상 믿고 따라줘서 감사하고, 모두들 열심히 해줘서 고맙습니다. 나도 우리 직원들에게 부끄러움 없는 떳떳한 사장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동부인테리어는 이제 한국을 넘어 일본 시장으로의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14년간의 모습대로 앞으로의 세월동안 한국과 일본, 나아가 세계 각국에 영향력을 미치는 회사로 성장할 것이다. “쉬운 일을 쉽지 않게, 어려운 일을 어렵지 않게”하겠다는 정 대표의 인생관이 손쉬운 이익에 휘둘리지 않고, 어려운 도전에 물러서지 않는 든든한 기업을 만들 것이다.

명옥이 만든 계영배는 시간이 지나 정조 순조대의 거상(巨商) 임상옥(林尙沃)에게 전해졌다. 중국을 넘나들며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던 임상옥은 계영배를 받아들고 지나친 욕심을 경계해야 함을 깨닫게 됐다. 이후 임상옥은 절제의 미덕으로 겸손하게 일하며 어려운 이들을 도왔고, 이로써 더욱 많은 재산과 높은 명성을 얻어 조선 역사상 전무후무한 거상으로 성장했다. 

 ▲ ⓒ권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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