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땠을까] 5대 부정 선거 의혹史…3·15 이후 ‘조작설’ 줄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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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땠을까] 5대 부정 선거 의혹史…3·15 이후 ‘조작설’ 줄이어
  • 한설희 기자
  • 승인 2020.05.20 14:0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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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 “3·15 부정선거”…사실로 밝혀져 이승만 하야
1987 “부정투표함 밀반출”…29년만에 당락과 관계 없음 증명
2002 “전자개표 조작설”…대규모 재검표 끝에 거짓 판명
2012 “투표분류기 조작설”…선관위 '공개 재검표' 승부에 김어준 회피
2020 “사전투표 조작설”…진상은?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한설희 기자]

한국 정치권은 선거가 끝나면 크고 작은 ‘부정 선거’ 의혹으로 몸살을 앓았다. 〈시사오늘〉은 파장이 거셌던 ‘5대 부정선거 의혹’을 추렸다.ⓒ시사오늘 그래픽=박지연
한국 정치권은 선거가 끝나면 크고 작은 ‘부정 선거’ 의혹으로 몸살을 앓았다. 〈시사오늘〉은 파장이 거셌던 ‘5대 부정선거 의혹’을 추렸다.ⓒ시사오늘 그래픽=박지연

21대 총선과 관련해 미래통합당 민경욱 의원과 보수 유튜버가 제기한 ‘사전투표 조작설’이 증폭되고 있다.

민 의원은 연일 기자회견과 SNS를 통해 날인 없는 비례대표 투표용지가 무더기로 발견된 것과 사전투표지 여러 장이 붙어 있는 사진 등을 ‘조작의 증거’로 제시하면서, 박순자·김선동·이언주·박용찬·차명진 등 통합당 낙선 후보들과 함께 법원에 증거보전을 신청한 상황이다.

한국 정치권은 선거가 끝나면 크고 작은 ‘부정 선거’ 의혹으로 몸살을 앓았다. 〈시사오늘〉은 파장이 거셌던 ‘5대 부정선거 의혹’을 추렸다.

 

➀ 1960년 대통령·부통령 선거 “3·15 부정선거”


1960년 제4대 대통령·5대 부통령 선거는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3·15 부정선거’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당시 여당인 자유당은 이승만 대통령의 재임과 이기붕 국회의장의 당선을 위해 치밀한 부정 선거를 계획했다. 이들은 전국에 비밀 지령을 내려 △40%(4할) 사전투표 △3인조·5인조 공개투표 △완장부대·정치깡패·내무부 공무원 동원 압박 △민주당 등 야당 참관인 매수 혹은 축출을 자행했다. 

민주당은 즉각 언론 담화를 통해 “3·15 선거는 선거의 이름 하에 이뤄진 국민주권에 대한 포악한 강도 행위”라며 규탄했고, 시민들도 거리로 뛰쳐나와 시위를 벌였다. 시위 중 마산상고 김주열 학생이 사망하면서 ‘4·19 혁명’이 발발했고, 결국 26일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를 발표하게 된다. 

 

② 1987년 제13대 대선 “구로구 부정투표함 밀반출”


‘6월 항쟁’의 결실로 쟁취한 87년 대통령 직선제는, YS(김영삼)와 DJ(김대중)의 야권분열로 인해 결국 민주정의당 노태후 후보의 당선으로 끝맺었다. 

그러나 12월 16일 투표 당일 한 시민의 “구로구 선관위가 구로갑 투표함을 밀반출했다”는 제보와 함께 백지 투표용지 1506매가 발견되면서, 구청에 시민 수천 명이 결집해 공개 개표를 주장하는 규탄대회를 열었다. 이에 정부 당국은 무장 경찰을 투입해 국민의 공분을 자아내기도 했다. 

한편 DJ는 ‘부정투표 밀반입설’에 동조해 기자회견을 열고 “부정선거가 없었다면 내가 승리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13대 대선은 명백한 부정 선거이므로 불법 무효”라고 발표하면서 △유령유권자 조작 △부재자투표 조작 △지역구 ‘릴레이투표’ 지시 △전국 정신박약자 대리투표 △환표·함바꾸기·부정개표 등을 근거로 내세웠다. 

‘구로구 부정투표설’의 진상은 지난 2016년, 약 29년이 지나서야 밝혀졌다. 여야 및 시민단체와 함께 재개표한 결과, 부정선거는 사실이 아니었으며 실제로 노태우 후보가 우세했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중앙선관위는 재개표 직후 보고서를 통해 “절차적 부분에서 선거 관리가 소홀한 면은 있었으나 구로구을 우편투표함은 조작되거나 위조되지 않았다”고 못박았다. 

 

③ 2002년 제16대 대선 “전자개표 조작설”


2002년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당선도 한나라당 이회창 지지자들로부터 ‘선거조작’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국정원 중견간부’로 본인을 소개한 한 누리꾼이 “전자개표는 조작이 가능하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는데, 이 글이 이회창 후보 팬클럽 ‘창사랑’ 및 한나라당 당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면서 의혹이 불어난 것이다.

이회창 지지자 200여 명은 캠프 점거 및 항의 전화를 통해 재검표를 요구했고, 이에 서청원 대표는 안상수 부정선거방지본부장·이주영 상황실장과 ‘전자 개표 조작설’에 동조하면서 당선무효소송을 제시한다.

그로 인해 2003년 1월 27일 비용 약 5억 원, 동원 인원 8000여 명이라는 ‘헌정 사상 초유 대규모 재검표’가 이뤄졌고, 그 결과 이회창 후보 88표 증가 및 노무현 후보 816표 감소라는 당락과 관계없는 근소한 차이만 증명됐다. 결국 서청원 대표는 여론의 비난에 직면해 모든 책임을 지고 대국민 사과와 함께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④ 2012년 제18대 대선 “수(手)개표 주장”


2012년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에도 불구하고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게 100만 표 이상의 표차로 패배하자, 민주통합당 일각에서는 방송인 김어준과 함께 ‘미분류표 부정개표설’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들은 투표지 분류기에서 미분류된 ‘재확인 대상 투표지’가 박근혜 후보의 득표율에 쏠려 있다고 지적하면서, 어떤 세력이 선관위 컴퓨터(투표 분류기)에 부정적인 접근을 했을 수도 있다는 논리를 통해 전자개표가 아닌 ‘수(手)개표’를 요구했다. 

김어준은 한발 더 나아가 “통계적으로 철저히 기획된 숫자(득표율)가 발견됐다”는 의혹을 다룬 영화 ‘더 플랜’을 제작했고, 여기에 민주통합당 정청래·김진애 등이 가세하면서 ‘수 개표론’은 기세를 얻었다. 

그러나 일부 시민단체가 제기한 ‘18대 대선 무효 소송’이 대법원에서 기각됐고, 선관위의 “공개 재검표를 정식으로 요청하면 언제든지 응하겠다"는 주장에도 김어준 측이 답변을 회피하면서 논란은 수그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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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명 : 사랑에 의해 고무되고 지식에 의해 인도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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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ldptm 2020-05-20 20:10:42
전주 완산은 벌써 부정선거 사실로 밝혀짐!
이외에도 37개구에서 투표인보다 많은 유령표 출몰 의혹!
그리고 이것은 표갈기하다 실수한 빙산의 일각으로 보임.
진짜는 서울인천경기를 63:36 으로 배부하는 QR 코드와 전자개표기/서버일 것임.

http://www.andongdaily.com/news/articleView.html?idxno=235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