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일 신당①>최소 6년 이상 준비된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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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일 신당①>최소 6년 이상 준비된 정당
  • 윤종희 기자
  • 승인 2011.12.20 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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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2006년 2월 출판기념회에서 보·혁 간 합리적 정책수렴 주창
그 때부터 장기표와 '선진화 출사표' '선진화 대장정' 주고받아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종희 기자]

장기표 녹색사회민주당 대표와 함께 대(大)중도신당 창당 작업을 벌여왔던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이 14일 마침내 창당을 공식 선언했다. 당명은 국민대통합 선진통일당이다. 박 이사장은 신년 1월 11일에 창당 발기인대회를 열 것이라고 밝혔다. 소위 '박세일 신당'이 출항한 것이다.

▲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은 이미 6년여 전부터 신당과 관련한 이념적 구상을 정리한 게 틀림없다. 그가 달리 '보수의 브레인'으로 불리는 게 아니다. 요즘 박 이사장은 상당한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뉴시스
'박세일 신당'의 뿌리는 생각보다 상당히 깊다. 단지 내년 총선을 앞두고 급조된 정당이 절대 아니다. 기자가 눈으로 직접 본 것만으로도 최소 6년 이상 준비된 정당이 틀림없다.

지난 2006년 2월 23일 저녁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는 박 이사장의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지금 박 이사장과 함께 당을 키우고 있는 장기표 대표도 있었다. 장 대표는 축사에서 당시 행사를 "박세일의 선진화 출사표"라고 정의했었다. 장 대표는 또 "박 교수가 제시한 '공동체 자유주의'는 21세기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는 이념을 제시한 것으로 전세계적으로 유용한 사상이 될 것"이라고 극찬했다.

박 이사장은 "이번 모임이 우리 사회의 선진화를 위한 대장정의 시작이 된다면 이 보다 더 큰 보람이 없겠다"면서 "(선진화를 위해)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고 노력할 각오"라고 밝혔다.

박 이사장과 장 대표 두 사람이 '선진화 출사표'와 '선진화 대장정'을 외치며 의기투합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박 이사장은 출판기념회에 앞서 열린 '선진화 토론회'에서 '선진화 정당을 위한 소고'란 제목의 발제문을 발표했다. 여기서 그는 "(진보 정당은) 구좌파와의 관계를 확실히 정리해야 하고 21세기형 사민주의 모델(연성 사민주의)을 개발하고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21세기 성공적 국가운영을 위한 국가정책에는 보·혁 간, 좌·우 간 합리적 정책수렴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날 것"이라면서 "그러면 실제로는 서로 얼마든지 협력할 여지가 커진다"고 강조했다.

박 이사장은 "결국 대한민국의 정당은 두 가지 발전단계를 거치면서 선진화의 주체로 등장할 것"이라고 전망, "첫째는 진보와 보수가 '자기개혁'하는 시기로 '뉴라이트'와 '뉴레프트'가 나오고, 둘째는 '신 진보'와 '신 보수'로 거듭나는 시기"라고 설명했다.

박 이사장은 그러면서 "지금의 상태로는 우리나라의 정당은 선진화 세력이 될 수 없다"며 "대한민국의 선진화운동은 각 정당의 자기개혁운동으로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6년여가 지난 지금 박 이사장의 이 같은 생각이 그대로 현실화 되고 있다.

박 이사장이 말한 '신 진보'와 '신 보수'는 각각 장기표 대표와 자신을 의미한다. 보·혁 간, 좌·우 간 합리적 정책수렴은 박 이사장의 개혁적 보수와 장 대표의 합리적 진보가 손을 잡은 것과 연결된다. 선진화세력은 바로 선진통일당이다. 요즘 '박세일 신당'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6년여 전 세종문화회관에 와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6년 전과 똑같이 고건 전 총리 등장

당시 행사장에는 기라성 같은 여야 전·현직 의원들과 언론단체 및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했고 특히 유력 대권주자였던 고건 전 총리가 자리를 빛내고 있었다. 고 전 총리는 현재 '박세일 신당' 합류가 점쳐지고 있는 인물이다. 2006년 2월과 2011년 12월이 그대로 오버랩되는 게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다.

▲ 고건 전 국무총리는 오래 전부터 박세일 이사장의 사상에 관심이 있었던 듯 싶다. 최근 박 이사장은 고 전 총리를 만났다. ⓒ뉴시스
이처럼 박세일 신당 준비 기간이 최소 6년 이상이라면 그 태동 시기는 2005년 3월 경으로 잡는 게 맞을 듯 싶다. 세종시 문제로 박 이사장이 눈물을 펑펑 흘리며 의원직을 사퇴했던 시점이다. 만약, 박 이사장이 금배지를 던지지 않았다면 아마도 한나라당 소속의 유력 정치인으로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사실 2004년 17대 총선 당시 '탄핵 후폭풍'으로 한나라당이 위기에 처했을 때 당을 구한 것은 박 전 대표 만이 아니다. 박 이사장은 박 전 대표와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유세=박근혜, 정책공약=박세일'로 역할을 분담하며 위력을 발휘했었다.

이후 박 이사장은 여의도연구소장과 정책위의장직을 지내면서 당을 살찌웠지만 세종시 문제로 박 전 대표와 틀어지면서 야인(野人)의 길로 접어든다. 만약, 박 이사장이 자신의 소신을 굽히고 한나라당에 그대로 머물렀다면 '박세일 신당'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내년 총선에서 '박세일 신당'과 경쟁해야 할 한나라당으로서는 참으로 후회스러운 대목이다. 한나라당은 왜 '보수의 브레인'으로 불리기까지 하는 박 이사장을 포용하지 못했을까.

'박세일 신당' 씨뿌린 건 박근혜 한나라당

그 동안 한나라당에게는 박 이사장을 끌어들일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무엇보다 한나라당이 지방선거 등 각종 선거에서 참패, 쇄신 돌풍이 불 때마다 박 이사장 이름이 '외부수혈론'과 함께 거론됐다. 하지만 단 한번도 실현되지 못했다.

그 이유의 핵심에는 박근혜 전 대표가 있다는 분석이다. 세종시를 포퓰리즘으로 지적하는 박 이사장이 당에 들어올 경우 세종시 찬성론자인 박 전 대표에게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권(與圈) 내에서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인 박 전 대표에게 손해를 줄 수 있는 상황에서 박 이사장이 한나라당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어떻게 보면 박 전 대표가 박세일 신당을 초래했다고 할 수 있겠다.

박 전 대표 뿐만 아니라 거대 공룡정당 한나라당 내 각 정파간 이해관계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다. 오히려 이 문제가 더 크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박 이사장은 한나라당으로부터 외면 당했지만 단 한 번도 한나라당을 욕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 밖에서 한나라당을 도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툭하면 포퓰리즘 공약이나 던져대는 수구 좌파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가는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도 문제가 엄청 많지만 그래도 수구 좌파 세력 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래서 지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 이사장이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를 지원한 것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박근혜 전 대표가 나 후보를 지원한다는 것만 강조했지 박 이사장에 대해서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철저히 차별한 것이다.

선거 결과는 한나라당의 패배였다. 바로 이 때 박 이사장은 '한나라당으로서는 도저히 힘들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된다. 박 이사장은 그 동안 차곡차곡 준비해왔던 신당 플랜을 자신의 방에서 조용히 펼쳤다.

언론들은 '박 이사장이 보수신당을 만들려고 한다'고 보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박 이사장의 생각은 달랐다. '보수신당'으로는 절대 부족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 이사장은 녹색사회민주당 창당 작업을 하고 있던 장기표 대표를 만나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가 결합한 대중도 신당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그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두 사람의 결합을 과거 개혁적 보수 성향의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합리적 진보 성향의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결합에 빗대 설명하기도 했다. 또 김영삼 전 대통령이 15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대표적 진보 인사였던 이재오 등을 영입해 선거에서 승리한 것을 떠올리기도 했다.

장기표 대표는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재야 운동권의 대부로 유명하다. 또 종북(從北)과는 거리가 먼 진보정치인으로 기존 진보세력과 뚜렷한 차별화를 이룬 인사다. 뿐만 아니라 철저한 논리력과 정책 입안 능력을 갖췄다. 장 대표는 "박세일과 저는 정책 면에서는 어떤 누구와의 경쟁에서도 자신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힘 있는 중도정당

'보수의 브레인'과 '재야 운동권의 대부'가 결합한 것은 소위 중도 정당이 안고 있는 한계를 보완하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박 이사장과 장 대표는 대중도신당을 기치로 내세웠다. 하지만, 중도라는 개념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는 모호함 때문에 흡입력이 약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이명박 정권 초기 "중도는 무소속"이라고 지적하기도 했었다.
 

▲ 장기표 녹색사회민주당 대표는 자신과 박세일 이사장이 정책면에서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시사오늘
하지만, 박 이사장과 장 대표의 선진통일당을 밍숭맹숭한 중도정당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서로 맛이 진한 두사람이 합쳐 더욱 신선한 맛을 냈기 때문이다. '시대착오적인 극우와 극좌의 주장을 배제하고 합리적 진보와 개혁적 보수가 국민의 절대 다수가 동의하는 국가비전과 전략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지역 패권주의와 이념 패권주의를 극복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박 이사장과 장 대표에게서 보이는 또 다른 특징은 과감하게 기득권을 포기한 점이다. 박 이사장은 내년 총선과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했다. 장 대표는 당을 제대로 잘 만들어서 안철수 서울대융합과학기술 대학원장을 대선후보로 추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 박 이사장이나 장 대표 모두 안철수 원장에겐 한참 위의 서울대 선배다. 두 사람의 인생 역정이 결코 안 원장보다 못하지 않다. 그럼에도 안 원장에게 모든 것을 양보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차기 대선 관련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를 앞서는 안철수 원장의 정체성은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라는 말을 통해 파악된다. 안 원장은 또, '상식과 비상식'이라는 메시지도 던졌다. 이 두가지에 가장 근접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당이 어디인가. 한나라당인가. 민주당인가. 결코 아니다. 객관적으로 '박세일 신당'이 가장 근접한 게 사실이다.

세간에서는 선진통일당을 선거 때 나타나는 포말정당으로 폄하하는 목소리가 많다. 하지만, 경륜을 갖춘 정치인들이 선진통일당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도 분명한다. 이들 눈에는 성공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장기표 "새 것이 나오지 않으면 헌 것이 물러나지 않아"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박세일 신당'이 보수 표를 분산시킬 것이라며 공격하고 있다. 하지만 '보수 표를 분산시킨 건 박 이사장이나 장 대표를 포용하지 못하고 기득권에 안주한 한나라당에 있다'는 반박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선진통일당의 한 관계자는 "한나라당에서 그런 말이 나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기득권주의가 심한 지를 알 수 있게 한다"며 "그러면 정당을 새로 만들 때 한나라당 허락을 받아야 하는가"하고 반문했다. 그는 또 "한나라당의 이념 패권주의를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보수세력들이 신당에 접근하는 것을 막으려는 술책"이라고 말했다.

지난 5일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는 '왜 대중도신당인가'라는 주제의 세미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신간회기념사업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진현 전 과기부 장관은 "오늘 특별한 감회로 이 자리에 섰다"며 "85년 전 12월에 민족주의 우파와 민족주의 좌파 간의 대통합을 성취한 신간회 발기가 완성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 전 장관은 "이상재, 안재홍, 신채호, 홍명희, 허헌, 김준연, 권동진, 조만식, 김병로, 한용운 선생 등이 발기인이었다"며 "항일독립운동 사상 최초 최고의 중도통합 민족운동 계몽운동 조직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오늘 우리는 1945년 해방 후 그 어느 때보다 절절하게 정치, 사회, 문화에서 중도 통합을 부르짖고 자연과 문명 간에, 세대와 지역 간에 통섭, 원흉, 화해를 요구하고 있다"며 "저는 이 나라의 새 주류로 21세기 '신신간회'의 등장을 부르짖고 기대했던 사람으로서 오늘 특별한 감회로 여러분을 격려한다"고 말했다.

다시 6년여 전으로 돌아간 2006년 2월 23일, 장기표 대표는 "새 것이 나오지 않으면 헌 것이 물러나지 않는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이 말이 지난 6여년 동안 죽지 않고 살아 남아 오늘 기성 정치권을 강타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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