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인터뷰] 원희룡 “보수, 시장만능주의만 외치면 백전백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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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인터뷰] 원희룡 “보수, 시장만능주의만 외치면 백전백패”
  • 제주=정진호 기자
  • 승인 2020.05.30 1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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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제주도지사
“일찌감치 과감한 결단 내린 게 성공 방역 비결”
“초기부터 방역전문가 조언 받아 최악 상황 대비”
“재난지원금, 어려운 사람 대상으로 여러 차례 지급”
“자연재해 중에도 시장만능주의만 외친 게 총선 패인”
“프라이버시 문제,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핵심 이슈 될 것”
“보수·진보 이분법 끝나…실용주의 혁신노선으로 가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성공적인 코로나19 방역을 이뤄낸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보수 진영의 유력 대권주자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성공적인 코로나19 방역을 이뤄낸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보수 진영의 유력 대권주자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비행기에 안내 방송이 울렸다. 제주도에서 지켜야 할 수칙들이었다. 제주국제공항에서는 열감지기가 승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열이 높으면, 옆으로 이동해 두 번째 발열검사를 받아야 했다.

공항을 빠져나와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 화단 사이사이에는 마스크를 쓴 돌하르방이 서있었다. 이제 막 도착한 관광객들은 ‘마스크 착용’이라는 문구가 적힌 돌하르방의 마스크를 보면서 웃음 섞인 말을 꺼냈다.

“야, 이 정도면 그냥 마스크 쓰자. 징하다 징해. 하하.”

하루에만 중국인 관광객 2000여 명이 찾아오는 곳. 연간 1500만여 명의 관광객이 드나드는 곳. 그러나 5월 29일 현재, 제주도는 전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가장 적은 지역이다. 지금까지 제주도에서 확인된 코로나19 환자는 14명. 그 중 13명은 이미 완치됐다. 확진자 모두 감염원이 타 시·도여서 지역감염은 단 1건도 없다. 사실상 ‘코로나19 안전지대’라고 해도 무방한 수준이다.

이처럼 성공적인 코로나19 방역의 중심에는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있다. 원 지사는 코로나19 유입 초기인 지난 1월 정부에 무비자 입국 제한을 요청하고, 3월에는 이른바 ‘강남 모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등 강수를 뒀다.

이뿐만 아니라 전국 최초로 공항에서 발열검사를 하고, 의심환자는 동선을 분리해 특별 관리하는 등 치밀하고 강력한 정책으로 코로나19를 차단했다. 다른 지방자치단체가 제주도 사례를 벤치마킹했을 정도다.

이 과정에서 원 지사의 주가는 뛰어 올랐다. <동아일보>가 제21대 국회 미래통합당 초선 당선인 4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원 지사는 ‘야권 차기 대선후보가 될 가능성이 높은 인물’ 1위에 올랐다.

개혁적이고 합리적인 이미지 위에 코로나19 정국을 거치며 검증된 행정 능력이 더해진 원 지사는 구심점을 잃은 보수 진영의 새로운 리더로 주목받고 있다. <시사오늘>은 5월 25일 제주도청 도지사 집무실을 찾아 원 지사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원 지사는 상황이 조금 호전된다고 해서 섣불리 코로나19에 대한 경계 태세를 늦추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원 지사는 상황이 조금 호전된다고 해서 섣불리 코로나19에 대한 경계 태세를 늦추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방역수준 완화, 지뢰밭 통과하듯 신중히 할 것”


원 지사와 만난 5월 25일은 ‘이태원 클럽발(發) 코로나19 N차 감염’으로 전국이 떠들썩한 때였다. 그러나 제주도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안했다. 이전보다 관광객 수는 줄었지만, 코로나19에 대한 ‘공포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원 지사에게 그 비결부터 물었다.

-제주도는 코로나19를 잘 막고 있는 것 같다. 비결이 뭔가.

“일찌감치 과감한 결단을 내렸던 게 주효했다. 정부가 중국 눈치 보면서 무비자 입국 중단을 망설일 때 우리가 나서서 차단을 했다. 육지에서 신천지 교회 신도로 인한 확산이 있었을 때도 우리는 정부보다 일주일 먼저 심각 단계를 발령하고 선제적으로 조치했다. 중국에 있는 중국인 유학생들에게는 문자를 보내서 가급적 제주에 오지 말고, 혹시 오게 되면 따로 에스코트(escort) 하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중국 유학생들이 들어오면 따로 차량을 마련해서 아예 동선을 분리시켰다. 또 중국 유학생 대표를 불러서 방역물품을 주고 자가격리를 요청했다. 그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최초로 공항에서 발열체크를 하고, 의심 증상이 있으면 워크스루(walk through) 진료소에서 검사를 받을 수 있게 했다. 이렇게 관문에서 조기 검사를 하고, 의심 환자가 있으면 분리시키고, 그 외에는 손 씻고 마스크 하고 공식 행사 자제하고 하는 생활수칙만 지키게 하니까 거의 뚫릴 일이 없었다.”

-다른 지역보다 선제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던 이유가 궁금하다.

“제주도는 1500만 명이 드나드는 국제관광도시기 때문에 한 단계 강화된 방역 정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초기부터 방역 전문가들과 많은 토론을 했다. 거기서 코로나19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있으니 최악의 상황을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고, 그에 맞춰서 철저하게 준비했다. 실제로 지금 모든 공항에서 하고 있는 발열체크도 제주도가 전국에서 제일 먼저 실시한 다음 정부에 계속 요구한 거다. 무증상자 전파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구·경북에서 온 사람들을 전부 무료로 검사한 것도 제주도가 처음이다. 전국 중앙방역대책본부 화상 회의에서도 우리가 하는 사례를 이야기하면 중앙정부에서 많이 받아들이고 있다.”

제주도는 코로나19 발병 초기부터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 철저한 방어 태세를 구축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제주도는 코로나19 발병 초기부터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 철저한 방어 태세를 구축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제주도는 상황이 안정되는 것 같은데, 코로나19 출구 전략은 마련하고 있나.

“저는 치료제와 백신이 나오기 전까지는 출구로 나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단계적으로 완화는 해야 할 텐데, 이건 한 발 한 발 지뢰밭 통과하듯이 신중하게 해야 한다. 이태원 클럽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탁상 위에서 중앙의 획일적 지침에 따라가면 현장에서의 실질적 위험을 놓치게 된다. 정부가 사후적으로는 제대로 대처하고 있다고 보는데, 꼭 한 번씩 실수한 다음에 보완을 한다. 제주도는 그런 일이 없도록 위험의 정도를 평가해서 그에 맞게 점진적으로 신중하게 한 발 내딛고, 문제가 있으면 바로 강화된 조치로 돌아가는 조심스러운 접근을 할 계획이다.”

-최근 제주도에서는 재난지원금 지급 범위가 논란이 되고 있다. 다른 지역처럼 전 도민에게 지급하지 않는 이유가 있나.

“재난지원금의 1차적인 목표는 소득이 없어 생존에 위협을 당한 사람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비유하자면, 불난 집에 물을 줘서 불을 끄게 하는 것과 같다. 지금 코로나19 때문에 일자리를 잃고 소득이 없어진 사람들은 당장 쓸 돈이 없어진 상황이다. 아이들은 돈이 없으니까 주눅 들고, 부부 사이에는 싸움이 난다. 친구끼리는 카드빚 막으려고 20만~30만 원 빌리다가 사기꾼이 된다. 소득이 없어진 사람들은 지금 가정의 위기, 인간관계의 위기, 생존의 위기에 내몰린 거다. 시장가서 돈 쓰는 게 문제가 아니라 당장 공과금 내고 아이들 학용품 살 돈이 없다. 그러면 갑자기 소득이 없어진 사람들, 일을 해야 되는데 못 나가서 소득이 없는 사람들에게 돈을 줘야 된다.

그래서 저희는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는 공무원이나 공기업, 이미 정부에서 복지급여를 받고 있는 사람들은 제외했다. 기초생활수급자들은 4인 가족 기준으로 한 달에 125만 원이 매달 통장에 들어간다. 코로나19가 유행한다고 해서 이미 정부 지원을 받고 있는 분들에게 지원금을 더 줄 필요는 없지 않나. 그걸 장사 못 해서, 일 못 나가서, 회사에서 무급휴직을 당해서 돈 없는 사람들에게 주고 있다. 그렇다고 나머지를 아끼겠다는 게 아니다. 많이 주고, 지속적으로 여러 차례 주겠다는 거다. 지금 전체 시·도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준 시·도는 한 번 주고 끝이다. 아마 예산이 없을 거다. 그런데 우리는 어려운 계층에게 1차로 주고, 효과가 어떤지 살펴보면서 상황이 더 어려워지면 한 번 더 줄 계획이다. 코로나19가 가을까지 가면 가을에도 한 번 더 줄 생각이다. 소득이 끊긴 가정의 위기를 막기 위한 게 목표기 때문이다.”

-기준을 약간 상회하는 사람들이 형평성 문제를 제기할 것 같은데.

“실제로 많은 분들이 ‘나는 건강보험료 기준을 겨우 5000원 오버했는데 왜 지원금을 못 받나’라는 불만을 제기한다. 물론 저도 재원만 충분하면 다 주고 싶다. 그런데 불난 집에 가야 될 물을 불 안 난 집까지 주면 불을 못 끈다. 이번 달에 모든 사람에게 물을 줬다가 다음 달에도 일감이 없고 소득이 없어서 불이 나면 어떻게 할 건가. 그때 또 꺼야 될 것 아닌가. 다른 사람들은 받는데 나는 못 받는다고 생각하면 당연히 기분이 나쁘다. 그런 불만은 저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우리는 매달 한정된 재원으로 불이 발생하는 집에 물을 줘서 불을 끌 의무가 있다. 그래서 저는 도민 모두에게 지원금을 주기보다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많이, 계속 주는 방향으로 가는 게 옳다고 믿는다. 대신 우리는 최소 두 번, 많으면 그 다음에도 지급할 수 있도록 재원을 준비하고 있다.”

원 지사는 미래통합당이 과거 잘못에 대해 끊임없이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원 지사는 미래통합당이 과거 잘못에 대해 끊임없이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차기 대선, 경제회복능력이 관건”


원 지사가 성공적으로 코로나19를 막아내는 동안, 여의도에서는 미래통합당이 제21대 총선에서 참패하는 결과를 받아들었다. 이제 원 지사는 좋든 싫든 보수의 유력 대권주자로서 ‘새로운 보수’를 설계해야 하는 임무를 맡게 됐다. 그가 생각하는 보수 몰락의 원인과 재건 방안이 궁금했다.

-통합당이 제21대 총선에서 참패한 이유는 뭐라고 보나.

“코로나19 사태로 정부여당이 합법적인 금품 살포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가진 게 제일 크다. 그래서 정부에 힘을 실어줘야겠다는 중도층의 움직임이 있었는데, 통합당은 아무 대책이 없었다. 자연재해에 버금가는 상황인데도 시장만능주의만 외치고, 국민의 삶을 지켜야한다는 국가의 기본에 충실한 정책 전환과 대안 제시를 못했다. 또 하나는 세월호, 5·18, n번방 관련 발언처럼 국민들의 건전한 상식과 공감대에 어긋나는 실책들이 있었다. 과거에 청산하고 결별했어야 할 정치의 어두운 모습들이 자꾸 나타나니까 문재인 정부의 실정에 등을 돌렸던 사람들이 ‘야당은 더하네’라고 생각하게 만든 거라고 본다.”

-왜 통합당 내에서 국민 상식과 어긋나는 발언이 계속 터져 나올까.

원 지사는 통합당이 국민의 삶을 지켜줄 수 있는 정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원 지사는 통합당이 국민의 삶을 지켜줄 수 있는 정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그런 일이 있을 때 유야무야 넘어갈 것이 아니라 지도부가 단호하게 조치했어야 했다. 명확히 입장을 정리하고, 잘못한 부분이 있으면 국민 앞에 반성하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한다. 그런데 탄핵에 대해서도 그렇고 세월호에 대해서도 그렇고 아직까지 뚜렷하게 반성하고 사과한 적이 없지 않나.”

-앞으로 통합당은 어떻게 가야한다고 보나.

“잘못된 점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숙연하고 겸손하고 반성하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잘못은 인정하고, 현재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 미래에 대한 비전을 인정받으면 되는 거다. 오히려 명확히 입장을 정해야 하는 부분을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국민의 마음은 더 멀리 떠나간다. 코로나19에 대한 대응도 마찬가지다. 구시대적인 이념에 발목이 잡혀서 무조건 ‘지원 반대’만 외치면 누가 공감할 수 있겠나.

금고 채울 생각은 없이 퍼주겠다고만 하는 건 포퓰리즘이지만, 천재지변이나 경제공황 같은 상황에서는 국민의 생존을 지키기 위해서 대폭적이고 과감한 구제금융·구제재정을 펼치고 경기가 회복될 때 경제 성장을 통해서 다시 금고를 채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저 ‘퍼주는 건 시장에 반하는 것’이라고만 하고 있으면 국민들은 ‘기득권이 부자 편드는구나’, ‘국민들이야 굶어 죽든 말든 관심이 없구나’라고 생각한다. 소득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는 상황에서 시장만능주의만 외치면 앞으로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다.”

-보수 일각에서는 ‘시장주의에 반한다’는 반발이 나올 수도 있겠다.

“기업이 잘하는 영역에 대해서는 규제를 풀어서 기업들끼리 경쟁하도록 하고, 환경보호나 복지, 실직한 사람에게 교육훈련을 시켜서 노동력을 향상시키는 부분은 정부가 하자는 거다. 이런 건 원래 정부의 영역이다. 기업과 민간시장, 정부가 역할을 분담하고 보완해서 선순환을 이끌어내는 게 건강한 시장경제고 경쟁력 있는 시장경제다. 시장에만 맡기는 건 대공황 때 이미 끝난 것 아닌가.”

-그런 개혁적 이미지 때문인지, 초선 의원들이 뽑은 ‘야권 차기 대선후보가 될 가능성이 높은 인물’ 1위로 뽑혔다.

“제가 20년 동안 소장파를 하면서 ‘부자 기득권 정당으로 가서는 안 된다’, ‘권위주의에 의한 경제성장과 안보 같은 성취만 가지고 젊은 세대들에게 꼰대처럼 강요해서는 안 된다’, ‘당내에서도 하향식으로 지시하는 정당으로 가서는 안 된다’, ‘수평적이고 토론이 가능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미래 혁신정당이 돼야 한다’ 이런 주장을 해왔다. 그때는 아무도 안 들었는데, 바닥을 치고 보니까 이제 좀 듣는 거 아니겠나.”

-제주도지사로서 성과를 낸 영향도 있을 것 같다.

“코로나19 방역에 성공한 점도 있고, ‘그린 빅뱅’처럼 기후변화에 대비한 환경에너지 정책을 펼치는 등등 다양한 행정 경험을 인정받은 점도 있을 거다. 아무래도 도지사 경험이 있다 보니 국가의 미래에 대해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지 않겠나. 또 당내에 혁신 바람이 필요하다는 판단도 했을 거고. 여러 가지가 합쳐진 결과가 아닐까.”

-당내 구심점이 될 인물들이 상처를 입었는데, 직접 전면에 나설 생각이 있나.

“당장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당의 정강정책, 인물, 행태를 전부 바꾸겠다고 하니까 그 부분에 기대를 걸고 있다. 물론 저도 우리 국가 현실에서 무슨 일을 누구와 함께 해야 하는지 늘 고민하고 있다. 그런 고민의 연장선에서 저와 뜻을 함께 할 인재들을 모으고, 국민들 앞에 제시해야 하는 게 제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국민들이 ‘정치 영역에 원희룡이 있구나’ 아시게 되지 않겠나.”

원 지사는 경제 회복 능력과 프라이버시 문제를 차기 대선의 핵심 이슈로 지목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원 지사는 경제 회복 능력과 프라이버시 문제를 차기 대선의 핵심 이슈로 지목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보수 진영의 유력 대권주자로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요구되는 리더십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가장 중요한 건 경제 회복 능력이라고 본다. 2년 뒤에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단절이나 활동 위축이 있을 수밖에 없고, 그 속에서 양극화는 더 심화될 거다.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 경제 질서가 크게 요동치면서 국제 정세도 어려운 상황이 전개될 테고. 이런 상황에서는 구제금융이나 구제재정 정책을 써야 되는데, 여기서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하나는 재원을 생산적인 곳에, 효과적으로 써야 한다는 것. 다른 하나는 경제를 어떻게 회복시킬 것인가 하는 거다.”

-경제 회복 능력이라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우리나라는 재원을 무제한 찍어낼 수가 없기 때문에 몇백조 원을 위기 극복에 쏟아 부으면 그 이상을 다시 벌어서 금고에 쌓아놓을 수 있어야 한다. 안 그러면 코로나19 이후 다른 바이러스가 왔을 때 국가가 문 닫게 되는 거 아닌가. 그래서 계속 다가올 위기에 대비해 방어 체력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 하는 게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십의 핵심이 될 거다. 바로 이 점에 대해 전문적이고 유능하면서 상황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인력들이 국가 운영 기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차기 대선은 이 같은 프레임을 여당 쪽에서 형성하느냐 야당 쪽에서 형성하느냐의 경쟁이 될 거다.”

-경제 문제 외에 코로나19가 가져올 중대한 변화는 없을까.

“프라이버시(privacy) 문제가 대두될 거라고 예상한다. 지금은 코로나바이러스 동선을 따라가기 위해서 팔찌를 채우고 앱(application)을 만들어서 위치 추적을 한다. 바이러스라는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서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통제하는 상황이라, 여기에 대한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사생활의 자유와 비밀은 자유주의 사회의 근본 가치인데, 코로나19라는 비상상황이 닥치니까 사회적인 합의 없이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고 있다.

자유주의 사회에서 정보는 공적인 것만 공개하고 사적인 것은 보호해야 하지만, 지금은 전문정보나 위기정보는 국가가 쥐고 있고 개인정보는 바이러스가 퍼질지 모른다는 이유로 다 공개되고 있다. 위기 상황이라고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근간이 됐던 프라이버시가 무너지는 건 누구도 원하지 않을 거다. 아마 코로나 위기가 2~3년 계속 가면, 국민의 안전과 자유의 충돌을 어떻게 조정하느냐가 전 세계적 문제로 떠오를 거라고 생각한다.”

원 지사는 약자 보호를 외면하고 반공·안보만 내세우는 보수가 생명력을 다했다고 단언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원 지사는 약자 보호를 외면하고 반공·안보만 내세우는 보수가 생명력을 다했다고 단언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국민 안전을 위한 통제와 개인의 자유는 양립하기 어려운 문제 아닌가. 이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실례를 들고 싶다. 대구에서 신천지 교회 신도로 인한 확산 사태가 벌어진 후에 제주도도 신천지 교회 신도를 대상으로 전수 조사를 하게 됐는데, 우리는 접근 방식을 좀 달리 했다. 신천지 교단 지도자들을 불러서 ‘우리는 목적이 방역이지 종교 사찰이 아니다’, ‘망신 주는 게 아니다’, ‘비밀은 철저히 보장하겠다’,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겠다’ 이렇게 약속을 했다. 가족 몰래 신천지 교회에 다니는 대학생들이 많았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전화 돌리는 공무원들에게 ‘이게 유출되면 사표를 내겠다’ 하는 각서를 쓰게 하고, 신천지 교회 지도자들을 전화하는 장소에 입회시켰다. 그러니까 신천지 교회 간부들이 신도들에게 전화를 해서 ‘검사 받아라’ 설득을 하더라. 이렇게 해서 하루 만에 전수 조사를 완벽히 끝냈다.

우리가 가진 정보로 체크해 보니까 명단이 99.9% 일치했다. 저는 여기에 중요한 교훈이 있다고 본다. 권력은 스스로를 철저히 통제하면서 개인의 자유를 보호해야 한다. 권력을 동원해서 쳐들어가는 건 최후의 수단이고, 기본적으로는 대부분의 사안을 신뢰와 협조로 풀어낼 수 있는 경험과 사회적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방역이라는 비상사태를 이유로 개인정보나 인권을 무차별로 짓밟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보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면.

“저는 보수와 진보라는 구태의연한 이분법은 끝났다고 본다. 이론적인 부분에서야 정치철학적인 보수와 진보가 살아있겠지만, 국민 속의 보수와 진보는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특히 공감 능력 떨어지고 약자 보호를 외면하는, 사회 이슈가 있을 때마다 반공·안보만 내세우면서 다양한 요구와 토론을 배제하려는 비민주적 집단으로서의 보수는 부활할 방법이 없다고 판단한다. 이제는 양극화시대에 맞게 약자 보호와 생산성 향상을 함께 도모해야 한다.

민주주의적 사고 위에서 다양성을 장려하고 정보사회에 맞는 행동양식과 사고방식을 가진 집단이 돼야 한다. 그건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실용주의 혁신노선’이라고 할까. 현실 문제를 철저히 인식하고, 실질적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는 인재로 무장된 실용주의·실사구시의 혁신노선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이 ‘유능하고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정치 세력’이라고 생각할 거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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