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텔링] 통합당은 왜 YS를 소환할까?…“권위주의 벗고 민주주의 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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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텔링] 통합당은 왜 YS를 소환할까?…“권위주의 벗고 민주주의 입자”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0.06.03 12: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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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대 보수의 ‘민주 대 비민주’ 구도…‘민주화 투사’ YS 내세워 극복 노력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앞두고 통합당이 YS 정신을 이어받은 정당임을 공언했다. ⓒ뉴시스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앞두고 통합당이 YS 정신을 이어받은 정당임을 공언했다. ⓒ뉴시스

최근 미래통합당에서는 때 아닌 ‘YS(김영삼 전 대통령)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중진 의원부터 청년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YS를 입에 담는 빈도가 부쩍 늘어났습니다. 대구 출신으로 전남 순천·광양·곡성·구례 갑 지역구에 출마했던 천하람 후보가 “YS의 후예이자, 5‧18로 지킨 자유를 수호하는 보수가 되겠다”고 운을 띄운 건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이틀 앞둔 16일 “5·18 민주묘역을 조성한 것도, 5·18 특별법을 제정해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명명한 것도 모두 고(故)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에서 시작됐다”며 “통합당은 YS 정신을 이어받은 유일한 정당”이라고 했습니다. 장제원 의원 역시 “통합당은 YS의 민주화 정신을 이어받은 정당”이라면서 “부마항쟁을 시작으로 5·18민주화운동, 6·10항쟁, 6·29 선언까지 그 대장정의 중심에 저희 당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박정희에서 YS로…“세상이 변했다”


사실 YS는 통합당이 그리 신경을 쓰던 전직 대통령이 아니었습니다.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통합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산을 상속하는 데 골몰했던 까닭입니다. 누가 ‘박정희 정신’을 이어받아 잘 포장하고 활용하느냐에 집중하다 보니, 평생을 박 전 대통령과 맞서 싸웠던 YS는 뒷방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죠.

그런 YS가 전면에 등장한 건 한마디로 ‘세상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그간 박 전 대통령이 높은 인기를 구가할 수 있었던 건 그가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을 이끌었다는 소위 ‘박정희 신화’ 덕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박 전 대통령을 ‘끼니 걱정을 하던 우리나라를 전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부국(富國)으로 만든 지도자’로 인식했고, 보수 진영은 이를 활용해 ‘기울어진 운동장’을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유권자의 다수는 ‘보릿고개’라는 말을 교과서에서나 들어본 사람들로 채워졌습니다. 실제로 끼니를 걱정해 본 사람보다는, ‘이미 잘 사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사람이 더 많아진 겁니다. ‘경험’이 아닌 ‘책’으로 ‘박정희 신화’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아무래도 제3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뜯어보게 됩니다.

“이제 청년들은 박 전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후퇴시켰고 기본권과 인권을 억압한 사실을 큰 문제로 여긴다.”

자유한국당에서 최연소 비상대책위원을 지낸 정현호 전 한국당 비대위원이 한 말입니다. ‘원래 잘 사는 나라’에서 태어난 지금 청년들에게는 ‘가난을 구제해준 나라님’의 이야기가 와 닿지 않습니다. 백 번 양보해 ‘민주주의보다는 먹고 사는 문제가 더 중요했다’는 말을 인정하더라도, 뒤에 한마디를 덧붙입니다. “그때는 그랬다고 칩시다. 근데 세상이 변했잖아요. 그럼 이제는 보수도 바뀌어야 되는 거 아닙니까?”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는 ‘민주 대 비민주’ 프레임을 깨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통합당 당사에 붙은 박 전 대통령과 YS의 사진. ⓒ뉴시스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는 ‘민주 대 비민주’ 프레임을 깨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통합당 당사에 붙은 박 전 대통령과 YS의 사진. ⓒ뉴시스

 

YS, ‘민주 대 반민주’ 프레임 깰 적임자


통합당의 고민은 바로 이 대목이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먹고 사는 문제’를 개선한 공(功)과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과(過)를 모두 지닌 인물입니다. 과거에는 많은 사람들이 공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권위주의적 경제성장모델’의 과오에 더 눈길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이러자 박 전 대통령 앞에 붙는 수식어도 ‘구원자’에서 ‘독재자’로 변화했습니다.

YS가 전면에 등장한 건 이런 배경입니다. 보수가 박 전 대통령을 계속 내세우는 한, 진보 대 보수의 싸움은 ‘민주 대 비민주’ 구도로 흘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민주화 투사’ 출신인 YS가 등장하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박근혜 정부 이후 진보 진영이 재미를 봤던 ‘민주 대 비민주’ 구도가 깨져버리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YS는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금융실명제 등을 도입하면서 부정부패 척결에 나섰던 지도자입니다. 젊은 세대들이 중시하는 ‘공정과 정의’를 온몸으로 실천한 인물이죠. YS를 소환함으로써 보수는 ‘민주 대 비민주’ 구도를 깰 수 있음은 물론, ‘공정과 정의’라는 가치를 선점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YS를 전면에 내세운다고 해서, 보수의 모든 고민이 해결되지는 않을 겁니다. 당내에 퍼져 있는 전근대적 권위주의 문화를 청산하지 않는 한, 그 누가 와도 ‘몰락한 보수’를 일으켜 세우기는 어렵죠. 다만 박 전 대통령 대신 YS를 선택한 건 통합당이 ‘권위주의’를 벗고 ‘민주주의’를 입으려는 노력의 신호로 보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변화 그 이상의 변화’를 내건 통합당과 YS의 동행을 지켜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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