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리쇼어링, 해답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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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리쇼어링, 해답이 될 수 없다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0.06.10 15: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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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쇼어링 핑계로 주도권 잡으려는 ‘정신 나간 정재계’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미국, 일본 등 주요국들이 자국 경제를 지키기 위해 '리쇼어링'(생산기지 본국 귀환) 정책을 펼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피해 최소화, 나아가 포스트 코로나 대비 등을 위해 해외에 진출한 자국 기업들을 본국으로 복귀시켜 일자리를 늘리고 보호무역 장벽을 강화해 내수를 진작시키겠다는 심산이다.

선진국들의 이 같은 움직임을 보이자 우리나라에서도 리쇼어링 추진작업이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서 포스트 코로나를 주도하기 위해 한국판 뉴딜의 핵심 정책으로 리쇼어링이 필요하다고 천명했다. 국회도 마찬가지다.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 소속 의원들이 앞다퉈 리쇼어링 활성화 관련 법안을 발의하고 있으며,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역시 정부의 리쇼어링 정책에 공감하며 이에 대한 논의에 들어간 상황으로 알려졌다.

당사자인 경제계도 리쇼어링으로 인한 수혜를 기대하는 눈치다. 삼성·SK·LG·현대자동차·롯데 등 국내 5대 그룹 CEO들은 지난 15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리쇼어링 확대를 위한 정책을 펼쳐달라고 정부에 강력히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정재계와는 달리,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무분별한 리쇼어링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가 주를 이룬다. 미국, 일본, EU 등 현재 리쇼어링을 추진하고 있는 선진국들과 한국의 경제·산업구조가 극명하게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지하자원도 없고, 내세울 만한 관광자원도 없는 데다, 내수만으로는 결코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없는 우리나라의 경우 리쇼어링이 오히려 악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논리다.

이 같은 이견은 무시한 채 리쇼어링이 마치 코로나19와 포스트 코로나를 관통하는 해답인 양 정재계가 목소리를 높이는 건, 그저 리쇼어링을 핑계로 주도권을 잡으려는 행보가 아닌지 의구심이 생긴다. 

일례로 문 대통령이 한국판 뉴딜의 핵심 정책으로 리쇼어링을 꼽은 건 모순이다. 리쇼어링의 핵심은 결국 국내 제조업 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과 생산성 제고, 이를 기반으로 한 내수시장 소비 촉진과 경기 부양인데, 이는 '디지털 뉴딜'과 충돌할 여지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가속화 자체는 제조업 고용에 직간접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미래통합당은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 비수도권에 생산기지를 꾸리는 유턴기업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내용의 법안을 대거 발의했는데, 이 또한 모순이다. 리쇼어링은 애초에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처방이 아니라, 단기 경기부양 수단이다. 더욱이 앞서 말했듯 우리나라 경제는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면 기업들이 다시 해외로 나가야 생존할 수 있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다.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대의를 악용해 이슈를 주도하고, 자신의 지역구를 지키려는 정치공학적 계산이라는 생각이 든다.

재계도 마찬가지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달 국내 비금융업 매출액 상위 기업 1000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리쇼어링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한 업체는 단 3%에 불과했으며, 오히려 정부가 보호무역 기조를 완화해 국가 간 통상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답변이 26.1%에 달했다. 리쇼어링을 고려하지도 않으면서 리쇼어링 지원 정책을 펼쳐 달라 호소하는 건 또 무슨 모순인가. 단지 규제 완화를 요구하기 위한 빌미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국가경제가 백척간두의 위기에 빠졌는데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을 거머쥔 리더들이 우리 사회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엄청난 변화를 불과 수개월 만에, 그것도 자신들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고 제도화를 모색하고 있으니 이게 무슨 정신 나간 짓이란 말인가.

세계적인 추세라면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생각도 고쳐야 한다. 숙명적으로 독자생존이 불가능한 처지에서 노동집약적 제조업 수출에 기반을 둔 고도성장, 즉 세계화를 통해 혜택을 누렸던 우리다. 또한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리쇼어링은 우리나라의 불확실성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으며, 자칫 미중 무역전쟁에 휘말리는 계기로 작용할 공산도 있다.

무분별한 리쇼어링보다는 정부 차원의 글로벌 밸류체인 재구축, 기업 차원의 새로운 글로벌 비즈니스 모델 창출 등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대안들을 고민할 시기라는 생각이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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