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한설희 기자]

박원순 유언 공개 “모든 분에게 죄송…가족에게 내내 미안해”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이 공관을 나오기 전에 작성한 유언장이 10일 공개됐다. 고한석 서울시장 비서실장은 이날 빈소가 차려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유족의 뜻에 따라 유언장을 공개한다”면서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 내 삶에서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오직 고통밖에 주지 못한 가족에게 내내 미안하다. 화장해서 부모님 산소에 뿌려 달라. 모두 안녕”이라는 글을 남겼다고 전했다. 

박 시장은 전직 비서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경찰에 고소당한 상태다. 다만 그의 죽음으로 성추행 의혹 고소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혐의와는 관계없이 수사 종결될 전망이다. 

與 “민주화·인권 위해 헌신한 고인 명예 기려”…당권 레이스 일시 중지

여당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10일 박 시장의 비보에 일제히 애도를 표하며 8월 전당대회 관련 업무를 중단했다. 

이해찬 대표는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고인은 저와 함께 유신시대부터 민주화운동을 해온 오랜 친구”라면서 “1980년대 이후 시민운동의 씨앗을 뿌리고 크게 키워낸 시민운동계의 탁월한 인권변호사”라고 추억했다. 이어 “민주당은 평생 동안 시민을 위해 헌신한 고인의 삶과 명예를 기리며 고인이 가시는 길을 추모한다”고 밝혔다.

김태년 원내대표도 “평생 시민운동에 헌신하고 서울시의 발전을 위해 수많은 업적을 남긴 박 시장의 명복을 빌며 유족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거들었다. 

한편 당은 이날 최고위원회의를 제외한 모든 공식 일정을 전면 취소했다. 8월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이낙연 의원과 김부겸 전 의원도 당분간 관련 일정을 중단하고 해당 발언을 주의할 예정이다.

통합당 “성추행 피해자 고통 심화 우려…극단적 선택, 면죄부 아냐”

반면 미래통합당 일각에서는 박 시장에게 성추행 의혹을 제기한 피해자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 모양새다.

통합당 김기현 의원은 이날 자신의 SNS를 통해 “다만 지금 이 순간에도 지난 성추행 피해의 고통도 모자라 고인의 죽음에 대한 고통까지 고스란히 떠맡게 될 피해자가 심히 우려된다”면서 “세상이 고인의 죽음을 위로하고 그의 치적만을 얘기하는 동안, 피해자는 보이지 않는 또 다른 거친 폭력을 홀로 감내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김 의원은 박 시장의 장례 절차와 관련해 “서울특별시장(葬)으로 장례를 치러야 할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공무수행으로 인한 사고도 아니면, 더 이상 이런 극단적 선택이 면죄부처럼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일갈했다.

같은 당 조해진 의원도 한 라디오 방송에서 “안희정 전 충남지사나 오거돈 전 부산시장처럼 현역 단체장들이 이런 일로 중간에 그만두는 상황이 벌어져 시민들이 실망하고 있다”면서 “(혐의가) 사실로 밝혀지게 된다면 전체적인 진단과 반성, 대책이 나와야 하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황규환 부대변인도 “남겨진 이들의 아픔을 보듬고 챙기는 것 역시 또 다른 의미의 남겨진 이들의 의무”라며 “죽음의 무게만큼 아픔도 크다. 죽음이란 단어 앞에 아픔과 상처를 간과해선 안 된다”고 거들었다.

정의당 류호정 “벌써 2차 가해·신상털이…박 시장 조문 않겠다”

정의당 류호정 의원은 10일 SNS를 통해 성추행 피해 폭로자를 위로하는 의미로 “박 시장을 조문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류 의원은 “고인의 명복을 비는 사람들의 애도 메시지를 보며 고인께서 얼마나 훌륭히 살아오셨는지 다시금 확인한다. 그러나 저는 ‘당신’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박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서울시청 전 직원을 암시했다. 

그는 “존경하는 사람의 위계에 저항하지 못하고 희롱의 대상이 되어야 했던, 정신과 상담을 받고서야 비로소 고소를 결심할 수 있었던, 벌써부터 시작된 ‘2차 가해’와 ‘신상털이’에 겨우 막힌 숨을 쉴 수 있을 당신이 혼자가 아님을 알았으면 좋겠다”면서 “저는 조문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러나 모든 죽음은 애석하고, 슬프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심상정 정의당 대표와 배진교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빈소를 찾아 비통함을 전달했다.

국민의당 “애도의 뜻 표한다”…당 지도부 개별 입장은 생략

국민의당 안혜진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참담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면서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당 지도부들은 서울특별시장(葬) 또는 성추행 폭로와 관련해 개별적 입장은 내지 않았다. 당 차원에서 심심한 애도를 전하는 입장으로 마무리했다는 분석이다. 

“가족장 치러라”…박원순 서울특별시장 반대 청원 11만 명 돌파

박원순 시장의 장례를 서울특별시장(葬)으로 치르는 것을 반발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박원순 씨 장례를 5일장, 서울특별시장으로 하는 것 반대합니다’라는 청원 글이 게재됐다. 해당 글은 이날 오후 4시 30분 기준 11만5760명의 동의를 얻었다. 

청원인은 글에서 “박원순 씨가 사망하는 바람에 성추행 의혹은 수사도 하지 못한 채 종결됐다. 그게 떳떳한 죽음이었다고 확신할 수 있느냐”면서 “성추행 의혹으로 사망한 유력 정치인의 화려한 5일장을 국민이 지켜봐야 하느냐. 대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건가. 조용히 가족장으로 치르는 게 맞다”고 호소했다.

해당 글 외에 ‘박원순 시장의 장례를 서울특별시장 5일장으로 하는 것을 취소해주세요’라는 글도 동일 시각 기준으로 2만 2600여개의 서명을 얻은 상태다.

유례없는 재임 중 사망 사건으로 서울특별시장(葬)을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의전편람’에 따르면 장례는 국장, 정부장, 기관장으로 나눠 치른다. 

한설희 기자 sisaon@sisaon.co.kr이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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