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끊임없는 갈등…소멸해가는 사회적 자본
스크롤 이동 상태바
[기자수첩] 끊임없는 갈등…소멸해가는 사회적 자본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0.09.04 20: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특정 집단에 대한 비판과 여론전은 국민 간 갈등만 부추겨…대화와 타협, 설득의 길로 가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사회 구성원 간의 지나친 갈등은 사회적 자본을 소멸시킨다. ⓒ뉴시스
사회 구성원 간의 지나친 갈등은 사회적 자본을 소멸시킨다. ⓒ뉴시스

인간 사회는 법과 제도만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법과 제도라는 바탕 위에, 구성원 개개인 간 네트워크가 구축돼야 사회 시스템은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회 구성원들이 네트워크를 구축하게 하는 힘은 신뢰, 유대감과 같은 무형적 자산들입니다. 신뢰, 유대감 같은 ‘사회적 자본’ 없이는 사회가 존속할 수 없죠.

하지만 자유를 가진 인간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과정에서는 이해관계가 부딪치는 경우가 생깁니다.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다 보면, 신뢰와 유대감이 무너지는 지점이 나타나기 마련이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정치인’이라는 존재를 만들어 냈습니다. 국민들끼리 싸워서 사회적 자본이 소멸되면 그 공동체는 위기를 맞게 되므로, 정치인들끼리 논의를 해서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합의안을 도출하라는 겁니다.

기자가 최근 문재인 정부의 행보를 보면서 아쉬움을 느끼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우리가 정치인들에게 우리 권리를 위임한 것은, 국민들끼리 서로 미워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모두가 저마다의 이익만 내세우다 보면 구성원들 간의 충돌은 필연적으로 발생할 것이고, 그것은 곧 사회적 자본의 소멸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정부여당은 정치의 역할이 ‘갈등의 조정’이라는 사실을 잊은 것 같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일 SNS를 통해 간호사들을 위로하며 ‘코로나19와 장시간 사투를 벌이며 힘들고 어려울 텐데, 장기간 파업하는 의사들의 짐까지 떠맡아야 하는 상황이니 얼마나 힘들고 어려우시겠나’라고 썼습니다.

정부여당은 간호사들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한 순수한 의도라고 주장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를 정부 정책에 반발해 파업에 나선 의사들을 겨냥한 메시지라고 해석했습니다. 의도야 어떻든, 결론은 명확했습니다. 코로나19 치료를 위해 한여름에도 방호복을 입고 땀을 뻘뻘 흘렸던 의사들은 한 순간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자신들의 이익만 지키려는 기득권’이 됐죠.

이런 모습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집값이 올랐을 때는 다주택자를 원흉으로 지목해 임대인과 임차인의 갈등이 벌어졌고, 최저임금 인상 당시에는 자영업자와 근로자가 대립했습니다. ‘비정규직 제로’ 정책이 추진될 때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서로 날을 세웠습니다. 문재인 정부 내내 국민들 간의 갈등은 끊일 줄을 몰랐습니다.

이렇게 되면, 국민들 간의 신뢰와 유대감은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환자가 의사를 ‘돈만 밝히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의사가 환자를 ‘소비자’로만 대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신뢰가 생기고 어떻게 유대감이 생길까요. 비정규직이 부정의한 방식으로 내 몫을 뺏어갔다고 믿는 정규직과, 정규직이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믿는 비정규직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요.

기자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 방향이 옳은지 그른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문재인 정부의 정책 추진 방식에 문제가 많다는 점은 지적하고 싶습니다. 지금처럼 특정 집단을 ‘적폐’로 몰아붙이고 여론전을 통해 목적을 달성하는 방식은 빠르고 효율적일 수 있으나, 사회 구성원들 간의 신뢰와 유대감을 무너뜨립니다. 사회적 자본이 고갈되는 겁니다.

때문에 이런 방식보다는, 느리고 답답하더라도 각 집단의 대표자를 불러 끊임없는 대화와 토론, 설득과 합의로 나아가는 방식을 권하고 싶습니다. 그래야 급격한 변화가 이뤄지더라도 국민들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되고, 그 과정에서 사회적 자본이 축적되니까요. 그렇게 모인 사회적 자본은 코로나19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 빛을 발하게 될 겁니다. 이제부터라도 갈등이 아닌 타협의 길로 나아가는 정부여당의 모습을 기대해 봅니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