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우리 죽지 말고 삽시다”
스크롤 이동 상태바
[취재일기] “우리 죽지 말고 삽시다”
  • 조서영 기자
  • 승인 2020.09.28 20: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무탈하지 않은 이들에게 안부를 전하자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조서영 기자]

“‘코로나 블루’라는 단어 한 줄에 담긴 말 못할 사연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26일 저녁 “최근 코로나19 이후 자해, 우울증, 자살 신고가 증가했다는 기사에 내내 마음이 쓰인다”며 “우리 죽지 말고 삽시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 지사는 본인의 페이스북을 통해 “누구도 홧김에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지 않는다”며 “벼랑 끝에 서 있다고 느낄 때, 이 세상 누구도 내 마음 알아주는 이 없다고 느낄 때 극단적인 생각이 차오르게 된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코로나19에 따른 아픔이 사회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인천의 ‘라면 형제’도, 안양의 ‘노래방 자매’도, 그저 단순한 사고가 아니다. 코로나19 이후 늘어난 사건‧사고에는 미처 숫자가 담지 못한 사연과 애환이 있을 터다. 이에 <시사오늘>은 ‘벼랑 끝에 서 있는’ 50대 가장과 20대 취업준비생의 이야기를 대신 담아냈다.

 

“가장이 무너지면 한 가정이 무너지는 거예요”


지난 7월 그는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가장이 무너지면 한 가정이 무너지는 거예요.”ⓒ뉴시스
지난 7월 그는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가장이 무너지면 한 가정이 무너지는 거예요.”ⓒ뉴시스

1964년생의 A씨는 하루아침에 “이번 달까지만 나와 달라”는 말을 들었다. 이는 50대 가장의 해고였지만, 동시에 그가 부양하고 있는 모두에게 내린 해고 통보였다. 지난 7월 그는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가장이 무너지면 한 가정이 무너지는 것”이라고.

직장이 사라진다는 것은 매달 들어오는 월급이 사라진다는 뜻이었다. 이는 한 가정의 식사 풍경을 바꿔 놓았다. 식탁에는 따뜻한 쌀밥 대신 라면이 자리했으며, 외식을 하는 일이 뜸해졌다. 가장의 실업은 가정의 분위기 역시 바꿨다. 삶의 여유가 사라진 집에서는 부모도, 자녀도 웃음 대신 우울감이 찾아왔다.

뿐만 아니라 가장의 실업은 자녀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코로나19로 경제적 타격을 입은 가정의 아이들이 비행 청소년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이 교수는 지난 6월 한 강연에서 “IMF 이후 7~8년이 지나자 비행 청소년들의 사건‧사고가 늘어났다”며 “그런데 2000년대 들어서 두 번의 경제 위기를 겪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9 아동학대 연차보고서’는 ‘경제 문제’를 가정 내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으로 꼽기도 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치명적인 아동 신체학대에는 가정 내 다양한 스트레스 요인이 내재돼 있으며,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인한 실업, 심리적 불안 등도 아동학대의 촉발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때 안부를 물어준 선생님 덕분에…”


시답잖은 “잘 지내냐”는 말 한 마디가 20대 B씨를 살렸다고 했다.ⓒ뉴시스
시답잖은 “잘 지내냐”는 말 한 마디가 20대 B씨를 살렸다고 했다.ⓒ뉴시스

20대의 B씨는 지난 8월 한 회사의 최종 전형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4~5개의 전형을 거치며 부풀었던 기대만큼이나 좌절감 역시 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슷한 시기 연이어 다른 회사에서도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이미 수차례 ‘불합격’이란 글자를 봐왔지만, 올해는 유독 더 아프게 느껴졌다.

그에겐 오는 하반기 공채에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힘이 없었다. 매 전형마다 합격과 불합격 단어 하나로 오르내릴 마음을 더 이상 감내할 자신이 없었다. 그때 그에게 안부를 묻는 이가 있었다. 그가 가장 치열했던 순간을 지켜봐온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었다. 시답잖은 “잘 지내냐”는 말 한 마디가 그를 살렸다고 했다. 지난 8월 B씨는 기자에게 그런 말을 했다.

“<도깨비>라는 드라마 마지막 회에 이런 독백이 나와요. ‘당신이 세상에서 멀어지고 있을 때 누군가 세상 쪽으로 등을 떠밀어 줬다면, 그건 신이 당신 곁에 머물다 가는 순간이다’라고요. 저한테는 그때 선생님이 묻던 안부가 신이 머물다 간 순간이 아니었을까요.”

이재명 지사 역시 극단적인 생각을 했던 본인의 사춘기 시절을 회상하며, ‘서로를 향한 사소한 관심과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웬 어린놈이 수면제를 달라고 하니 동네 약국에서 소화제를 왕창 줬다”며 “저를 살린 건 이웃 주민들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엉뚱한 소화제를 가득 삼키고 어설프게 연탄불 피우던 40년 전 소년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우리를 살게 하는 건, 자주 서럽고 억울하고 앞날이 캄캄해 절망해도 서로를 향한 사소한 관심과 연대”라고 덧붙였다.

이렇듯 코로나19로 벼랑 끝에 내몰린 이들을 향해 건넬 수 있는 말은 많지 않다. 그저 묵묵히 서로가 서로에게 신이 돼, 세상 쪽으로 등을 떠밀어줄 뿐이다. 그리고 정치는 벼랑 끝 내몰린 이들 역시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 아닐까. 막지 못했던 수많은 죽음과 사고에 관심을, 앞으로 막을 수 있는 일에는 연대를 표해야 할 시기다.

※ 정신적 고통 등을 주변에 말하기 어려워 전문가 도움이 필요하다면, △자살예방상담전화 △청소년전화 △정신건강상담전화 △한국생명의전화 △자살예방핫라인 △희망의전화 등을 통해 상담을 받을 수 있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행복하게 살자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