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도의 時代架橋] 국민 피살, ‘대한민국’은 어디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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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의 時代架橋] 국민 피살, ‘대한민국’은 어디 있나
  • 이병도 주필
  • 승인 2020.10.03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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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은 철저한 진상 규명에서
北, 공동조사부터 응하라
'김정은 사과' 진정성 증명해야
‘영해 침범’ 주장한 北 적반하장
피살 발표까지…`靑·軍 방관` 책임 물어야
靑, 김정은 친서 공개, 제정신인가
문 대통령 침묵할 때 아니다
對北 저자세면 안보·남북관계 망쳐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북한군의 남한 공무원 사살 사건과 관련, 국민 공분이 계속 들끓고 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의 야만적 실체를 확인시켰다는 비판론이다.

사건의 본질은 북한군이 바다에서 실종된 우리 국민 이 모씨(해양수산부 공무원)를 구조하기는커녕, 총으로 사살한 뒤 불태운 반인륜적 행위다. 경위가 월북이든 아니든, 비무장 민간인을 군인이 총격으로 살해한 것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돼선 안된다. 진상 규명과 유해 수습, 관련자 엄벌과 재발 방지책 마련이 시급하다. 

이 사건 과정에서 우리 정부와 군이 보여준 대응도 과연 국가의 역할이 무엇이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국가의 존립 이유이자 대통령의 기본 책무다. 국가의 최우선 책무가 방기됐다는 논란이 제기될 수 밖에 없다. 이 질문에 청와대와 정부, 여권은 과연 어떤 답을 내놓을 것인가. 

특히, 이 사건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이 친서를 주고받는 사이 벌어졌다. 얼마든지 구조될 수 있었음에도, 국민의 한 생명이 서해 찬 바다에서 그렇게 무참히 스러져간 것은 분명 국가책무 방기 맥락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남북 당국 모두 이번 민간인 피격 사망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남북 관계 진전은 물론 종전선언과 비핵화 협상도 제대로 공감을 얻을 수 없을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북한군의 남한 공무원 사살 사건과 관련, 국민 공분이 계속 들끓고 있다.ⓒ뉴시스
북한군의 남한 공무원 사살 사건과 관련, 국민 공분이 계속 들끓고 있다.ⓒ뉴시스

남한 노력에도 '화해의 상징' 폭파

1차적으로, 이번 사태는 북한 당국과 김정은의 책임이 실로 크다. 그간 남한 정부는 북한에서 넘어온 주민을 어떻게 처리했는가. 남한 정부가 북한 주민을 인도적 차원에서 처리해온 대가가 이런 것인가. 북한은 피격 대상이 민간인인 것을 분명히 확인한 상태에서도 고의로 사살하고 시신까지 불태우는 것으로 그 대답을 남한에 돌려보낸 꼴이다. 

통일부의 '해상 월선 북한 인원 송환 통계' 자료에 따르면, 남한 정부는 지난 10년간 한국 해상으로 넘어온 북한 주민 187명을 구조해 북으로 송환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귀순하겠다는 뜻을 밝힌 북 주민 82명에 대해선 의사 확인 절차를 거쳐 귀순을 허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세부적으로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은 7명, 2011년 37명, 2012년 13명이 송환됐고,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 12명, 2014년 45명, 2015년 12명, 2016년 8명이 송환됐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이후에는 총 53명을 송환했는데, 2017년 37명, 2018년 9명, 2019년 7명이 북한으로 돌아갔다. 

그럼에도, 북한은 이번 민간인 사살 외에 올 6월16일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청사를 폭파하기까지 했다. 1970년대 이후 남북합의는 여러 차례 깨졌지만 이번처럼 화해의 상징 같은 시설을 폭파하기는 처음이다. 

북한에 책임 물어야 정상 국가

북한 정권의 이같은 도발에도 불구, 남한의 현 문재인 정권은 북한에 사실상 면죄부를 주는 어이없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우리 국민이 북한군에 살해됐는데도 책임 있는 친여권 인사들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사실상 찬양했다. 

북한 도발의 배경도 사실상 남한의 이런 자세에 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에도 핵 폐기 로드맵을 제시하지 않고 도발을 계속해온 북한은 우리의 대북 유화 정책만으로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 이번 사태도 같은 맥락이다. 북한군이 대한민국 공무원을 총살하고 불태우는 만행을 저지르는 동안, 지켜보기만 한 뒤 맹목적 북한 편들기에 나선 남한 정부의 행태가 북측의 적반하장을 초래한 형국이다. 

이제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 청와대와 정부는 야만적으로 살해된 우리 국민의 유해를 하루 빨리 수습하고 안이한 대응을 한 관계자들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특히, 북한 눈치 보기를 그만하고 북측에 책임자 즉각 처벌과 재발 방지 약속 등을 엄중히 요구해야 한다. 

대화의 끈은 놓지 않더라도, 국민이 불안하지 않도록 북한의 모든 도발의 경우에 대비해 이에 준하는 대처가 있어야 한다. 북한에 저자세를 보이면 국가안보가 위태해지고 남북관계도 망치게 된다.

남북관계를 포함한 외교안보 정책의 궁극적 목표는 국민의 생명 안전을 지키기 위함이다. 지금은 대통령이 침묵할 때가 아니다. 국민 앞에서 단호한 대응 의지를 밝히는 것이 우선이다. 

국민이 희생되는 동안 청와대와 정부, 군은 아무런 조치 없이 지켜보고만 있었다. 나라가 이 지경이 되도록 무엇이 잘못됐는지 크게 반성하고, 북한에는 책임을 물어야 정상적인 국가이고 오피니언 리더라고 할 수 있다. 

'반인륜적인 만행'北, 철저한 진실규명 나서야 

이번 북한 만행은 야만적 김정은 정권의 실체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사건이다. 

아무리 관할 수역을 침범했더라도 표류해서 기진맥진한 비무장 민간인을 구조하지 않고 6시간 이상 방치한 다음, 석연치 않은 이유로 사살한 것은 비인도적인 처사로 용납하기 어렵다. 하물며 기름을 붓고 시신을 소각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야말로 '반인륜적인 만행'이란 비난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된다. 

이 비극적인 사건의 수습은 북한 당국의 철저한 진상 규명에서 출발해야 한다. 의문점을 말끔히 해소할 수 있도록 조사에 조속히 나서길 바란다. 비무장 민간인 사격 배경과 시신 훼손 여부, 사격 최종 지시자, 발견후 6시간 해상방치 이유, 피살 공무원의 월북 시도 진술 여부 등이 그 대상이다. 

북한은 열악한 인권 상황으로 가뜩이나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는 상황에서 더욱 고립될 처지에 놓였음을 알아야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밝힐 정도로 사건을 엄중하게 여긴다면, 침범 운운하기 전에 진실이 무엇인지 밝히는 작업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마땅하다.

북한이 최고지도자의 공식 사과문을 보내온 뜻을 살리려면 군 당국 간 접촉 등 대화의 장으로 조속히 나와 후속 협력 조처를 하고, 관계 개선 의지도 보여야 한다. 북한 김정은은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등으로 인한 남한 여론의 대북 피로도와 반감이 커진 상태를 유념하고 진정성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北에 면죄부 '종북적' 행태 

남한의 자세도 문제가 심각해 보인다. 이번 사건은 과연 문재인 정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의사나 능력이 있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북한이 격이 낮은 통지문 형태로 사과하자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은커녕 '신속한 사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했다. 

북한은 지난 25일 통일전선부 명의의 통지문을 통해 자신들이 파악한 사건의 진상을 설명해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공식 사과와 재발방지책 마련 약속도 담았다. 일부 사실도 있겠지만, 현재로선 곧이곧대로 믿기도 어렵다.

그런데도 남한 정부는 한발 더 나아가, 이런 통지문이 마치 현 정부 남북관계 개선 노력의 성과인 양 의기양양해 했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고 한편으로 참담한 기분마저 들게 한다. 

일부 여권 인사들은 북한 김정은의 통지문에 대해 “전화위복” “계몽군주” “(사과는) 희소식”이라는 발언까지 공공연히 하고 있다. 면죄부를 주자는 차원을 넘어 아예 대놓고 역성드는 꼴이다. 국제사회는 이런 대한민국을 어떻게 볼까. 그보다 북한은 속으로 어떻게 보겠는가.

북한 자극을 극도로 삼가는 이같은 '종북적' 행태는 국민의 목숨은 안중에도 없게 만들고 있다. 더욱이, 군과 청와대는 아무런 증거도 없이 이 씨가 월북 시도를 했다는 프레임을 씌우고 있다. 고인에 대한 또 다른 만행이자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 청와대 안보장관회의 결과도 국민의 분노와는 너무 동떨어져 있다. 청와대 발표는 어디에도 북한을 질책하는 언급이 없다. 거꾸로 "북측의 신속한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까지 했다. 

사살 전후 경위와 문답 밝혀져야

이제, 남과 북 모두 수습 과정에서 또 다른 불미스러운 일을 촉발하는 우(愚)를 범해선 안 된다. '남측이 수색 과정 중 영해를 침범하고 있다'는 북한의 주장은 그래서 우려를 키운다. 양측은 서해에 서로 다른 기준선을 적용하고 있어 언제든 충돌 가능성을 안고 있다. 서로 불필요한 자극은 삼가야 한다. 

진상 규명을 위해서는 북한이 현장에 있던 인력을 상대로 사살 전후 경위와 문답 내용을 정확히 파악해 있는 그대로 남한에 통보해줘야 한다. 더불어 북한 측 주장이 일부 맞는다고 가정한다면 피살된 공무원의 주검이 바다에 떠돌고 있을 수 있어 수습이 시급하다. 

현재까지 북한은 ‘바다에서 부유물에 떠 있는 불법 침입자가 도주할 듯해 총격을 가했고 시신을 못 찾아 부유물만 불태웠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대로 가선 안 된다.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피살된 이씨는 해양수산부 공무원으로 바다에 빠진 뒤 부유물에 의존해 30여㎞를 표류했다. 북한군에 발견됐을 땐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였을 것이다. 북한은 국제 규범에 따라 조난자를 구조했어야 했다. 더구나 그는 비무장 상태였다. 그런데도 사살했다. 

북한은 진상 규명뿐 아니라 희생자 수색에도 최대한 협조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래야만 사과의 진정성도 담보될 것이다.

끝 없는 적반하장(賊反荷杖)

북한의 적반하장(賊反荷杖)은 끝이 없다. 자신들이 해상에서 사살한 우리 공무원 시신을 수색하는 우리 군을 향해 자신들 영해를 침범한다며 중단하라고 했다. 북한이 말하는 영해는 서해 북방한계선(NLL)이 아니라 자신들이 멋대로 그어놓은 ‘경비계선’을 말한다. 

만행에 대해 사과문을 발표한 지 불과 이틀 만에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통해 무력대응까지 시사했다. 이런 적반하장이 없다. 민간인 사살 만행을 해묵은 영해 논란으로 덮으려는 불순한 의도까지 엿보인다.

무엇보다 북한의 앞뒤 안 맞는 해명과 변명이 문제다. ‘유감 표명’인지 ‘사과’인지 분명하지도 않은 “미안하다”는 통지문을 보면 북한은 잘못한 게 없다는 식이다. 진상이 철저히 규명되지 않고선 어떤 재발 방지 논의도 공론(空論)이 될 것이다. 공동 조사에 북한이 의당 응해야겠지만, 정부도 북측 반응만 기다리고 있어서는 안 된다.

북측 주장은 한⋅미 정보 자산으로 파악된 내용과도 거리가 있다. 가장 큰 차이는 시신이 아니라 부유물만 소각했다는 것이다. 야만적 처사를 ‘현장 군인들의 불법 침입자 사살’ 사건으로 성격을 바꾸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일개 하급 장교가 한국인으로 확인된 사람을 자신의 재량으로 죽였다는 것은 누구도 믿기 어렵다. 

문대통령, ‘골든타임 6시간’ 책임 물어야 

한국 정부와 여권도 국민을 격분케 한다. 우선, 문 대통령의 '유체이탈' 행각이다. 북한이 '미안하다'는 김정은의 말을 전해오자 청와대는 난데없이 코로나 사태와 관련해 문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보낸 친서를 공개했다. 거기에는 "김정은 위원장님의 생명 존중에 대한 강력한 의지에 경의를 표합니다"라는 찬사가 들어있다. 

이를 공개한 것은 문 대통령의 결정이었을 것이다. 어처구니가 없다. 살해당한 공무원과 유족, 그리고 진정으로 생명을 존중하는 모든 국민과 세계인에 대한 모독이다.

사건 과정에서 수수방관이나 다름없는 정부 대응에 대한 의문들도 결국 대통령을 향할 수밖에 없다. 심야에 장관회의까지 열린 사안을 문 대통령은 전혀 모른 채 하룻밤을 지냈다고 한다. 더욱이 문 대통령은 보고를 받고도 문화공연까지 관람했다.

문 대통령은 이 씨의 실종 사실과 북한이 이 씨를 발견했다는 서면 보고를 받은 후조차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 3시간여 후에 이 씨는 살해됐다. 이 씨 피살 보고를 받고도 청와대는 36시간 동안 공식적 대응을 하지 않았다. 

남북 정상 간 친서 라인이 가동되고 있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 또한 변명의 여지가 없다. 만일 핫라인을 통해 진위를 확인하는 시늉이라도 했더라면 북한군 ‘상부’가 함부로 살해 명령을 내리진 못했을 것이다. 전화 한 통화로 생명을 건질 수 있었는데도 골든타임을 그냥 흘려보냈다. 이씨가 북한군에 발각된 순간부터 사살당하기까지 ‘골든타임 6시간’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여권, 김 위원장 표면적 사과에 장단

온 국민은 북한의 비인간적인 만행에 치를 떨고 있다. 이번 사건에 김 위원장의 허가나 지시가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에게 총체적인 책임은 있다. 따라서 김정은에게 만행을 규탄하고 진상 규명 및 관련자 처벌을 촉구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김정은이 "미안하다"고 통지문을 보낸 이후 이 사건에 임하는 여권의 태도가 확 바뀌었다. 그 전에는 사살을 '만행'으로 규정하고 국회 차원의 대북 규탄 결의안 채택 등 강경 대응을 외치더니 "매우 이례적인 사과" "전화위복의 계기" 같은 말을 쏟아내며 야당의 긴급 현안 질문 요청을 거부하고 있다. 

김정은의 표면적 사과에 장단을 맞춰 여권에서는 별의별 희한한 소리까지 쏟아져 나왔다. "남북관계가 엄중한 상황에서도 변화가 있는 것 같다"(이낙연 더불민주당 대표)고 하고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다"(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고 하며 "이번처럼 빠르고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하며 사과한 사례는 없다"(이인영 통일부 장관)고 한다. 우리 국민이 참혹하게 살해당한 게 오히려 잘된 것이라는 소리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이런 말장난은 "김정은은 계몽군주"(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라는 찬사로까지 발전한다.

이인영 통일부,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김 위원장 사과에 한껏 의미를 부여했다. 강성 친문 지지자들은 관련 기사에 “사과했으니 다행이다” “문 대통령의 외교 성과다”라는 댓글을 달았다.북한의 만행이라는 사건의 본질을 호도하는 황당한 언급들이다. 

대통령부터 여당, 그 주변을 얼씬대는 친여 인사까지 모두 제정신인지 묻고 싶다. 

국민은 ‘골든타임 6시간’에 왜 고속정을 근처에라도 보내지 않았고, ‘친서’를 주고받았다면 핫라인을 왜 활용하지 않았느냐고 거듭 묻는 것이다. 그런데도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 가능성을 배제했고, 박지원 국가정보원장도 벌써 북한 주장을 받아들이는 기조로 국회에 보고했다. 통일부는 만행 규탄 하루 만에 ‘신중’ 모드로 돌아섰다. 

軍 속수무책, 납득 어려워

軍도 문제다. 서해에서 실종된 이후 군 당국이 북한에 의한 만행을 규탄할 때까지 꼬박 사흘이 걸렸다. 그의 실종부터 사망까지 34시간, 특히 북한군이 그를 발견해 사살하고 불태울 때까지 6시간 동안 우리 군은 북한 동향을 포착하고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군(軍) 당국의 오불관언 같은 초기 대응이다. 국민의 생명을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강구해서라도 지켜내야 할 군이 자체 첩보 내용대로라면 북한 군이 이씨를 사살하고 시신을 불태우는 장면까지 포착하고도 속수무책으로 지켜만 봤다는 것은 어떤 항변을 하더라도 납득하기 어렵다.

이씨가 북측 등산곶 인근에서 북한군에 최초로 발견된 시점부터 사살당하기까지 6시간 동안 군은 뒷짐만 쥐고 있었다고 한다. 우리 영토나 영해가 위협받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즉시 대응하지 않았고, 북측 해역에서 발생한 사건이라 직접적인 대응이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군이 서둘러 이씨를 월북 기도자로 규정한 것도 미심쩍은 대목이다. 물론 첩보 등을 바탕으로 그리 발표했겠지만 북측의 발표나 유가족의 입장 등과는 확연히 다르다. 

공동조사로 규명돼야 할 현안들

공동조사로 규명돼야 할 현안은 실로 산적해 있다. 북한은 한편으론 자체적인 수색 계획과 시신 발견 시 인계 절차를 거론하며 상투적 이중 플레이를 보였다. 

이런 기만적 태도는 이미 25일 북측이 보내온 전통문에서도 드러났다. 북한은 우리 국민을 사살한 사실은 인정했지만 월북 의사 표시가 없었으며, 시신을 훼손하지도 않았고 단지 부유물을 소각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자진 월북 시도 가능성을 놓고 당국과 유족의 입장이 여전히 엇갈리는 문제도 규명이 쉽지 않아 보인다. 

결국 어느 쪽이 진실을 말하는지는 시신을 찾는 것에 달려 있다. 시신 훼손은 없었다는 북한의 주장이 거짓이 아니라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미안하다”는 사과가 입 발린 소리가 아니라면 북측이 공동조사를 주저할 이유가 전혀 없다. 

시신 훼손 여부를 맨 먼저 규명해야 한다. 우리 국방부가 파악한 정황과 북한의 설명이 아주 달라서다. 방독면과 방호복 착용 북한군이 당일 오후 10시께 시신에 기름을 붓고 40분간 불에 태운 정황을 포착했다는 게 국방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북한의 설명은 다르다. 사살한 것은 맞지만, 수색 결과 시신은 못 찾고 부유물은 국가비상방역 규정에 따라 해상에서 소각했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사살 경위에 대해 '단속 명령에 함구, 불응하고 도주하려는 듯한 상황이었다'고 설명한 대목도 우리 당국이 발표한 내용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모두가 공동조사를 통해 밝혀져야 할 사안들이다.

통렬한 사죄와 북한에 강력한 대응을

이와 관련, 문 대통령은 관계장관회의를 소집해 북에 공동조사를 재차 요청했다. 북한은 남북 공동조사를 통해 진상 규명에 나서 책임자를 처벌하고 실효성 있는 재발방지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서둘러 공동조사단을 꾸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성사된다면 금강산 박왕자 사건이나 천안함 침몰 때 시도했다 못한 일을 해냈다는 의미도 적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이런 요구에 귀 닫은 채 수역 침범부터 따지는 건 서해를 평화수역으로 만들자고 한 남북 군사 합의 정신마저 저버리는 것이다. 문제는 사과의 진정성이다. 향후 이와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후속 조치가 중요하다. 

또한, 남한 정부는 북측 경위 설명의 문제점을 면밀히 따져 진상 규명을 위한 추가·공동조사를 관철해내야 할 것이다. 국제사회와 연대해 북한의 반인권·반인륜 행위에 제재를 가하는 방안도 모색하기 바란다.

중요한 것은 국가 시스템 비작동에 대한 실체 규명이다. 야당은 군이 청와대에 총살 및 시신 훼손을 보고한 22일 밤 10시 30분부터 대통령이 첫 대면 보고를 받은 23일 오전 8시 30분까지 대통령 행적을 밝힐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 전에 공무원 생존이 확인됐던 6시간 동안 왜 아무런 구조 노력이 이뤄지지 않았는지도 설명돼야 한다. 

야당이 아니라 국민이 진실을 원한다. 국가가 작동하지 않은 이 중대한 사태를 김정은 사과 한마디에 어물쩍 덮어버릴 수는 없다. 정부는 우리 국민이 무참히 살해당하는 것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에게 통렬히 사죄하고 북한에 강력한 대응을 해야 한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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