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강경화 남편 논란과 기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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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강경화 남편 논란과 기본권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0.10.06 2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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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은 자유와 규제의 충돌…기본권 어떻게 지킬지 말해야 할 때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곳곳에서 자유와 규제의 충돌이 일어나고 있지만, 정치인 그 누구도 기본권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시사오늘
곳곳에서 자유와 규제의 충돌이 일어나고 있지만, 정치인 그 누구도 기본권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시사오늘

진영이 뒤바뀐 듯하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남편인 이일병 연세대 명예교수의 미국행을 놓고 여야(與野)가 취하는 태도가 그렇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며 이 명예교수를 두둔하고, 야당인 국민의힘은 ‘정부의 방역’을 중심에 두고 공세를 펴는 중이다. 불과 며칠 전 ‘방역을 위해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고 외치던 민주당과 ‘기본권을 함부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던 국민의힘이 자리를 바꾼 모양새다.

이처럼 ‘네 편 유죄 내 편 무죄’라는 정치 공식을 그대로 답습하는 여야의 행태를 보고 있자니, 우리 정치권이 또 한 번 ‘골든타임(golden time)’을 놓치고 있다는 아쉬움이 생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이후 우리 사회가 한 번은 생각해봤어야 하는 ‘기본권 논쟁’이 테이블 위에 올라왔음에도, 정쟁에 빠져 이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문재인 정부는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강한 규제를 시행했다. 이 같은 규제는 이른바 ‘K-방역’이라는 우수한 성과로 나타났지만, 한편으로는 과도하게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문제점도 안고 있었다. 심지어 개인정보 공개로 인해 코로나19 감염자가 전 국민의 지탄 대상이 되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날 정도였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 사회는 ‘자유와 규제의 충돌’이라는 중요한 문제를 다룰 여유를 얻지 못했다. 확진자는 나날이 늘어나고, 자영업자들은 줄줄이 문을 닫고, 대기업에서마저 인력 감축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상황에서는 ‘방역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해야 한다’는 현실론이 절대적 우위에 설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기본권은 말 그대로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자연적으로 갖고 있는 권리’다. 헌법에서도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정해뒀다.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법률로만 제한할 수 있는 것이 기본권이다.

이 명예교수의 미국행 논란이 단순한 정쟁으로 치닫는 것이 안타까운 이유가 여기 있다. 다른 소음을 걷어내고 보면, 이번 논란의 본질은 자유와 규제의 충돌이다. 방역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국가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려는 개인의 갈등이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이, 이는 반드시 필요했지만 ‘급한 마음에’ 애써 무시하고 지나갔던 문제다.

그렇다면 정치권은 차제에 그동안 여러 현실적 이유로 미뤄왔던 기본권 제한 범위를 논의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했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서라는 명목하에 마구잡이로 수집하고 공개했던 개인정보 정책은 옳았는지,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인 집회를 불허한 것은 문제가 없었는지, 향후 기본권과 방역 정책이 충돌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을 고민하고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이 국민의 기본권과 안전을 모두 지켜야하는 정치인들이 할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정치권에서는 기본권에 대한 논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저 강 장관에 대한 책임론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을 방어하는 데 급급하다. 이 명예교수 논란이 며칠째 이어지고 있지만,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사생활을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정치인은 찾아볼 수 없다. 정치꾼은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정치인은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고 했다. 당장 눈앞의 지지율 3~4%에 목을 매는 정치꾼보다, 미래를 위해 더 큰 이야기를 할 줄 아는 정치인이 보고 싶은 건 기자뿐일까.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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