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꿈에그린’도 없고, ‘예가’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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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꿈에그린’도 없고, ‘예가’도 없고…”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0.10.09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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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채'·'사랑으로'·'어울림'·'해모로' 남았네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 픽사베이
ⓒ 픽사베이

오늘은 이천이십년 시월 구일 제오백칠십사돌 한글날이다. 매년 이맘때면 비슷한 기사를 쓴다. 우리말 아파트 상표를 찾아볼 수가 없다는 내용이다. 건설사들만 나무랄 일이 아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우리말로 된 상표를 촌스럽다고 여기는 경향이 점점 짙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도대체 어느 나라 언어인지 모를 희한한 합성어가 재건축·재개발 단지명으로 정해지기도 한다. 대부분 시공사가 아니라 조합원들 스스로 정한 것이다. 괜한 트집을 잡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저 일년에 딱 하루 한글날만큼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을 창제해 세상에 널리 알린 세종대왕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꼭 다룰 필요가 있다는 마음뿐이다.

특히 올해는 세종대왕의 서운함이 더 클 것 같다. 조금 남았던 우리말 아파트 상표마저 사라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요자들의 반응까지 좋다.

한화건설은 이천십일년부터 줄곧 사용하던 순우리말 아파트 상표 '꿈에그린' 대신  아파트·주상복합 통합 상표인 '포레나'를 지난해 팔월부터 사용 중이다. 상표 변경 후 한화건설이 전국에 공급한 단지들은 완판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꿈에그린 상표를 달고 이천십팔년 분양에 나섰다가 대규모 미분양 사태가 발생한 '거제 장평 꿈에그린'은 지난 사월 '거제 장평 포레나'로 단지명을 바꾸면서 미분양 물량을 모두 해소하는 쾌거를 거두기도 했다. 다만, 한화건설이 가장 최근 공급한 '포레나 양평'의 경우 총 사백십사가구 모집에 불과 이백육십여 명만 몰리며 흥행 참패했다. 상표 변경의 힘이 불안한 시장환경을 이기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쌍용건설도 지난해 시월부터 아파트 상표인 '예가'와 주상복합 오피스텔 상표인 '플래티넘'을 '더 플래티넘'으로 통합해 선보이고 있다. 비록 순우리말이 아닌 한자어지만 고풍스러운 느낌으로 수요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예가 상표는 이제 보기 어렵게 됐다. 쌍용건설 내부에서도 상표 통합 변경의 아쉬움이 상당히 컸다는 후문이다. 특히 쌍용건설 출신이 아니라 외부에서 영입된 인사가 상표 변경을 주도하는 것에 대한 반발 여론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시장 반응은 긍정적이다. 올해 들어 쌍용건설이 더 플래티넘을 앞세워 공급한 단지들은 서울, 경기, 대구,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높은 경쟁률을 기록하며 청약 마감을 이뤘다.

꿈에그린, 예가의 소멸로 이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공능력평가 상위 오십대 건설사 가운데 순우리말 상표를 사용하는 업체는 '하늘채'의 코오롱글로벌, '사랑으로'의 부영, '어울림'의 금호산업, '해모로'(모로는 무리, 군락을 뜻하는 순우리말)의 한진중공업 등에 그친다. 제일건설의 '풍경채', ㈜서한의 '이다음' 등이 그나마 우리말과 가까운 편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 단어를 조합·합성하거나 한자를 억지로 붙여 만든 상표를 쓰고 있다. 별도의 설명 없이는 도저히 뜻을 유추할 수 없는 상표도 수두룩하다. 어쩔 수 없는 추세라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 정도면 하늘에 있는 세종대왕도 아마 혀를 끌끌 차기도 안타깝다며 아예 체념하고 계시지 않을까. 

"아~ 꿈에그린도 없고, 아~ 예가도 없고…."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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