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텔링] 웃지 못할 촌극 ‘전세 임차인 면접 시대’…절찬 상영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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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텔링] 웃지 못할 촌극 ‘전세 임차인 면접 시대’…절찬 상영中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0.10.15 16: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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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1. 지난 13일 국내 주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된 '가위바위보' 세입자 뽑기 사연은 사실이었다.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한 아파트 전세 매물에 총 9개 팀이 몰렸고, 이중 계약 의사를 밝힌 5개 팀이 현장에서 가위바위보로 계약자를 정했다고 한다. 시세보다 수천만 원 저렴하게 나온 물건이어서 경쟁이 무척 치열했다는 후문이다.

#2. 집주인의 세입자 면접 심사는 이제 남의 나라 일이 아닌 모양새다. 경기 수원에 거주하는 A씨는 최근 회사 근처 역세권에서 전세를 구하는 과정에서 무척 불쾌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집주인이 '가족 관계', '직장', '연봉', '애인 유무', '애완동물 유무' 등을 꼬치꼬치 캐물은 것이다. 하도 귀한 전세 매물이어서 애써 표정관리를 하며 답변했지만 결국 계약은 이뤄지지 않았다. A씨는 임차인 면접에서 떨어진 것이다.

희대의 웃지 못할 촌극 '전세 임차인 면접 시대'가 절찬 상영 중이다 ⓒ 시사오늘
희대의 웃지 못할 촌극 '전세 임차인 면접 시대'가 절찬 상영 중이다 ⓒ 시사오늘

서울·수도권 부동산시장에서 전세 매물이 자취를 감추고 있고, 그나마 남은 물건도 날이 갈수록 가격이 급등해 실수요자들이 애를 먹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한 임대차법이 지난 7월 국회에서 통과된 이후 발생한 현상입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8월 전세 거래량은 1만7864건, 지난 9월 전세 거래량은 1만2985건으로 집계됐습니다. 전년 동월 대비 각각 14.5%, 33.8% 전세 거래가 감소했습니다. 이중 지난달 전세 거래량의 경우 아직 신고가 접수되고 있는 상황인 만큼, 소폭 증가할 공산이 크긴 합니다만, 임대차법 통과 뒤 전세난이 심화되고 있다고 분석하기엔 충분한 통계로 보입니다. 

전셋값도 계속 오르고 있습니다. 15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10월 2주차(지난 12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 상승률은 0.08%, 수도권은 0.16%로 나타났습니다. 서울은 68주 연속 전셋값 상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게 됐고, 수도권 역시 62주 연속 상승세가 이어지는 형국입니다. 전국적으로 오름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해당 통계 공표지역 176개 시군구 중 지난주 대비 전세가가 상승한 지역은 145개에서 154개로 증가했고, 보합 지역은 22개에서 13개로 줄었습니다. 특히 서울·수도권은 신규 입주물량 감소, 공급 위축 우려, 3기 신도시 등 청약 대기수요 증가, 거주요건 강화 등으로 전세 매물 부족 현상이 확대되는 분위기입니다.

이처럼 전세난이 심화되면서 최근에는 웃지 못할 촌극도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데요. 앞선 사례처럼 가위바위보나 제비뽑기를 통해 임차인을 뽑는 경우, 세입자가 집주인으로부터 사실상 면접 심사를 받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는 겁니다. 아직 확인되진 않았으나 집주인이 세입자 후보들에게 자기소개서 제출을 요구하는 일이 있었다는 소문도 돕니다. 수요자 입장에서는 불쾌하더라도 어쩔 수 없죠. 자소서든 면접이든, 가위바위보든 제비뽑기든 어떤 수모를 겪어도 집주인의 간택을 받아 계약을 체결하는 게 당장 길거리에 나앉는 것보다는 훨씬 나으니까요.

임대차법을 주도한 당사자 중 하나인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웃지 못할 촌극의 주인공이라고 하죠. 홍 부총리는 임대차법 때문에 자신이 소유한 아파트를 팔지도 못하고, 현재 실거주 중인 서울 마포 전셋집에서도 쫓겨날 신세라고 합니다. 전자는 기존 세입자가 임대차법에 명시된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는 바람에, 후자의 경우 집주인이 실거주하겠다며 집을 비워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홍 부총리는 지난 14일 열린 제8차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전셋집을 구하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고 하죠. 정책 입안자가 부작용을 예측하지 못하고 그 정책의 피해자가 되다니, 개그콘서트가 왜 사라졌는지 알 것 같습니다.

독일에서는 세입자들이 집을 구할 때 'Besichtigungstermin'('관광 일정', 출처 네이버 어학사전)이 활성화돼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집 구경과 같은 겁니다. 그런데 독일에서는 집 구경을 할 때 집주인이 세입자들을 앉혀놓고 면접을 진행합니다. 면접이라는 표현을 직접적으로 쓰기에는 너무 삭막하니까 저런 식으로 에둘러 사용하고 있는 겁니다. 이제 조만간 우리나라도 전월세 임차인 면접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같은 추세가 계속된다면 아예 세입자 면접이 제도화되는 모습을 목격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최근 한 국내 유명 커뮤니티에서는 세입자 면접 제도가 정착된 상황을 그려 현 세태를 풍자한 글이 네티즌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 글을 좀 요약·소개해 보겠습니다.

"'그 누구 때문'이라고 말은 못하지만 집값이 천정부지로 상승한 이후 집을 사기는커녕 전세마저 구하기 힘든 세상이 도래했다. '이사면접제'라는 기형적 제도가 생겼고, 이제 집주인은 일종의 '절대 갑'으로 군림하며 세입자들을 선택하고 있다. A씨는 직장은 서울이지만 거주지는 성남에서 시작해 안산, 이제는 충북으로까지 밀려났다. A씨는 자신이 가진 모든 역량을 발휘해 '이사지원서'의 자기소개서를 준비했고, 그 자소서를 들고 집주인을 찾았다.

'다음 이사지원자 들어오세요.' 집주인의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먼저 면접을 본 지원자의 안색이 좋지 않은 걸 보고 조금은 안도하며 방에 들어간 A씨, 면접관석에 앉은 집주인을 보니 자신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집주인의 질문이 시작됐다. '근무지도 서울인데 어떻게 충북에서 편하게 살 수 있겠어요?' A씨는 미리 외워둔 답변을 읊었다. '네! 저는 서울에서 3시간이면 수도권이라는 부모님의 가르침을 어렸을 때부터 받고 자랐습니다!' 집주인은 정치성향을 묻는 질문도 서슴지 않았다. 사전에 집주인의 정치성향을 파악한 A씨는 4분 동안 '문비어천가'를 불렀다.

그렇게 면접을 마친 후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A씨, 가는 길에 친구들에게 면접을 엄청 잘 봤다고 자랑하는 문자를 보냈다. '오, 대박이다', '좋겠다' 친구들의 칭찬이 이어졌다. 기분 좋게 발걸음을 옮기는데 갑자기 그의 핸드폰에 진동이 울렸다. 집주인의 문자다.
 
'OO아파트 집주인입니다. 이번에 귀하께서 뛰어난 역량과 포부를 보여줬지만, 제 집이 1채인 관계로 귀하를 모시지 못해 깊은 유감을….' 흐르는 눈물에 가려 문자를 채 읽지 못한 A씨였다."

글쓴이의 정치적 성향을 떠나서, 참 글 곳곳에서 현실적인 좌절감이 느껴집니다. 이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전세 임차인 면접 시대의 사회 구성원들은 상당한 불안감을 느끼며 살 것으로 보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최근 벌어지고 있는 전세 대란에 대한 추가 대책을 내놓겠다고 예고한 상황입니다. 홍 부총리는 "전셋값 상승 요인에 대해 관계부처와 면밀히 점검하고 논의하겠다"고 언급하며 전세 관련 추가 대책 가능성을 시사했습니다. 과연 이번에는 어떤 대책이 나올까요. 설마 한국판 'Besichtigungstermin'은 아니겠죠? 과연 집값과 전셋값은 잡힐 수 있을까요? 왜 정부여당의 추가 부동산대책 예고에 기대감은 느껴지지 않고 불안감만 가득할까요. 독자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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