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필담] 민주주의 좀먹는 프레임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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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필담] 민주주의 좀먹는 프레임 정치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0.10.24 21: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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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검찰과 언론을 적폐 프레임에 가둬버리면, 정부여당을 향한 견제 장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뉴시스
검찰과 언론을 적폐 프레임에 가둬버리면, 정부여당을 향한 견제 장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뉴시스

민주주의(民主主義)는 말 그대로 ‘국민이 주권을 갖는’ 체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모든 국민이 국정에 참여하기는 어려우므로, 현대 사회에서는 대의(代議) 민주주의를 채택해 공직자에게 일정 기간 주권을 위임한다.

문제는 선출된 권력이 권력의 맛에 취해 ‘절대권력’으로 나아갈 경우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려 들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국민은 투표할 때는 주인이지만 투표가 끝나면 노예가 된다”는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의 말처럼, 단순히 ‘공직자를 선출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민주주의가 완성되지 않는다.

때문에 현대 민주주의에서는 권력집단 간 ‘견제와 균형’을 핵심 원칙으로 삼는다. 권력집단이 서로를 제어하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절대권력의 출현을 막을 수 있고, 그래야 국민의 자유와 권리도 지켜지는 까닭이다. 입법·행정·사법이 권력을 분점하는 삼권분립, 검찰의 중립성과 독립성 보장, 언론의 자유를 중시하는 관행 등은 모두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문재인 정부의 행보를 보면 우려스러운 데가 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검찰개혁’이라는 화두와 씨름해왔다.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한을 휘두르는 검찰의 힘을 빼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만들어 조직논리에 빠진 검찰을 변화시키겠다는 구상이었다. 당연히 이 자체는 비판받을 행동이 아니며, 오히려 민주주의의 본지(本旨)를 지켜내는 일일 수도 있다.

걱정스러운 부분은 그 방식이다. 언젠가부터 문재인 정부는 검찰개혁의 당위성을 설파하기 위해 검찰을 ‘적폐’로 낙인찍었다. 이러다 보니 정부여당을 향한 검찰의 수사는 모두 ‘검찰개혁에 저항하는 적폐세력의 몸부림’으로 전락해버렸다. 정부여당 인사들의 비위(非違)가 사실이든 아니든, 검찰이 정부여당에 칼을 들이대는 순간 ‘기득권의 공작(工作)’ 프레임에 빠져버린 것이다.

이는 견제와 균형이라는 측면에서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정부여당과 관련해 터지는 모든 의혹들이 ‘검찰의 모함과 공작’ 카테고리에 묶여버리면, 법적으로 정부여당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무력화되기 때문이다. 그 누구보다도 철저한 감시 대상이 돼야 할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집단이 ‘무한 면죄부’를 부여받는다는 의미다.

언론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정부여당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뉴스가 보도될 때마다 ‘가짜 뉴스’라는 딱지를 붙였다. 그러면서 언론을 ‘문재인 정부를 무너뜨리려는 기득권’ 프레임에 가뒀다. 이러자 언론은 정부여당에 흠집을 내려는 ‘공작 집단’으로 전락했고, 정부를 향한 언론의 비판은 힘을 잃었다.

물론 현 상황에서 가장 먼저 반성해야 할 쪽은 검찰과 언론이다. 그동안 검찰과 언론이 정도(正道)를 걸어왔다면, 정부여당의 프레임은 힘을 발휘하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개혁에 저항하는 기득권’ 프레임이 먹혀든다는 것은 그만큼 국민이 검찰과 언론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방증이다. 검찰과 언론은 분명 뼈저리게 반성해야 하고, 자의든 타의든 개혁을 통해 환골탈태(換骨奪胎)해야 한다는 점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정부여당이 검찰과 언론에 낙인을 찍는 방식 또한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미 행정 권력과 입법 권력을 모두 가진 정부여당이 검찰과 언론이라는 ‘견제 장치’의 힘마저 앗아가면, 절대권력으로의 줄달음을 막을 방법이 없다. 그리고 절대권력의 등장은 궁극적으로 국민에게 상처를 남긴다.

칼 포퍼는 “다수 국민이 마음을 먹었을 때 권력자를 교체할 수 있으면 민주주의”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견제와 균형이라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다수 국민이 마음을 먹는’ 일조차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진짜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견제와 균형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정부여당이 기억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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