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정치인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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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정치인의 조건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0.11.11 1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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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의 목표는 승리 아닌 통합…우리 편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시각 벗어나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잭 웰치 전 제너럴 일렉트릭(GE) 회장은 정치의 목적이 통합이라며 평생 승리만을 위해 살아온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믿었다. ⓒ뉴시스
잭 웰치 전 제너럴 일렉트릭(GE) 회장은 정치의 목적이 통합이라며 평생 승리만을 위해 살아온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믿었다. ⓒ뉴시스

1999년 <포춘(FORTUNE)>지는 제너럴 일렉트릭(GE) 회장 잭 웰치를 ‘20세기 최고의 경영자’로 선정했습니다. 1981년 최연소로 GE 회장에 부임한 후, 기업 가치를 37배 이상(1981년 120억 달러-2001년 4500억 달러) 끌어올린 공로를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CEO로서의 비약적 성과 덕에 ‘잭 웰치’라는 이름이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매김하자, 정치권에서는 CEO에서 은퇴한 그를 영입하려는 움직임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정계 진출을 단호하게 거부했습니다. ‘CEO와 정치인은 해야 하는 일이 전혀 다르다’는 이유였습니다.

잭 웰치는 경영의 목표가 ‘승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반면 정치의 목적은 ‘통합’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는 평생 승리를 위해 살아온 자신이 통합이라는 정치의 목표를 수행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판단했고, 한평생 ‘기업가’로 살다가 올해 초 생을 마감했습니다.

개인에 대한 호불호(그는 ‘고쳐라, 매각하라, 아니면 폐쇄하라’라는 경영 전략 하에 10만 명 이상의 직원을 해고하는 등 무자비한 경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를 떠나, 잭 웰치의 이런 생각은 우리나라 정치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한 강연에서 운동권 세력이 주축이 된 현 여권에 대해 “군부독재를 ‘절대악’으로 규정했던 과거 경험에 따라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선과 악’ 등 이념의 형태로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군부독재와 싸우는 동안 내면화된 이분법적 사고방식이, 민주화를 이룩한 지금까지 남아 ‘인식의 틀’로 기능한다는 비판이었죠.

실제로 현 정권은 어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적’을 찾아 헤매는 경향이 있습니다. 코로나19가 유행할 때는 신천지, 교회, 클럽 등이 그 ‘범인’으로 지목됐고, 집값이 오르자 다주택자를 원흉으로 몰았습니다. 국민이 힘든 이유는 그 어려움을 유발하는 명확한 ‘적’이 있기 때문이며, 그 ‘적’과 싸워 승리하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살기 좋아질 것이라는 식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의 갈등이 임계점을 넘었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온다. ⓒ뉴시스
우리 사회의 갈등이 임계점을 넘었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온다. ⓒ뉴시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는 선과 악이 대립하는, 어느 한 쪽을 쓰러뜨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전쟁터가 아닙니다. 그저 수많은 인간들이 저마다의 욕망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세계일 뿐입니다. 그래서 정치는 어느 한 쪽을 적으로 규정하고 타도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 정권은 ‘나와 생각이 다르면 적’이고, ‘적은 타도해야 할 대상’이라는 의식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군부독재정권이라는 명확한 적을 타깃으로 삼아 목숨을 걸고 싸웠듯이, 보수 정권과 검찰, 다주택자, 신천지, 교회, 클럽, 의사 등 특정 집단을 악으로 지목하고 그들과 싸워 ‘승리’해야 한다는 투쟁적 관점에 매몰된 겁니다.

흔히 정치를 ‘타협의 예술’이라고 합니다. 본디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좇기 마련인데,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모든 인간을 국가라는 틀 안에서 공존시키려다 보니 정치라는 ‘타협의 장’이 필요해진 겁니다. 바꿔 말하면, 정치의 역할은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인간들의 욕망을 잘 조정해 모두가 국가라는 틀 안에서 공존하게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 정권은 이해관계의 조정보다는 어느 한 쪽을 타도 대상으로 낙인찍는 방식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이 계속 반복되면 국민들 사이의 갈등은 격화되고, 불만은 임계점을 넘어서게 됩니다. 이해관계를 조정해 불만을 관리하고, 공동체를 존속시켜야 하는 정치의 근본 목적에서 이탈하는 겁니다.

잭 웰치는 평생 ‘승리’를 위해 싸워온 자신이 ‘통합’을 이뤄야 하는 정치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평생 ‘독재 타도’를 위해 싸워온 운동권은 ‘통합’을 이뤄야 하는 정치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가 여기저기서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현 정권이 이런 의심을 누그러뜨리고 ‘진짜 정치인’으로 인정받으려면, 모두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통합적 시각을 먼저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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