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민주화 여정 속 ‘민추협’… “직선제로 국민 결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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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민주화 여정 속 ‘민추협’… “직선제로 국민 결집”
  • 조서영 기자
  • 승인 2020.11.12 13: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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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학술세미나
김덕룡 “민추협, 민주화 운동 조직적으로 바꿨다”
이채익 “민주화 시발점 민추협, 정부가 기억해야”
강원택 “민추협 중요성, 제도권 내 대안세력 부상”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조서영 기자]

민주화추진협의회(이하 민추협) 학술세미나가 11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렸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민주화추진협의회 학술세미나가 11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렸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1979년에서 1987년까지 8년은 정치학계에서 공백으로 남아 있다. 상세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서다. 10·26 사태로 유신 체제가 무너지고 6·29 민주화 선언이 발표되기까지의 시간은 점차 잊혀갔다.

공백의 역사를 채우기 위해, 민주화추진협의회(이하 민추협) 학술세미나가 11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렸다. 민추협은 1984년 5월 18일, 김영삼 전 대통령(YS)과 김대중 전 대통령(DJ)이 결성한 재야 정치인 단체다.

이날 김덕룡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은 “민추협은 이전까지 산발적이던 민주화 운동을 조직적으로 바꿨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세미나를 주관한 국민의힘 이채익 의원은 “민추협은 민주화의 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강원택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민주화 운동에서 민추협의 역할’이란 주제로 강연을 시작했다. 강 교수는 세미나에 앞서 머리가 희끗한 50여 명의 청중들에게 “여러분들이 역사를 만들고 이뤘으며, 여러분이 곧 역사”라며 “공자 앞에서 문자를 쓰는 기분”이라 말했다.

 

4·19, 10·26과 달리 6월 항쟁이 민주화에 성공한 이유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민추협의 중요성을 ‘대안 세력의 부상’에서 찾았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민추협의 중요성을 ‘대안 세력의 부상’에서 찾았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강원택 교수는 민추협의 중요성을 ‘대안 세력의 부상’에서 찾았다. 1960년 4·19 혁명과 1979년 10·26 사태 이후 민주화 실패, 그리고 1987년 민주화 성공의 차이는 대안 세력의 유무에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4·19 혁명은 학생, 지식인, 대학 교수들이 혁명을 이끌었다”며 “하지만 이 사람들은 정권이 무너진 후 새로운 정치 질서를 이끌어 갈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변화를 이끌어낸 주체가 이를 끌고 가야하지만, 4·19는 주체가 없었다”며 “결과만 본다면 새로운 질서 구축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10·26 사태의 발단에는 YS 신민당 총재 선출, YH 사건, YS의 뉴욕 타임즈 인터뷰와 의원직 제명, 부마항쟁 등이 있다. 그는 “결국 유신 체제 붕괴는 내부 분열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박정희는 사라졌지만, 유신 체제와 통치 기반은 남아있었다”며 “그러나 이를 뒤엎고 이끌어갈 주체 세력이 없어 공백이 생겼다”고 부연했다. 결국 힘의 진공 상태를 차지한 이는 12·12 사태의 장본인, 전두환 전 대통령이었다. 그렇게 4·19 혁명 이후 19년 만에 찾아온 기회는 신군부에게 돌아갔다.

반면 앞선 두 격변기와 달리, 민추협은 명백한 대안 세력으로 존재했다. 이로써 제도권 밖에만 있었던 저항은 제도권 정치 세력에게로 넘어왔다. 그는 “이는 새로운 역할을 할 수 있는 주도적인 힘이 만들어진 것”이라 설명하며, 1985년 제12대 총선의 신한민주당 부상과 1986년 천만인 개헌 서명 운동을 예로 들었다. 이렇듯 YS와 DJ가 규합한 민추협은 제도권에서 대안 정치 세력으로서, 민주화 전환의 원동력이 됐다.

 

모두가 공감할 ‘직선제’ 의제로 중도층 포용


우리는 우리 국민의 긍지와 자존심을 회복시키고, 국가의 존엄을 해치는 군부 독재를 청산해서 국민이 자신의 정부를 선택할 수 있고 시민의 참여가 보장되는 민주 정부의 수립을 위하여 민주화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이를 위한 민주화추진협의회를 발족하고 다음과 같이 투쟁할 것을 결의한다.

- 1984.06.14 민추협 창립대회 선언문 中

민주화추진협의회 개소식에 참석한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모습이다.ⓒ 김영삼민주센터
민주화추진협의회 개소식에 참석한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모습이다.ⓒ 김영삼민주센터

민추협의 선언문에는 절차적 민주주의가 강조돼 있다. 강 교수는 민추협의 어젠다인 ‘내 손으로 대통령 뽑자’에 대해 “최대 다수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온건하고 합리적인 어젠다”라 평가했다. 그러면서 “민추협이 주창한 직선제는 1987년 정치적 게임의 규칙 개정으로 연결됐다”며 “이는 이후 민주화 운동을 촉발시킨 매우 중요한 구절이자, 한국 민주화의 핵심적 내용”이라 부연했다.

1987년 5월에는 대통령 직선제 구호 아래, ‘호헌 철폐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국본)’이 결성됐다. 그는 “입장의 차이가 있었던 민주화 운동 세력은, 모두가 공감하는 대통령 직선제라는 어젠다 중심으로 결집했다”고 말했다.

 

한국에 민주주의가 유지되는 이유…“타협을 통한 전환”


강원택 교수는 한국의 민주화가 “타협을 통한 전환”이라는 점을 강조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강원택 교수는 한국의 민주화가 “타협을 통한 전환”이라는 점을 강조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강 교수는 한국의 민주화가 “타협을 통한 전환”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민주화 세력을 뒤집어엎을 만큼 강하지 않았던’ 권위주의 세력과 ‘전두환 정권을 뒤집어엎을 만큼 강하지 않았던’ 민주화 세력이 균형을 맞췄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민주화가 더불어민주당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전제한 뒤 “오늘날의 보수와 진보 진영 모두 민주화에 기여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그는 민주화 달성보다도 유지에 주목했다. 그는 “국민들의 강한 열망과 공감 속에서, 승자와 패자 할 것 없이 선거 제도에 합의했기 때문에 유지됐다”며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와, 패자의 승복이 민주주의의 가장 핵심 조건”이라 설명했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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